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보았던 어느 코미디 프로그램의 한 장면이었다. 당시 고 구봉서씨가 한의사를 연기했었는데 환자를 앞에 두고 장기만 두는 이상한 한의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무려 세 판이나 마저 장기를 두고 나서야 네 번 째 진료에서 구봉서씨는 이리 진단을 내리고 있었다.


"위가 헐었네."


고작 그 말 한 마디 하려고 이리 시간을 끌었는가? 자꾸 편견이 생기더라는 것이다. 마음이 이리저리 쏠리는 것이 느껴져서 장기를 두어 마음을 정리하고 세 번이나 더 진찰해서 겨우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물론 내시경으로 했으면 바로 나왔을 진단이기는 했다. 차라리 조선이 배경이었다면 더 그럴싸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건 이 글의 주제가 아니므로.


오히려 확신에 찼을 때 나는 회의한다. 오히려 확신을 가지고 글을 쓸 수 있을 때 오히려 한 발 물러서서 천천히 고민한다. 그래서 내가 글이 늦다. 남들 다 결론을 내리고 나서도 여전히 혼자서 고민 중이다. 


사람이 가장 위험한 때가 확신에 찼을 때다. 역사상 수많은 범죄들이, 아니 범죄를 넘어선 죄악들이 바로 그런 확신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었다. 확신에 필요한 것은 그 확신을 정당화시킬 수 있는 근거다. 먼저 결론을 내리는데는 근거가 필요해도 일단 결론을 내리고 나면 근거따위는 필요없다. 결론을 내리고 그 결론에 맞는 근거들만 취사선택하면 된다. 혹시나 나는 그러지 않는가.


남들이 뜨거울 때 오히려 나는 차갑다. 남들이 열심일 때 나는 오히려 게으르다. 인터넷의 장점이다.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그렇게 냉정하게 거리를 유지하기가 어렵다. 또 한 바탕 뜨거워졌구나. 그래서 차갑게 타자가 되어 그것을 지켜본다.


대중을 믿지 않는다. 벌써 몇 년이 지났다. 타진요 사태 때 그 잘난 네티즌들이 어떤 판단을 내렸는가를 기억한다. 언론이 먹고 사는 것도 그런 선동에 잘 넘어가는 대중이 있어서다. 대나무 그림자만 비쳐주면 알아서 칼인 줄 알고 신방을 뛰쳐나간다.


역시 나는 결론을 내리지 못하겠다. 그것이 문제라면 드루킹은 더 큰 문제가 아니겠는가. 유력 인사들이 직접 메신저도 주고받고 심지어 강연까지 했던 이들마저 있다. 정황은 정황일 뿐 증거가 될 수 없다. 너무나 당연한 사실인데. 뭔가 새로운 게 있는가 싶었다. 난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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