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정치인은 차라리 멍청한 것보다 사악한 것이 낫다는 입장이다. 최소한 아주 멍청하지만 않으면 유불리 정도는 계산할 줄 안다. 무엇이 자기에게 이익이고 손해인지 구분할 줄 안다. 오로지 자기의 이익만을 챙기려 하다 보니 주위에 피해를 주는 것이지 결과적으로 다른 사람을 위하는 것이 자기에게 이익이 된다 여기면 제법 그럴싸하게 이타적이고 헌신적인, 그러면서 제법 영리한 행보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멍청한 건 답이 없다. 무엇이 유리하고 불리한지도, 무엇이 자기는 물론 모두에게 이익이 되고 손해가 되는지도 판단할 줄 모른다. 모두에게 피해를 입히고서도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조차 모른다. 구제불능이다. 결국 계속 잘못은 반복된다. 반성이 없는 잘못은 언제까지고 반복될 수밖에 없다.


설마 그래도 그렇게까지 무능할까 싶었다. 지금껏 추경안에 반대하던 자유한국당이 의결에 참석하기로 했으니 정족수는 충분할 것이다. 그래서 기껏 정족수까지 확보해 놓은 소속의원들을 각자 정해진 스케줄을 소화하라고 풀어주었다 한다. 도대체 자유한국당을 뭘 믿고? 지금껏 그렇게 악랄하게 정부와 여당의 발목을 잡고 사사건건 반대하며 방해만 해왔는데 이번에는 순순히 협조할 것이라 확신을 가졌던 것일까? 그래서 만에 하나 자유한국당이 괜한 심통으로 어깃장을 놓으면 그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그래서 결국 자유한국당이 표결을 거부하고 일방적으로 퇴장하자 정족수 부족으로 기껏 합의한 추경안을 의결조차 못할 뻔했었다. 겨우 일방적으로 정부를 비난하며 퇴장했던 자유한국당의 도움을 받고서야 간신히 정족수를 채우고 추경안을 통과시키고 있었다. 과연 밖에서 그런 모습을 지켜본 국민들이 여당인 민주당과 민주당의 정권인 현정부를 어떻게 여기게 될까?


그래서 더 어이없는 것이다. 심지어 웃고 있었다. 통과되어 다행이라며 정작 원내대표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통과되는 것으로 끝이 아니다. 그 과정이 문제다. 정부가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겠다며 추진한 추경이었다. 여당이 정부를 대신해서 야당과 협상하여 합의에까지 이르렀던 추경안이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바로 그 여당인 민주당에 소속된 국회의원들이 자리를 비운 탓에 하마트면 그 추경안이 무효화될 뻔했었다. 또다시 이전의 사분오열한 모습으로 돌아가서 정부가 추진한 중요한 첫추경마저 국회의원들이 자리를 비운 탓에 합의까지 하고도 지키지 못한 채 무산시킬 뻔했었다. 정부는 정부대로 여당인 민주당의 국회의원들조차 다독이지 못했고, 여당은 여당대로 소속 국회의원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다. 이놈들은 원래 안되는 놈들이다. 제 앞가림만 급급해서 당도 정부도 돌아보지 않는 놈들이다. 국민의당이 논평도 제대로 내놓았다. 이런 무책임하고 무능한 여당에게 국정을 맡길 수 없으니 야당인 자신들이 필요하다. 할 말이 있는가? 그래서 진짜 추경안이 무산되었다면 그 모든 책임과 부담은 여당인 민주당과 정부가 져야만 하는 상황인 것이다. 그런데도 추경안이 통과되었으니 어찌되었거나 잘된 것이다. 도대체 지금 상황의 중대함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다.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고 무엇이 문제였는지. 그러니까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고치고 바꾸면 되는 것인지. 겨우 정부와 여당이 쥐고 있던 국정의 주도권이 자칫 야당에게로 넘어갈지 모르는 상황인데 전혀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


