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되었다. 아니 그보다 더 되었는지 모르겠다. 한 학생이 동급생들의 집단괴롭힘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보도된 적 있었다. 그런데 당시 자살한 학생을 괴롭혔던 가해자들이 정작 경찰조사에서 했다는 말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냥 놀아준 것 뿐이다.


하긴 어렸을 적 친구끼리 싸우게 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장난에 있었다. 서로 장난을 치다가 자신도 모르게 일정한 선을 넘어서면 그때부터 서로 원수가 되어 싸우곤 했었다. 그저 장난삼아 툭 건드렸는데 힘조절을 잘못해서 너무 아팠다거나, 그저 농담삼아 한 말인데 당사자에게는 전혀 농담으로 들리지 않았거나. 그러다가는 진짜 아예 원수가 되어 말도 않고 지내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원래 인간관계라는 게 그렇게 사소하다.


과연 누가 잘못했는가. 그저 장난이었는데 정작 맞은 아이는 아프다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저 농담이었는데 해서는 안되는 말을 했다며 씩씩거리고 있었다. 장난이고 농담이었는데 화낸 아이가 잘못한 것일까 장난이고 농담이었어도 선을 지키지 못한 아이의 잘못이었을까? 어쩌면 맨 위의 사건에서도 가해자들은 단지 피해자와 함께 어울려 노는 것이라 여기며 그랬을 가능성도 아주 없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짓궂게 한 대 툭 치고, 우연히 장난스레 살짝 밀치기도 하고, 친한 사이니까 말도 조금 더 거칠게 독하게 내뱉은 것인 것 뿐일 수 있다. 그런데 과연 진짜 그랬다 할지라도 끝내 피해자를 죽음에 이르게 만든 가해자들의 행동이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것일까.


그러고보면 유독 성범죄에 대해서만 그같은 논리들이 합리라는 이름으로 적잖은 사람들 사이에서 흔하게 통용되고 있을 것이다. 당시 피해자의 자살에 대해서는 분노하던 사람들조차 성범죄에 대해서만큼은 태연히 입장을 바꾼다. 가해자의 의도부터 헤아리려 한다. 나쁜 뜻으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다 좋은 뜻에서 그리했을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 같은 상황에서 웃으며 넘기기도 한다. 무엇보다 자기라면 전혀 기분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자기라면 전혀 수치심이나 굴욕감 같은 것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무엇이 문제인가. 피해자가 느끼는 고통인가, 아니면 피해자가 고통을 느끼게 한 가해자의 원래 의도인가. 몸이 근육으로 덮여 있다면 사소한 주먹질이야 장난으로 넘길 수 있지만 뼈만 앙상한 상태라면 고통은 더 커질 수 있다. 자기가 괜찮다고 괜찮지 않다는 누군가가 못났거나 혹은 나쁘다 말할 수 있는 것인가.


성범죄의 성립기준은 아주 단순하다. 아니 대부분의 범죄가 그렇다. 내 허락없이 물건을 가져갔다면 절도다. 누군가의 행위로 인해 내 몸에 상처가 났다면 그것은 폭행이다. 누군가의 말이나 행동으로 인해 내가 모욕감을 느꼈다면 모욕죄가 된다. 마찬가지다. 피해자가 성적인 수치심과 정신적인 상처를 호소하고 있다.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었다 하소연하고 있다. 남의 물건을 가져갔지만 나쁜 의도로 그런 것이 아니다. 몸에 상처가 남았지만 다른 사람은 그냥 웃으며 넘길 수 있을 정도의 상처에 불과하다. 그런 정도의 말과 행동에 모욕감을 느꼈다면 자기에게 잘못이 있거나 아니면 다른 의도가 숨겨져 있는 것이다. 그러고보면 대부분 범죄자들이 그렇게 말하고는 한다. 자기를 신고한 피해자들에게 다른 불순한 의도가 있었다.


