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인상으로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무인결제기인 키오스크의 도입이 늘고 결국 고용없는 점포의 수도 늘게 되었다. 그러니까 최저임금 인상이 자영업의 무인화를 부추기고 고용을 줄이는 원인이 되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18세기 영국노동자의 임금이 오르지 않았으면 공장의 기계화도 조금 더 늦추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참고로 산업혁명 이전에도 대부분 도시의 임노동자들은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정한 최소한의 생활도 되지 않는 임금만을 받으며 일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보다 더 낮은 임금만 계속 받았으면 비참하지만 기계없는 공장에서 계속 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정말?


원래 모든 제품의 가격은 시간이 갈수록 떨어지게 되어 있다. 실사용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수집용을 제외한 모든 제품은 기술의 발달과 비례해서 가격이 낮아지도록 되어 있다. 당장 컴퓨터만 해도 내가 처음 장만한 386컴퓨터의 가격이 당시 가격으로 무려 150만원이었다. 지금 150만원이면 거의 준하이엔드로 맞출 수 있다. SSD도 비싸서 처음에는 못 달았는데 이제 조금 있으면 1테라짜리도 당당하게 달 수 있을 듯하다. TV는 어떨까? 하다못해 라면조차도 신라면이 처음 나왔을 때 가격이 200원이었는데 몇 배나 오른 지금 위상은 당시 100원 120원하던 라면들과 비슷한 수준이다. 그 아래가격의 라면들은 가격이 싼데도 잘 사먹지 않는다. 이 경우는 그만큼 값비싼 더 맛난 라면들에 익숙해지며 시장의 요구가 상승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반면 사람의 가치는 시간이 갈수록 상승한다. 그보다는 사람이 누려야 하는 최소한의 삶의 기준이 기술과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비례해서 상승하게 된다. 예전에는 굳히 노동자에게 휴대폰같은 것은 필요 없었다. 그보다 훨씬 전에는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전화기 있는 집을 묻고 있었다. 냉장고가 일반화된 것도 불과 수십년 사이다. 에어컨을 당연하게 여기기 시작한 것은 그보다 더 짧다. 그렇다고 지금에 와서 당신은 노동자이고 돈도 못 버니 스마트폰도 쓰지 말고 컴퓨터도 쓰지 말라 강요할 수 있을까? 한여름에 더워 죽겠는데 에어컨도 써야 하고 미세먼지로 죽을 것 같은데 공기청정기도 써야 한다. 그렇게 시장이 만들어지고 수요가 늘어나며 경제는 돌아간다.


바로 그것이 문제인 것이다. 무인결제기도 공산품인 만큼 기술이 발달하고 대량생산이 이루어지면 갈수록 가격은 떨어지게 되어 있다. 반면 어찌되었든 노동자가 필요로 하는 최소한의 임금수준을 갈수록 올라갈 수밖에 없다. 어느 순간 두 개의 선이 서로 교차하게 된다. 차라리 사람을 고용해 쓰는 것보다 무인기계를 사용하는 것이 더 나은 경우다. 비단 무인결제기만이 아니다. 이미 대부분 생산공장들은 상당한 수준으로 자동화가 이루어져 있고, 그만큼 전보다 더 적은 노동자만을 고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예 노동자가 없는 전자동화된 공장들을 자랑하는 경우마저 있다. 다시 말해서 기술의 고도화와 고용의 감소는 이미 역사적으로도 입증된 필연적 관계란 것이다. 기자라는 새끼들이 똥들이라 그렇다. 역사와 경제의 발전에 대해 조금만 살펴봤어도 저따위 기사는 쓰지 않았을 것이다. 알고도 썼다면 더 나쁜 놈들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차피 최저임금을 낮춰봐야 기계들은 기술의 발달로 그보다 더 낮은 가격으로 더 많이 더 빠르게 보급될 것이다. 거기서 최저임금을 더 낮추면 정작 일을 하고도 생활이 아예 불가능한 경우마저 나오게 된다. 그냥 최소한으로 먹고 입고 자는 것만 할 수 있을 뿐 그 밖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만다. 그렇게까지 해가며 고용을 유지해야 하는가? 최저임금인상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그것이다. 지금보다 더 낮은 임금에 더 낮은 조건으로 노동자가 자신을 희생해가며 일자리를 유지해야 한다. 당연히 자기들더러 그렇게 일하라면 절대 하지 않는다. 다만 그래야 자기들이 값싼 커피를 먹을 수 있으니까. 싼값에 택배를 이용할 수 있을 테니까. 더 적은 돈으로 식당을 이용할 수 있을 테니까. 더 많은 카드혜택을 누릴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결국 일자리가 줄어든 만큼 시장의 구매력을 유지하려면 임금을 올리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이 없다. 줄어든 만큼 남은 노동자들이 더 많은 임금을 받도록 함으로써 그들의 구매력을 시장의 동력으로 삼는다. 소득주도성장의 첫째 노동자의 최저임금을 올려야 하는 이유다.


