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BBK특검을 떠올려 보면 된다. 역대 가장 큰 표차로 당선된 대통령이었다. 야당은 지리멸렬해 있었고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기대는 높았다. 그런데 특검을 한다고 이제 막 시작인 살아있는 권력을 대놓고 수사할 수 있는 간 큰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야당과 가까우면 자기 신념에 따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도 아닌 입장이라면 이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나름대로 민주당이 야당의 체면을 세워주며 실질적으로 양보를 이끌어낸 협상안이었다고 생각한다. 야당이 멋대로 특별검사를 임명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중립적인 대한변협에서 먼저 3인의 후보를 추천토록 한다. 그러니까 지지율이 70%가 넘어가는, 뿐만 아니라 북미회담에 있어 수많은 큰 이슈들이 기다리고 있어 지지율이 오르면 올랐지 떨어지지 않을 대통령을 흠집내기 위해 이제 지지율이 20%도 안되는 야당과 손을 잡아야 한다는 말이다. 야당이 드루킹 하나로 저리 난리인 것도 사실상 손에 쥐어진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인데 그런 야당을 위해 70%에 이르는 지지율의 대통령과 척져야 한다? 특검의 수사결과가 어떻든 대통령의 당선을 취소할수도 강제로 물러나게 할 수도 없다. 간단한 산수인 것이다.


수사대상도 명확하다. 드루킹을 비롯한 드러난 사실에 대해서 일차적으로 수사하고 그 과정에서 또다른 혐의가 발견되면 그때 범위를 넓혀가는 것이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아무것도 밝혀진 것이 없으면 더이상 수사범위도 넓힐 수 없다. 앞서의 전제와 맞물리면 그냥 드루킹 하나 붙잡고 마는 정도로 끝나는 것이다. 다만 그럼에도 현실적으로 더이상 드루킹 특검으로 물고 늘어져봐야 얻을 것이 거의 없음을 아는 탓에 야당도 적당한 선에서 명분만 얻고 물러난 것이다. 괜히 김동철의 표정이 어두워지고 자유한국당 의총이 길어졌던 것이 아니다. 물론 그럼에도 변협이 정신줄을 놓는 경우가 생기면 아주 불안요인이 없지는 않다. 그렇더라도 얼마든지 지지율을 끌어올릴 수 있는 큰 이슈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뭐라도 대단한 것이 나온다 할지라도 크게 문제가 될 것이 없을 텐데 사실상 나올 것도 없는 상황에 그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결국 가장 큰 문제는 지지자들의 조급증이고 불안이다. 지지자들이 먼저 동요해서 여당을 공격하고 정부를 놓아 버리는 상황이다. 벌써부터 심지어 이번 특검법안을 받도록 여당에 요구했을 청와대와 대통령에 대한 비토마저 쏟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만한 자신이 있는 것이다. 북미정상회담의 결과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북미정상회담의 결과에 따라 경제이슈까지 모두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른다. 드루킹은 그에 비하면 실체도 없는 아주 미미한 사건에 지나지 않는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당장의 현안을 챙길 수 있는 추경이다. 가끔은 정부와 여당을 있는 그대로 믿고 지켜봐주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대통령과 정부는 돌도 안지난 아이가 아니고 지지자는 아이를 돌보는 보모가 아니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어떻게 세부적으로 다듬도 운용하느냐에 따라 절대적으로 정부에 더 유리할 수 있는 내용이다. 현실의 조건이 그렇다. 누가 특검이 되든 썩었으면 썩은대로 올곧으면 올곧은대로 있는 그대로 있는 사실만 수사할 수밖에 없다. 언론도 특검의 수사내용 이상은 넘어설 수 없다. 결론은 누구에게 힘이 있고 이익이 있고 손해가 있는가는 현실의 계산인 것이다. 누가 이기고 끝내 누가 질 것인가.


국회가 정상화되었다. 여당의 양보로 인해 국회가 다시 정상적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추경도 통과되고, 권성동 등에 대한 체포동의안도 처리될 테고, 여러 민생법안들도 이번 기회에 한꺼번에 처리될 터다. 남은 것은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을 다시 국회로 되돌리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던 여당의 모습이다. 야당의 투쟁보다 여당이 양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남게 된다. 그렇게 만드는 것이 지지자의 역할이기도 하다. 아무것도 없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