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김정은이 이처럼 핵문제와 관련해서 파격에 가까운 행보를 보이게 된 이유를 추측해 보았다. 그런데 생각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하필 IMF전 잘나가던 기업을 말아먹은 2세, 3세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일관된 패턴이었다. 선대보다 나은 모습을 보여주겠다. 선대와는 다른 자기만의 실력과 가능성을 입증해 보이겠다. 그래서 되도 않게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에 무리한 투자를 하고, 심지어 외형을 키우느라 겁도 없이 부실기업을 인수하기도 한다. 나는 선대와 다르다. 선대가 이루지 못한 것을 나는 이룰 수 있다. 역사상 그렇게 나라 말아먹은 2세, 3세가 또 적지 않았다.


자신감이 붙었다. 그 전에 스위스에서 유학을 하며서 선진문물을 경험한 만큼 김일성이나 김정은이 하지 못한 일들을 자신이 해낼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도 키웠을 것이다. 아버지 김정일이 죽자 혼란스러운 북한 내부의 상황을 정리하고 권력기반을 공고히 한 뒤 핵개발이라는 일차목표를 이루고서 비로소 자기가 오랫동안 꿈꾸어 온 일들을 이룰 때가 되었다 생각한다. 마침 그동안 김정은이 추진한 정책으로 북한의 경제도 어느때보다 나아졌고 주민들의 지지 역시 확고한 상황이다. 지금이라면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통해서 무언가 큰 것들을 이루어낼 수 있지 않을까.


바로 정상국가다. 미국과 수교하고, 국제사회에서 투자도 받고 무역도 하면서 지금껏 정체되어 있던 북한사회에서 새바람을 불어넣는다. 당연히 그 중심은 김정은 자신이다. 자신의 지도력으로 북한을 이제와는 다른 국제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상당한 진보를 이룰 수 있도록 이끈다. 그리고 그같은 성과들은 결국 국내에서 김정은 자신의 권력기반을 강화해 줄 것이다. 더불어 한 가지 김정은이 노리는 것이라면 호시탐탐 북한을 노리는 중국을 대비해서 김정은 자신의 안전을 보장해 줄 미국의 직접적인 보호다. 


하긴 그래서 벌써부터 많은 전문가들이 어쩌면 북한에 미군이 주둔하게 될지도 모른다 예상하고 있기도 한 것인지 모른다. 중국의 반발을 우려해서 대규모의 부대는 주둔하지 못하더라도 유사시 김정은을 호위할 정도의 병력을 평양 인근에 배치할 수는 있다. 아직 군부의 강경파들이 완전히 김정은에게 굴복한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은 물론 미국과의 관계개선은 곧 북한사회에서 군부의 영향력을 치명적으로 약화시킬 수 있다. 대몽항쟁 말기 몽골에 끝까지 저항할 것을 주장하며 반란을 일으켰던 무신들의 처지와 같다고 할 수 있다. 대립과 분쟁이 있을 때 군부의 영향력은 커지고 지위와 권력도 보장된다. 단순히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지 않은 수준이 아닌 김정은 정권을 직접 미국이 지켜주어야 한다. 그러면 나머지는 자기가 알아서 한다.


의외로 남북대화나 북미대화가 수월하게 모두가 바라는 결과를 이끌어내게 될지도 모르겠다. 아니 이미 대화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결론은 나와있는지도 모른다. 북한에게 그러고자 하는 동기가 있고 의지가 있다면 나머지는 대한민국과 미국의 태도 뿐이다. 그마저도 어느때보다 우호적이다. 북한이 정상국가가 된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꿈과 같은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게 될 지도 모른다.


너무 낙관적으로 보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최근 보이는 모습들이 그렇다. 차라리 2세, 3세의 무모한 패기가 지금처럼 다행스런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 것을 기뻐해야 할까? 물론 역시 그런 식으로 나라와 기업을 더 키운 후계들도 역사에는 적지 않았다. 김정은이 그렇게 나라를 다시 일으킨 부흥의 지도자로서 북한의 역사에 기록될 수 있기를. 아, 국가보안법으로 잡혀가려나? 찬양고무죄로?


천재일우의 기회다. 백척간두에 간신히 얻은 단 한 번의 기회다. 다음은 없다. 이번 기회가 무산되면 그 다음은 파국 뿐이다. 대한민국이 알고 미국이 알고 무엇보다 북한이 안다. 행복회로가 다 타버리도록 최선의 상황들을 상상한다. 부디 그렇게 이루어지기를. 간절한 기다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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