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주 유비가 죽고 후주 유선이 즉위하자 승상 제갈량이 가장 먼저 했던 일이 바로 오와의 관계복원이었다. 다름아닌 오에 패해서 선주 유비가 죽었던 것이었다. 아니 유비 이전에 관우와 장비 등 촉의 중심인물들이 오에 의해 죽거나 오로 귀순한 상황이었다. 이릉싸움에서 죽어간 이들이야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지난 일들보다 앞으로 조위를 상대해야 할 일이 더 급했다. 오와의 동맹 없이 위와 싸울 수는 없었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에도 선조는 새롭게 토요토미를 무너뜨리고 정권을 장악한 도쿠가와 막부와 외교관계를 복원하며 굳이 임진왜란에 대한 책임을 묻거나 하지 않았었다. 납치된 조선인을 돌려받는 과정에서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돌려주지 않으려는 것을 더 깊이 따져묻지도 않았었다. 중요한 것은 일본과의 관계를 회복함으로써 장차 있을 지 모를 군사적 외교적 긴장과 불안을 해소하는 것이었다. 이미 전쟁으로 인해 피폐해진 내정을 복구해야 했던 조선의 입장에서 외정의 안정은 무엇보다 중요한 필수불가결한 요소였었다.


베트남 역시 적이었던 미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하면서 굳이 과거 전쟁당시 있었던 전쟁범죄들에 대해 책임을 묻거나 하지 않았었다. 대한민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한 뒤에도 대한민국 정부에 직접 사과를 요구하거나 한 적도 한 번도 없었다. 굳이 대한민국 대통령들이 찾아가서 유감을 표명해도 괜찮다며 넘어가는 경우가 오히려 더 많았을 정도였다. 과거사에 대해 따져묻는 것보다 앞으로 미국과 대한민국과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 외교란 이해다. 더 거대한 국가적 이익을 추구하는 기술이며 과정이다. 미국과 대한민국과의 미래에 이익이 있다면 굳이 과거는 따져묻지 않는다.


노무현 전대통령이 일본에 더이상 사과요구를 하지 않겠다 말했던 이유이기도 했었다. 실제 역대 많은 정부들이 입으로는 일본정부에 과거사에 대한 책임있는 사과와 실천을 요구하면서도 정작 그것을 외교관계에 직접 연관지어 행동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 이명박이 개새끼라는 것이다. 굳이 독도까지 찾아가서 다른 사람도 아닌 일왕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었다. 박근혜 역시 위안부문제와 대일외교를 결부지었다가 결국 위안부협정이라는 말도 안되는 결과물만 내놓고 말았다. 과거사 문제는 정부간에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일본과의 국익을 매개로 한 외교는 그대로, 그와 함께 일본이 저지른 과거 식민지배동안의 반인권적 반인류적 범죄달은 또 따로. 그게 상식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독일에 여전히 과거 전쟁범죄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은 독일이 패전국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와 폴란드 등 주변국들이 독일이 과거 전쟁 당시 저지른 범죄들에 사과하고 배상하라 요구할 수 있었던 것도 독일이 패전국의 위치로 전락했기 때문이었다. 2차세계대전 당시 연합국 역시 수많은 전쟁범죄라 할 수 있는 행위들을 저질렀었다. 병사 개인의 강간이나 약탈, 학살은 물론 국가차원에서 저질러진 민간인에 대한 공격 역시 이루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한 것들이었다. 그래서 책임을 묻는가. 전승국이기 때문이다. 전쟁에서 이겼기에 그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아직 대한민국은 북한과 휴전 중이다. 이런저런 국방과 관련한 개혁을 추진하려 하면 항상 나오는 말이 우리는 아직 북한과 전쟁중인 상황이라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거나 최소한 개정하려 해도 아직 북한과 전쟁중인 불안한 상황이기에 그럴 수 없다는 반박부터 나온다. 그러면 전쟁이란 무엇인가? 바로 죽이고 파괴하는 것이다. 최대한 많이 죽이고 파괴하는 것이야 말로 전쟁의 본질인 것이다. 그래서 전쟁 동안 자국의 군인과 국민을 죽이고 시설들을 파괴했다고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인가. 무엇보다 그 전쟁을 끝내고자 하는 상황이다. 전쟁을 끝내는 것이 우선인가? 전쟁 중 일어난 일들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 우선인가?


평화는 미래를 위한 것이고 책임은 과거에 대한 것이다. 앞으로 있을 더 큰 이익을 위해 평화를 이루려는 것이고 과거 있었던 일들을 완전히 해결하기 위해 책임을 물으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앞에, 대한민국 국민들 앞에 놓인 더 중요한 과제는 무엇인가? 앞으로의 평화인가? 그 평화로 인해 이루게 될 더 큰 이익인가? 아니면 과거 일어난 일들에 대한 해결인가? 국가란 그렇게 잔인한 것이다. 무려 수십만의 젊은이들을, 그들이 가진 그만큼의 꿈과 재능과 열정과 가능성을 볼모잡으며 나라를 지키겠다 말하고 있다. 그를 거부하면 죄인이 되어 감옥에 가야만 한다. 국가가 개인을 합법적으로 억압할 수 있는 수단인 계엄이라는 것이 있다. 때로 국가의 이익은 개인의 이익을 초월한다. 


앞으로 다시는 그런 일들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과거 있었던 불행한 일들을 다시는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지금 당장은 과거에 대한 책임을 묻기보다 미래의 평화를 추구하는 것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더 큰 이익이다. 미국도 북한정권에 의해 억울하게 사망한 자국민에 대해 굳이 책임을 물으려 하지 않고 있다. 납북자 문제를 줄기차게 제기해 온 일본이 오히려 북핵문제가 해결되어가는 국면에 외교적으로 고립되어가는 모습도 지금 보고 있다. 외교란 친구사이에 그냥 말로만 물어뜯으며 싸우는 그런 유치한 것이 아니다. 하다못해 손에 총이나 칼만 들려 있어도 함부러 사과하라 책임지라 강요하지 못한다. 수천만 국민의 안위와 이익이 정부의 짧은 말 한 마디 사소한 행동 하나에 달려 있기도 하다.


별 되도 않는 소리를 떠들어대는 인간들이 있다. 굳이 이렇게 길게 쓰지 않아도 대부분은 상식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때로 국가간의 관계는 개인의 선악을 초월한다는 것을. 개인의 감정이나 판단을 아득히 초월하고 있다는 것을. 그것이 외교의 어려운 점이다. 그따위로 외교했으니 이명박도 박근혜도 그 꼬라지였었다. 그것을 다시 반복하려 한다. 뇌가 없는 것들은 답이 없다. 욕하면 또 누군가를 모욕하게 될 것 같아서. 하여튼 웃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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