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근세 유럽의 어느 전장이었을 것이다. 당시 많은 군주들이 그랬던 것처럼 어느 군주가 전쟁을 하라고 이탈리아에서 비싼 값에 용병들을 고용해 투입했다. 그런데 중요한 전투에서 정작 이 용병들이 근처의 마을을 약탈하느라 전장에서 이탈하면 바람에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패했었다.


근대 유럽에서 상비군에 대한 요구가 커진 이유였다. 국민개병제가 시작된 이유이기도 했다. 돈을 목적으로 고용된 용병들은 더 많은 돈을 위해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고용주를 배신했다. 돈을 주지 않으면 바로 반란을 일으키고, 약탈에 몰두하느라 아예 전투는 돌아보지도 않는다. 전황이 불리해지면 가장 먼저 도망치는 것도 용병이다. 명령도 듣지 않고, 기강은 문란하고, 무엇보다 전장에서 믿고 뒤를 맡길 수 없다. 


원래 이익으로 뭉친 집단은 그 이익이 사라지면 바로 흩어지고 만다. 이익이 있을 때는 동료이고 상관일 수 있지만 이익이 없다면 더이상 아무 관계도 아니다. 돌아올 이익에 대한 기대가 있으니 충성도 바치고 헌신도 하는 것이지 아무 이익이 없는데 혼자서 손해만 보는 경우도 없다. 탐욕스러운 자가 유능할 수 없는 이유다. 이익이 있다면 누구보다 열심히 능력을 다하겠지만 이익이 없다면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이전 청와대에 머물던 주인은 무엇으로 주위와 자신을 묶고 있었을까? 신념? 의리? 인정? 아니면 욕망?


더이상 대통령은 없었다. 대통령 대행의 집무실도 청와대에는 없었다. 지시하는 사람은 있지만 감시하는 사람은 없다. 지시받은 업무는 있지만 그것을 감독살 당사자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끝까지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주어진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라면 그럴 수 있도록 동기가 주어져야 하는데 그 동기란 것이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일일이 청와대에 있는 모든 문서를 찾아서 파쇄하거나 봉인해서 기록물관리실로 넘기는 자체도 보통 성가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쉽다면 쉬울 수 있지만 그렇다고 굳이 보이지 않는 곳까지 꼼꼼이 뒤져가며 완벽을 기하기에는 몸도 마음도 너무 피곤하다.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자신의 처지에 대입해보더라도 그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내가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해야 하는 것은 그 대가로 회사가 나에게 월급을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이상 회사에서 월급을 주지 못한다. 이제 얼마 안있으면 회사가 망하든 사장이 바뀌든 더이상 내가 월급을 못받는 상황이 벌어질지 모른다. 더구나 어차피 열심히 일하나 대충 일하나 받는 월급은 같다. 후자는 실제 경험한 일이기도 하다. 괜히 열심히 해보겠다고 부산떨다가 대충 일해도 비슷한 월급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같이 대충 일하게 된다. 원래 사명으로 시작한 일도 아니었던 터다. 내가 하고 싶어서 잘해보고 싶어 시작한 일이 아니었기에 돈이 동기가 되지 않는다면 더이상 열심히 일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사실 리더십이란 바로 그를 위해 필요한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왜 지금의 일을 해야 하는지, 더 열심히 더 잘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이다. 강제로 주입한 이유가 아니다. 스스로 찾아내고 깨달은 자신의 동기다. 그렇기 때문에 일을 자신의 사명으로 여겨야 한다. 일을 자신의 보람으로 여겨야 한다. 일을 잘하는 것이 곧 자기의 실현이기도 하다. 그동안 청와대의 기강이 얼마나 엉망이었는가. 당장 자신들의 리더인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서 과연 청와대 직원들은 얼마나 자신의 일에 자부심과 사명을 가지고 있었겠는가. 온통 썩어서 난장판이 되어 있는데 자신들만 고고하고 주어진 책임을 다하는 것은 차라리 비현실적이다. 그것이 곧 지난 정부의 현주소였던 셈이다. 


사실 그래서 더 괘씸한 것이다. 차라리 사악한 것이 무능한 것보다 낫다. 최소한 사악해도 능력만 있으면 필요한 상황에 그 능력을 발휘할 기대라도 해 볼 것이다. 뻔한 부정과 비리조차 제대로 모르게 감추지도 못한다. 체계적으로 사람들을 부려 완벽하게 마무리할 줄도 모른다. 사람들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다. 자기가 월급을 주던 사람들조차 제대로 다루지 못해서 여기저기 빈 곳이 생기고 새어나가는 것들이 생긴다. 이런 놈들이 만에 하나 나라에 큰 일이라도 생기면 제대로 대처할 수는 있겠는가. 차라리 세월호라 다행이라는 끔찍한 생각마저 하게 된다. 그나마 수백의 생명으로 끝났으니 다행이지 그보다 더 큰 일이 벌어졌어도 거의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을 것이다. 속수무책으로 보고만 있었을 것이다.


무능해서 다행이라 해야 하나? 그보다는 저런 것들이 무러 행정부의 수반이자 국가원수로서 나라의 중요한 일들을 책임지고 결정해 왔다는 사실에 소름이 끼친다. 그런 인간을 찍어주고 지지해 준 국민이 과반에 가깝다는 것은 한국인과 한국이라는 사회에 대한 멸시로 이어진다. 그때 언론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지금 야당의 정치인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그래도 멍청하니 이렇게 사실도 밝혀지고 진실도 사람들 사이에 알려진다. 다시 기회가 주어졌다. 이제 과연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국민들은 다시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가?


하다하다 진짜 이렇게까지일줄은 상상도 못했다. 박근혜 자신은 물론 주위마저 결국 이런 수준에 지나지 않았었다. 국가원수였다. 대한민국 정부의 수반이었다. 내가 사는 나의 나라 대한민국의 현실이었다. 그나마 다음 대통령이 문재인이라서 다행이다. 가슴을 쓸어내린다. 화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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