그러면 최저임금을 올리는 것만으로 끝인가. 이전의 한국경제는 양적 경제였다. 싸게 많은 양을 팔아 돈을 버는 경제였다. 한국 노동자의 노동생산성이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낮다는 말이 나오게 된 이유다. 부가가치가 높은 기술위주의 제품 대신 아무나 생산할 수 있는 제품을 그보다 더 싸게 더 대량으로 공급하며 이익을 누렸다. 그리고 당연히 싸게 많이 만드는 것은 지금 중국보다 잘하는 나라가 없다. 한국기업들의 실적이 악화된 이유다. 그런데도 더 싸게 더 많이 생산해서 시장에 풀려니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노동자와 하청기업의 임금을 쥐어짜는 것 뿐이다. 그래서 정부도 새로운 경제정책의 방향으로 숙련노동 주도의 중소기업 성장에 두고 있다. 한 마디로 중소기업부터 기술개발과 노동자의 숙련도에 기반한 고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나아가 대기업들 역시 기존의 납품단가를 쥐어짜는 장식보다 보다 더 경쟁력있는 제품을 공급받아 자신들의 경쟁력도 제고하는 방식으로 나가겠다. 다시 말해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 일방적인 착취구조를 끊겠다. 그렇게 중소기업이 경쟁력을 가지면 결과는 어떻게 되겠는가?


프랜차이즈 기업들의 갑질을 억제하는 것도 결국 그런 일환인 것이다. 프랜차이즈 기업들이 가맹점주로부터 부당하게 편취하는 이득을 보전함으로써 대부분 중소자영업자인 가맹점주의 권리를 보호하고 그들의 소득을 지켜준다. 편의점 출점제한도 마찬가지다. 편의점이 늘어나면 본사 입장에서야 매출이 느니 좋다. 그런데 한정된 시장을 여러 편의점이 나누어야 하니 각 편의점의 매출과 이익은 비례해서 줄어들게 된다. 우리 동네만 해도 걸어서 10분 거리 안에 편의점만 무려 7개가 넘는다. 그렇게 프랜차이즈 기업이 일방적으로 편취하던 이익을 줄이고 중소자영업자들의 소득을 보전해서 결국 그들이 고용하는 노동자에게로 궁극적으로 시장으로 돌아오게 만든다. 최저임금인상 이외에도 소득주도성장을 위한 정책들은 이미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는 것이다. 다만 그 사실을 알리지 않는다기보다 알리려 하지 않는 언론들이 철저히 무시하고 있을 뿐. 그럼에도 어차피 서민은 어렵고 소상공인들도 대부분 사정이 좋지 않으니 여전히 경기가 어렵다는 주장은 성립한다.


한 마디로 소득주도성장이란 변화하는 경제현실에 있어 하나의 필연적 대응이라 할 수 있다. 갈수록 고용은 줄어든다. 고용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아니 생산직의 고용은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갈수록 줄어들고만 있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도 생산에서 줄어든 고용을 흡수한 것은 생산직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임금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업이었다. 이전에는 사업이 될까 싶었던 부분까지 수요자의 편리를 파고들어 서비스업의 분야는 그 종류부터 다양해지며 그 폭이 넓어지고 있었다. 종사자의 수도 늘어나고 있었다. 문제는 그동안 너무 저비용구조가 고착화되며 이들 서비스업까지도 한계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노동자의 최저임금이 올라야 서비스업을 이용하는 회수도 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해주는 공공부문의 사회서비스들이다. 치안과 소방, 안전, 그리고 보육과 육아 같은 것들이다. 원래 정부가 늘리겠다 한 공공부문의 고용이란 거의 대부분 이런 부분들에 해당하는 것들이었다. 그러면 정부가 소득주도성장이랍시고 최저임금 말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는가. 그러니까 기자들이 - 심지어 진보언론들마저 이런 내용들을 일부러 보도하지 않고 묻은 탓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것 뿐이란 것이다.


노동자의 최저임금을 올리고, 대신 중소기업과 자영업의 소득을 끌어올리고, 대신 대기업은 이익을 줄이고 시장의 확대에 더 큰 기대를 걸어야 한다. 대기업을 희생시켜 중소기업과 자영업을 살리고 노동자의 임금도 올려준다. 당장 카드수수료 인하 논란에서 그 실체가 분명히 드러난다. 바로 어제까지 중소자영업의 처지를 동정하던 언론이 카드사 죽겠다며 수수로 인하에 반대하고 나선다. 누구를 위한 소득주도성장이고 누구를 위한 대기업의 이익일까? 그럼에도 어차피 내 일이 아니니 생활이 되든 말든 너희는 더 적은 돈만을 받고 일하라.


오히려 내가 일하는 주위에 그런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정작 최저임금 인상의 영향을 받아 월급이 오르게 되는 처지에 최저임금이 오르면 물가도 오른다며 인상에 반대한다. 물론 내 월급은 올라야 한다. 그러나 나의 편리를 위해서 다른 사람의 월급이 올라서는 안된다. 내 월급으로도 생활은 어렵지만 다른 사람은 그보다 더 적은 돈으로 일해야만 한다. 소득주도성장이란 무엇인가? 인간다운 삶의 회복이 아닐까? 그리 생각하는 이유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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