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노조의 입장은 이해한다. 나 역시 비슷할 테니까. 심지어 직속상사인데 현장을 모른다며 직원들끼리 모여 뒷담화한다. 하는 일이 뭐냐고. 도대체 뭘 알고 있느냐고. 그런 주제에 상사랍시고 되도 않는 지시를 한다고. 하물며 고시까지 치렀으면 자기에 대한 확신이 남다를 것이다. 그러니 되도 않는 청와대니 청와대가 내려보낸 장관의 지시따위 받지 않고 자기들끼리 모두 결정하고 집행하겠다. 바로 일본이 그러고 있다. 정치인 출신 장관은 얼굴마담이고 대부분 정책의 결정과 집행은 엘리트 관료들이 하고 있다. 나름대로 엘리트라 여기는 그들의 입장에서 그것은 자신들의 이익과도 합치한다.


문제는 정치권과 언론이다. 보수정치인이나 언론이야 아예 기대도 하지 않는다. 박근혜의 예에서 보듯 그놈들은 자기 이익을 위해서면 똥도 카레라며 맛있게 주워먹을 놈들이다. 나라가 망하든 말든 자기 이익만 챙길 수 있으면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번 일본 초계기 관련한 사안들에서 자칭 보수정치인과 언론들이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가를 보면 분명하다. 그런데 정작 사회정의와 가치의 회복을 주장하는 진보, 혹은 사회운동진영의 반응들이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공무원이 자기 부처에서 이러저러한 논쟁이 붙고 그 가운데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있으면 언론에 나와서 적폐라며 떠드는 것을 허용하자는 것 아닌가. 사기업에서도 결정 하나를 하려면 여러 대안을 놓고 치열하게 논쟁도 하고 할 텐데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납득하지 못하면 그 과정에 대해 폭로하며 사회문제화하는 것을 허용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과연 조직이 제대로 굴러갈 수 있을까?


고작 10명 남짓한 작은 회사에서도 회의 한 번 하면 별 해괴한 뻘소리들이 아무렇지 않게 튀어나오고는 한다. 차마 기록으로 남기기도 민망안 되도 않는 헛소리들이 진지하게 오가기도 한다. 그런 게 회의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부적합한 것들은 서로 논쟁을 통해 치열하게 비판함으로써 하나둘 걸러지고 최대한 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하나가 남게 된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나온 발언 하나 주장 하나들을 모두 문제삼을 것이면 누가 회의에서 의견을 제시하고, 논쟁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자기 주장을 내세우겠는가. 누군가 그게 틀렸다며 언론에 공개하고 그것을 문제삼는 순간 자신에게 큰 불이익이 돌아올 수 있다. 결국 모두가 납득할만한 고만고만한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주장들만 오가게 되고 오히려 그것이 더 공직사회를 경직시키는 원인이 된다.


괜히 조선에서 실록을 만들며 실록의 자료가 된 사초들을 물에 씻어 없앴던 것이 아니다. 괜한 분란의 소지를 남기지 않는다. 최종적인 결과가 나오기까지 그 과정에서 자칫 생길 수 있는 문제의 소지들을 철저히 배제한다. 그럼으로써 사관과 실록을 편찬하는데 참여한 이들의 안전을 보장한다. 그래야 사관도 실록청의 관리들도 소신을 가지고 엄정하게 객관적인 기록들을 후세에 남길 수 있다. 지금 자칭 진보, 자칭 사회운동가들, 혹은 심지어 여당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는 신재민에 대한 동정론은 그것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은 문제삼자. 책임지울 수 있는 것은 책임지우자. 그러니까 공무원들은 그냥 납죽 엎드려서 눈치나 보고 문제되지 않을 뻔한 소리와 행동들만 해야 한다. 아니면 언론을 이용해서 아예 공개적으로 사회적인 이슈를 만들어가며 외부에서 논쟁하라. 그것이 그들이 바라는 국가인가.


내부의 논쟁은 내부에서 끝내야 한다. 그리고 일단 결론이 나온 사안에 대해서는 따로 이견을 말해서는 안된다. 충분히 자기 의견을 말하고 주장을 내세운 뒤 그래서 모두의 합의에 의해 결론이 내려졌다면 그를 충실히 따라야 한다. 민주주의의 원리이기도 하다. 논쟁은 치열하게 하되 일단 내려진 결론에 대해서는 모두가 존중하며 따라야 한다. 선거를 치르는 동안은 서로 죽일 듯 적대하다가도 일단 결과가 나오면 서로에 대해 존중하며 그동안의 과정들을 잊는다. 선거 과정에서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서로에 대한 공격을 잊지 못해서야 결국은 감정과 보복만 남을 뿐이다. 그런 건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 과정에서 불법이나 부정이 있었다면 모를까 합리적으로 정해진 절차에 의해 내려진 결론을 그것도 직장을 그만두로 폭로의 형식으로 세상에 알리는 것은 더구나 비겁하고 비열한 행위인 것이다. 그러면 아직 남아있는 동료들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러니까 공무원 노조의 입장은 이해한다. 행정자치부의 주인은 공무원인 자신들이다. 기획재정부의 주인도 장관이나 청와대가 아닌 기획재정부에 뿌리내린 자신들이어야 한다. 그러니 지시같은 건 듣고 싶지 않다. 오히려 자기들이 모든 걸 결정하고 싶다. 모든 직원들이 같은 생각을 한다. 말했듯 나도 내 상사가 하는 부당한 지시들을 듣고 있으면 몇 번 씩 저 인간 면상을 후려갈기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되는 이유는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이야 말로 국민에 의해 선출된 국민의 대리인이기 때문이다. 그 대통령이 임명한 장관들이 국민이 선택한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정책방향을 설정하고 구체적인 정책들을 수립한다. 문민통제란 군만이 아닌 관료사회에까지 적용되는 민주주의의 대원칙인 것이다. 그마저 부정하려는 것인가.


다시 말하지만 나는 보수에 대해 전혀 아무런 기대도 가지고 있지 않다. 최소한 머리가 있고 양심이 있으면 한국보수를 지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예 이성도 염치라는 것도 없다. 그래서 신재민 전사무관도 박근혜를 그리 높이 평가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않는다. 아무 생각도 않고 있다. 그래서 자기들끼리 마음대로 해도 상관없었다. 그래서 특히 박근혜 정부 아래에서 정부가 무슨 역할을 하고 있었는가. 그런데도 자칭 진보네 사회운동가들이네 하는 소리들을 보면 가관도 아니다. 그놈들 주장대로 하면 진짜 나라꼴 잘 돌아가겠다. 그냥 어이가 없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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