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되었다. 어느 사이트에서 논쟁이 붙었다. 한 사람은 지방대학 출신의 백수, 한 사람은 서울대 출신의 전도양양한 논객,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 논쟁의 결말은 의미없다. 내게 가장 크게 인상에 남은 것은 그 과정에서 서울대 출신의, 아마 지금도 진보진영의 중요한 논객을 당사자의 한 마디였다.


"지방 3류대학 출신 주제에..."


과연 당시 적대적일 정도로 정치적 올바름을 강요하던 자칭 진보인사들은 그 발언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우습게도 없었다. 전혀 누구도 문제삼지 않았었다. 왜? 그는 서울대 출신이었고 진보의 주류이자 성골이었을 테니까. 내가 진보진영에 학을 떼게 된 계기였다.


그러고보면 그 전부터도 그랬었다. 뭔가 이야기를 해 보려 하면 누군가의 저거나 논문을 찾아 읽으라 하고 어떤 논쟁에 대해 알아보라 한다. 참고로 나는 글을 쓰면서 특정한 문헌이나 어느 개인의 주장에 대해 직접 인용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내가 주장이다. 내 생각이다. 오로지 내 입장에서 쓰는 글이다. 그렇다면 내가 쓴 이 글 안에서 모든 것은 완결되어야 한다. 비판이든 반론이든 무엇이든 마찬가지다. 그런데 인용한 문헌이나 주장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직접 말하기보다 배우라, 공부하라, 그렇다면 자신의 주장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바로 이것이 자칭 진보언론, 사회운동 진영에 대한 의심을 키우게 된 계기였었다. 그러고보면 자칭진보나 사회운동가들이나 명문대 출신들이 많다. 공교롭게도 여성운동가 가운데도 특정대학 출신들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리고 너무나 쉽게 말한다. 배우라. 공부하라. 그러니까 알아서 배우고 공부하기 전에 당신이 주장하고 싶은 바는 무엇인가?


당시 단지 서울대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념과 전혀 상관없이 의미를 부여하며 이해하려 애쓰던 모습을 기억한다. 내가 극좌와 뉴라이트가 사실은 하나라 여기게 된 계기였다. 단지 같은 서울대 출신이니, 혹은 서울대 교수일 테니 주장하는 바 근거가 있고 타당성도 있을 것이다. 그 밖의 모든 비판하는 개인이나 세력은 단지 무지해서 그러는 것 뿐이다. 더 넓혀가면 그래도 sky는 아닐까. 여성운동의 중심인 그 대학은 아닐까.


최근 특히 진보라 주장하는 언론이나 지식인 가운데 오히려 자유한국당보다 민주당과 특히 문재인 정부에 더 적대적인 모습들을 보며 자연스럽게 드는 생각이다. 그래도 자유한국당에는 서울대 출신들이 많다. 당장 원내대표부터 서울대 출신이다. 아니더라도 명문대 출신들이 많다. 그에 비하면 문재인 대통령이 나온 경희대란 얼마나 하찮게 여겨질까? 유시민 작가가 단지 서울대 출신들의 편견을 바로잡으려 노무현 전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나선 이유를 알 것 같다. 진보의 이념과 상관없이, 차라리 보수에 편승하더라도 문재인 정부를 흠집낼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


한겨레나 경향이나 마찬가지다. 그나마 신뢰하던 참여연대마저 다르지 않았다. 무엇보다 신재민이 명문이라는 고려대 출신이었다. 그래서 말하는 것이다. 한국사회에는 좌와 우가 있는 것이 아니라 위와 아래만 있다. 차라리 명문대 출신의 자유한국당을 바라지 경희대 출신의 문재인을 바라지 않는다. 차라리 서울 출신의 자유한국당을 바라지 부산 출신의 문재인을 바라지 않는다.


그들만의 엘리트의식일 것이다. 더 강하게 말하면 순혈주의다. 자기들만이 정의를 말할 수 있다. 자기들만이 세상을 바르게 이끌 수 있다. 그것은 이념도 정당도 아니다. 그들만의 클래스다. 마르크스는 옳았다. 세상에는 계급이라고 하는 수직적 구조만이 존재한다.


신재민 논란을 보며 더욱 확실히 깨닫게 된다. 한겨레와 경향의 보도를 보면서. 정작 신재민 전사무관이 폭로한 상식 수준의 내용들에 대한 그들의 나태한 검증들을 보면서. 저들에게 진짜 적은 누구인가. 정부 초기에 대부분 확인했을 것이다. 그들이 추구한 진보란 그런 것이었다. 우습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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