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농사를 짓는 데도 돈이 들어간다. 종자며 비료며 농약이며 때되면 인건비까지. 무엇보다 농민 자신이 농사짓는 동안 먹고 살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간과하는 부분일 것이다. 노동력은 결코 공짜가 아니다. 일을 하는 동안 최소한 먹고 살 수 있어야 노동자의 노동력도 유지된다. 당장 하루에 한 끼밖에 먹지 못하는데 얼마나 농사를 잘 지을 것이며 공장일을 잘 할 것인가.

바로 그제다. 집에 쌀이 떨어져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주문 할 때 한 번에 많이 사 놓고 더구나 혼자 사느라 먹는 양이 많지 않아 진짜 몇 달만에 주문하는 것이었다. 무지 올랐다. 20킬로그램 기준으로 거의 만원 넘게 오른 것 같다. 이 뭔 상황인가? 그런데 기억을 더듬으니 그와 관려한 보도를 보았던 기억이 있었다. 농민 입장에서 쌀값이 정상화되었다고. 그동안 쌀값이 너무 빠서 농민들의 시름이 깊었는데 비로소 쌀값이 겨우 올라서 제법 괜찮아졌다는 내용이었다. 아, 그랬구나.

그러고보면 박정희 이래로 정부의 정책은 언제나 한결같았었다. 당장 주식인 쌀값을 끌어내려서 도시의 생활물가를 낮추고 나아가 도시노동자의 임금인상요인을 미연에 차단한다. 다시 말해 쌀값이 싼 만큼 최소한의 임금으로도 먹는 것 만큼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으니 굳이 더 높은 임금을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요구하지 않아도 된다. 확실히 덕분에 최소한 도시에 살면서 밥 만큼큼 오히려 물릴 정도로 걱정없이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제값을 받지 못해 항상 막대한 빚에 치여 사는 농민들의 현실일 것이다. 농사가 돈이 되지 않으니 농민들은 하나둘 고향을 등지고, 고향을 떠난 농민들은 임금노동자가 되어 노동의 공급을 늘리게 된다. 이촌향도란 자연스러운 현상만이 아닌 정부가 의도적으로 조장한 상황이기도 한 것이다.

노동자에게 더 적은 임금만 주기 위해서 생활물가를 낮추고, 생활물가를 낮추기 위해서 쌀값을 떨어뜨리고, 그 과정에서 그 쌀을 생산하는 농민을 희생시킨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은가? 카드사용자의 혜택을 늘리기 위해 카드회사의 이익을 늘려야 하고, 그를 위해서는 자영업자들의 카드수수료를 올려받아야 하고, 그를 위해서 최종적으로 자영업에 고용된 노동자의 임금을 일정 이하로 끌어내려야 한다. 내가 사먹는 밥값이 너무 비싸니 그 재료를 생산하고 공급하는 이들이나 식당 종업원들의 급여를 낮춰야 한다. 그러면서 자기 월급 안 오르는 것은 불만을 갖는다.

저비용사회란 이와같이 서로간의 착취에 의해 유지되는 사회인 것이다. 지배층의 사치와 낭비를 막겠다고 세금과 함께 관리들의 농봉까지 줄였던 조선이 그 대표적인 경우일 것이다. 당장 들여야 하는 비용이 있고 써야 하는 지출이 있는데 수입이 충분치 못하니 공짜로 쓰거나 알아서 비용을 조달하게 한다. 그래서 죽어나는 건 백성들 뿐이지만 양반들이야 어찌되었거나 크게  상관할 일이 아니었다. 한 달 내내 죽어라 일해도 생활비도 못 버는 사람들에게 내가 더 싸게 써야겠으니 임금을 더 높여 받지 말라. 자기가 밥먹는데 돈 몇 천 원 아끼기 위해서 종업원 핸드폰 요금도 너무 비싸다. 그러면 자신의 임금도 누군가를 위해서 그리 낮출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끌어내리고 서로가 서로를 짓밟는 세상을 아마 불가에서는 수라도라 부르고 있을 것이다. 먹어도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굶주림은 아귀도의 저주다.

최저임금과 관련한 논란을 보며 느끼는 것이다. 쌀값이 올랐으니 잘못되었다. 물가가 올랐으니 틀렸다. 그런데 자기 월급 오르는 것은 옳다. 그동안 물가도 오르고 지출도 늘었으니 그 만큼은 받아야 한다. 더 고약스런 것은 그런 본능적이고 원초적인 탐욕과 이기심을 부추기는 언론과 정치권이다. 다른 사람의 이익이 내게 손해가 되고, 따라서 내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희생시켜야 하는 지옥의 논리만 주입할 뿐이다. 나중 일은 생각지 않는다. 당장 나보다 못한 저들이 이익을 보는 상황만 막아야겠다. 수라도 축생도 아닌 말 그대로 지옥이다. 이미 현실이 지옥인 것일까.

내가 더 많은 임금을 받으려면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여야 하는 것이다. 전체 국민소득이 오르는 것은 내 저축이 느는 것이 아닌 그렇게 늘어난 지출과 비용이 늘어나는 것을 뜻한다. 선진국네서 오히려 식료품이나 생필품의 가격이 싼데도 생활물가는 비싼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람을 고용해 쓰는 비용이다. 사람에 대한 비용이다. 하물며 생활물가가 어지간한 수입으로는 유지조차 버거운 상황에 임금만 억제하자 말한다. 언제는 물가가 안 오른 것처럼. 다른 이유로 오르는 것보다 다른 사람의 임금 때문에 오르는 것은 참을 수 없다. 뭐라 말할 수도 없다. 대한민국과 그 국민의 수준인 탓이다. 그들이 말하는 인정이고 정의다. 같잖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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