확실히 우원식 원내대표가 좋은 사람인 것은 알겠다. 좋은 게 좋은 것이다. 사람의 선의도 잘 믿고 그래서 자신도 오로지 선의로서 다른 사람을 대하려 한다. 함께하겠다고 했으니 의심하지 않았고, 그럼에도 결국 자유한국당의 도움으로 추경안이 통과되었으니 다 잘된 일이라 생각했다. 한 마디로 결론은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상황이 반복될 것이라는 것이다. 조대엽 노동부장관 지명자를 낙마시킬 때도 마찬가지였다. 청와대로 하여금 모두의 비웃음을 받으며 당대표를 대신해서 사과하도록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결국 청와대와 민주당에 돌아온 것은 무엇인가. 야당에게는 명분을 주었다. 결국 정부와 여당을 굴복시키고 양보를 받아냈다. 그래서 그 결과 추경안을 통과시키기까지 정부와 여당이 야당으로부터 받아낸 것이 무엇이던가. 그런데도 누더기가 된 법안조차 하마트면 자신들의 실수로 무산시킬 뻔한 상황에서도 결국 되었으니 다 잘된 것이다. 더 첨예하게 민주당이 야당과 충돌하게 되었을 때 그때 우원식은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 야당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을까? 아니면 여당을 위해서 악역을 맡을 것인가? 당장 지금까지 과정들만 보더라도 우원식의 관심은 소속정당인 민주당이나 민주당의 당원, 지지자들이 아니다. 야당의 정치인이고 야당에 우호적인 언론이다. 결과가 좋다기에는 자신의 안이함으로 인해 정부와 여당 모두가 상당한 내상을 입은 상태인 것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자신은 좋은 사람이고자 한다. 


물론 그저 우원식이라는 한 개인에 지나지 않는다면 남의 말 잘 믿고 잘 속는 것이 딱히 악덕이라고까지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어리석기는 하지만 그래도 사람은 착하다는 칭찬도 들을 수 있다. 하지만 하나의 기업을 이끌어가는 경영자가 그저 사람만 좋아서 남에게 속아넘어가 기업에 손해를 끼친다면 그것은 그저 순진하다는 말로 끝낼 상황이 아닌 것이다. 자기 혼자만 손해보고 마는 정도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피해를 끼치게 된다. 어떻게 하는 것이 자신이 속한 정당에 이익이 될 것인가. 원내대표로써 어떻게 하면 자신이 속한 정당과 정부에 최대한 이익이 되도록 행동할 것인가. 욕을 먹어야 한다. 비난을 들어야 한다. 아예 상종못할 사람으로까지 여겨질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극단적인 상황이다. 그런 경우라고 원내대표라면 다른 정당의 대표들과 대화를 이어가야 한다. 대신 무척 어렵고 까다로운 사람이다. 불편하고 성가신 존재다. 끊임없이 의심하고 확인하면서 만일의 상황에 노릴 수 있는 약점까지 항상 확보해둔다. 협상가란 책략가다. 그저 좋은 사람으로만 남고 싶다면 협상같은 건 해서는 안된다. 좋은 사람이 하는 협상은 결국 자기 뒤에 있는 모두에게 피해를 끼치는 결과만 낳을 뿐이다. 그런데도 전혀 자기가 뭐가 문제고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알지 못한다. 반성을 못한다. 여기에 더 이상 무슨 말을 더할 수 있을까? 바로 이 좋은 사람이 앞으로 자유한국당과의 협상을 담당해야 한다. 너무 끔찍한 가정이다.


하여튼 너무 어이가 없다. 자유한국당의 말만 믿고 방심했다. 자유한국당만 믿고서 아무 대책도 세우지 않았었다. 자유한국당 잘못이 맞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어째서 이같은 최악의 상황을 미리 의심하고 대비하지 않았던 것인가. 시그널은 충분했다. 아예 추경안 심의 자체에 동참하지 않고 있었다. 어떻게든 정부와 여당의 발목을 잡고 끌어내리려 안면몰수하고 달려들고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자유한국당의 선의를 믿었다. 선의를 믿었기에 선의로써 대했다. 그 결과 정부와 여당이 어떤 책임을 뒤집어쓰게 될까는 아예 생각지도 않고 있었다. 자랑이 아니다. 변명조차 아니다. 그래서 더 한심스러운 것이다. 그런데도 웃고 있었다. 소름이 끼친다. 지지하는 걸 포기해야 할까? 진정한 의미에서 강적이다. 원래 민주당이 이랬었다. 납득하고 만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