어째서 이같은 논리 아닌 논리들이 성범죄 피해자들의 피해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용도로 흔하게, 특히 남성들 사이에서 쓰이고 있는가. 결국 펜스룰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여성을 상대로 말조심하는 자체를 받아들이기 힘들다. 여성을 대하면서 말과 행동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자체를 인정하기 힘들다. 사실 친한 친구 사이에서도 말할 때 행동할 때 혹시나 상대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을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나름대로 고민도 하고 주의도 기울인다. 그래서 만에 하나 상대가 불쾌해 하거나 상처를 입었거나 하면 바로 정중히 사과하기도 한다. 인간관계의 기본이다. 하지만 단지 여성의 경우에는 여성이 자신의 말과 행동에 대해 일방적으로 판단하는 그 자체에 대해 도저히 인정하거나 받아들일 수 없다. 도대체 왜? 다른 사람에게는 되는 그것이 여성에 대해서는 안되는가. 피해를 호소하는 여성에 대해서는 안되는 것인가.


간단한 것이다. 상대가 기분나쁘면 기분나쁜 것이다. 상대가 모욕감을 느끼고 수치심을 느꼈다면 그런 것이다. 그래서 인간관계에서 말과 행동은 항상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만에 하나 실수를 저질렀다면 바로 성의를 다해 사과하는 것이 인간관계의 기본이기도 하다. 여성도 그러면 된다. 그러느니 차라리 여성과 대화를 거부하겠다. 여성과 접촉을 거부하겠다. 하긴 그러니까 미투에 대해서도 피해자들의 무고부터 의심하는 것일 게다. 굳이 편들어서 가해자를 공격해달라는 것도 아닌데 오로지 자기의 기준으로 피해자의 의도부터 헤아리려 한다. 여성은 부정직하고 부도덕한 존재라서 얼마든지 다른 목적을 위해 남성들을 곤란케 만들 수 있다. 참 그 말만은 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냥 피해자들이 힘들다 아프다 괴롭다 하면 그런가보다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다른 여성들에 대해서는 자기가 그렇게 말하고 행동해서는 안되겠다. 혹시라도 실수로 그런 말과 행동들을 했을 때는 최대한 성의를 다해 사과하고 달래주어야겠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가. 어쩌면 수만년 인류의 역사 가운데 어느새 유전자 레벨에 새겨져 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필 여성이라서. 하필 피해자가 여성이라서. 여성이 피해를 주장하고 있기에. 자연스럽게 남성이 된다. 미투는 오로지 남성과 여성의 문제가 된다. 과연 누가 미투를 성대결로 몰아가고 있는 중인가.


하여튼 만에 하나 무고의 가능성이라는 것도 길가다 우연히 차에 치이는 확률과 비슷한 것이다. 음식점에서 음식을 사먹고 식중독에 걸린 사람을 봤다고 아예 집에서만 음식을 사먹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사실 무고라는 자체가 상당히 수고롭고 번거로운 일이다. 소장을 제출하고, 몇 번이나 경찰의 조사를 받고, 그런데 과연 그럴만한 목적이나 동기가 나에게 있기는 한가. 그래서 그만큼 많은 것들을 가졌다면 더욱 조심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굳이 성범죄의 무고가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다. 너무나 당연한 먹고 입고 자는 것조차 조심하고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는 세계가 다른 것이다. 그저 남성과 여성이 아닌 피해자와 가해자다. 굳이 가해자도 특정할 수 없는 피해를 호소하는 개인이 있을 뿐이다. 힘들다고 아프다고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에게 당장 자기가 무엇을 해 줄 수 있는가. 옷을 벗어주라는 것도 아니고, 집을 비워달라는 것도 아니고, 약과 먹을 것을 사들고 오라는 것도 아니다. 끝까지 들어주고 그리고 당장은 위로해주는 것. 아직 사실에 대해 모른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어쨌거나 결론은 너무 간단하다. 남이 싫어할만한 행동은 하지 말라. 너무 당연해서 오히려 어이없기까지 한 인간의 상식이기도 하다. 인간이 문명을 발전시켜온 과정이기도 했다. 서로 배려하고 양보하며 공존하는 것. 그러나 나는 싫다. 여성을 대상으로는 싫다. 답이 없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