그냥 묻겠다. 언제 협상이라는 것을 하는가. 어느 경우 굳이 계약서까지 쓰려 하는가. 상대를 믿어서? 상대가 절대 약속을 어기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서 그리 어렵게 협상을 하고, 그리 길고 복잡한 계약서까지 쓰게 되는 것일까?


사실 상대가 약속을 어기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있으면 그냥 말로만 약속해도 충분하다. 아니면 어차피 약속을 어겨도 직접적인 큰 손해가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면 그러거나 말거나 말로만 약속하고 끝내도 상관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니까. 약속을 지킬지 아닐지 확신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어떻게든 약속을 지키도록 조건을 달고 그것을 문서로서 구체화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물론 그러고도 약속을 어기는 놈들은 쌔고 쌨다.


굳이 누군가와 협상을 하고 계약을 하는 것은 상대를 신뢰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그만큼 필요해서인 것이다. 상대를 충분히 신뢰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가져오기 위해 굳이 조건을 내걸어 협상하고 그것을 구체화하여 계약서를 쓰는 것이다. 북한이 그렇게 믿을만한 상대라면 굳이 남북회담이니 북미회담이니 번거로운 과정을 거칠 필요가 무에 있겠는가.


"우리 비핵화하겠다."

"그러면 그에 대한 보상을 하겠다."


하지만 어차피 말만으로는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더 많으니까. 괜히 자기에게 이익이 없다 생각하면 계약서까지 써놓고도 파기하는 경우가 더 많으니까. 그래서 적당히 어르고 달래고 당근도 쥐어주고 칼로 협박도 해가면서 상대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조건을 만든다. 약속을 어길 경우에 대한 단서까지 모두 단서로 달아놓는다. 도대체가 북한이 그리 미더우면 북한이 핵무기를 갖든 말든 무슨 상관인가 말이다. 미국이 핵무기를 가졌다고 정작 우방인 우리에게 크게 구애될 이유가 없는 것과 같다.


적당히 주고 받고, 적당히 어르고 달래고, 적당히 밀었다가 당겼다가, 일희일비하는 놈들은 그래서 장사같은 것 못한다. 큰 거래는 더 못한다. 그래서 후흑이라고 한다. 얼굴가죽은 두껍게, 속은 더 검게. 속내를 다 드러내 보이는 순진한 착한 놈이 오히려 더 계약에서는 재앙인 것이다.


그리 비핵화를 노래부르더니 그 앞에서는 북한을 믿을 수 없다, 비핵화에 너무 많은 돈이 들어간다. 그러니까 비핵화가 누구를 위한 비핵화인가 하는 것이다. 남북평화가 누구를 위한 평화인가 하는 것이다. 누구를 위한 화해이고 경협인가.


벌써부터 주식시장까지 들썩이고 있다. 장차 남북교류가 본격화될 이후에 대한 기대로 들떠서 분주한 사람들까지 있다. 하다못해 동네 구멍가게도 감정만으로는 장사같은 것 못한다. 혼자만 멍청하면 좋을텐데 모두를 재앙으로 몰고간다.


성급하면 진다. 솔직하면 망한다. 물러나는 것도 단순히 후퇴하는 것이 아니다. 모르면 멍청한 것이고, 알면서 그러는 것이면 사악한 것이다. 저런 것들이 지금껏 이 사회의 주류로 있었다. 진짜 대단한 대한민국이다. 아직 망하지 않았다. 저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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