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긴 회사에서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가만 내벌려두면 어차피 해온 일이고 자기가 해야 할 일이니 습관처럼 알아서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윗사람이 나타나서 이러쿵저러쿵 캐묻기 시작하면 자신도 모르게 윗사람의 판단과 결정에 의지하게 된다. 무언가 지시를 내려주지 않을까.


관료화된 조직일수록 더 그렇다. 책임소재가 걸린다. 그리고 책임소재는 인사와도 직결된다. 자칫 윗사람에게 잘못보였을 경우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더 나은 의미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도 있다. 자기보다 더 많이 알고 더 크고 많은 권한도 가지고 있다. 윗사람의 지시를 따르면 자기가 하는 것보다 더 효율적으로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니까 청와대에서 전화가 걸려온 시점에서 청와대의 지시와 명령에 의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 국가위기관리 기본지침이 일방적으로 바뀌기 전까지 청와대 안보실장이 국가적 재난이나 위기상황에서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그 청와대에서 사실관계를 파악하려 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보다 올바르고 정확한 지시를 내릴 것을 기대하고 그것을 기다리는 것은 그런 점에서 전혀 이상하지 않다. 청와대에서 곧 지시가 있을 것이니 그것을 기다려보자. 그렇다면 평소 교육받고 훈련받은 것들이 있을 것임에도 해경이 구조에 소극적이었던 이유가 비로소 납득이 간다.


당장 눈앞에 구조해야 할 사람이 있지만 명령을 내릴 위치에 있는 사람이 전화를 걸어왔다. 평소 하던대로 사람을 구출해야 하지만 보다 올바르고 정확한 지시를 내려야 할 당사자가 상황을 파악하려 이것저것 묻고 있었다. 최소한 내가 즉석에서 판단을 내리는 것보다 그 지시를 따르는 것이 더 현명하지 않을까. 그래야 책임도 덜고 공도 인정받을 수 있다는 현실적인 계산도 있다. 그런데 청와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정말 억울한 일이었을 것이다. 물론 해경도 잘한 것은 아니다. 일단 배가 침몰하고 있다면 사람부터 살리는 것이 무조건 옳다. 하지만 사람의 심리가 그렇지 않다. 특히 권위에 의존하는 인간의 본성은 본능에 가까운 것이다. 이성으로 쉽게 제어되는 것이 아니다. 만일 그때 청와대가 아예 아무것도 모르고 설사 알더라도 굳이 관심조차 갖지 않았다면 그때는 어땠을까?


아무 책임도 의지도 없는 인간들이 그저 윗사람의 눈치를 보느라 의미없이 상황을 묻기만 반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윗사람은 아다시피 아무것도 않고 있었다. 기다림은 무한하지 않았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 그렇게 허무하게 지나가고 모두가 아는 그 끔찍한 비극이 일어나고 말았다.


아직도 세월호가 지겹다는 사람들이 있다. 유력언론까지 나서서 대통령이 뭘 할 수 있었겠는가 따져묻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그때 상황을 묻던 전화로 단 한 마디만 했었더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승객들을 모두 구할 수 있도록 하라."


어쩌면 당시 현장에 있었던 해경들 모두가 기다리고 있었던 명령이었을 것이다. 그 한 마디를 듣고자 그 다급한 상황에 더 다급하게 상황을 묻는 전화를 붙들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아무 말도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어쩌면 단순한 추측에 불과할 수 있지만. 끔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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