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북한과 관련해서 대한민국 정부 혼자서 결정할 수 있는 범위란 매우 제한적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북한 자신이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굳이 대한민국을 통하지 않고 미국과 직접 협상하려는 통미봉남전략을 고수해 온 것이기도 하다. 아무리 대한민국 정부와 열심히 협상해 봐야 결국 미국의 동의가 있어야 행동에 옮길 수 있으니 굳이 대한민국을 통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하물며 지금 가장 크게 문제가 되고 있는 북한의 핵개발과 그에 대한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에는 누구보다 미국 자신의 의지가 가장 크게 작용하고 있다. 다시 말해 굳이 대한민국 대통령을 평양으로 불러서 회담한다 해도 미국이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국제사회의 제재는 더 강해지면 강해졌지 약해지지 않을 것이란 뜻이기도 하다.


바로 그렇기 때문이다. 차라리 지금 김정은이 보낸 초대장이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을 향한 것이고, 그것이 대한민국과의 대화를 통해 국제사회의 제재를 풀어보려는 의도라면 일은 더 쉬워질 수 있다. 한 마디로 바보라는 소리다. 지금 상황의 본질과 핵심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겉모습에만 현혹된 멍청이라는 뜻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을 불러들여 대화하면 대한민국이 임의로 미국이 주도한 대북제재를 풀어줄 수 있을까? 최소한 약화시킬 수 있을까? 미국이 저렇게 강경한 입장인데 과거 김대중이나 노무현이 그랬던 것처럼 북한과의 경제협력을 마음대로 밀어붙일 수 있을까? 그래서 그런 행동들이 북한에게 어떤 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북한의 과거 전략대로 미국과 직접 통하지 않고서는 북한 자신의 문제를 어떤 것도 제대로 풀어낼 수 없다. 설사 김정은 자신이 모지리 천치라서 그 사실을 모른다 할지라도 김정일이 살았을 때 외교실무를 담당했던 당사자들이 모두 함께 순장당하지 않은 이상 주위에서까지 그것을 모를 리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와서 김정은 자신의 이름으로 문재인을 초청하며 친서를 보낸다?


그 의도에 대해 먼저 의심부터 하게 되는 이유다. 이제와서 가장 안좋은 때 최악의 방식으로 자신들의 대남대미전략을 바꾸려 하고 있었다. 당연히 그럴 리 없다. 고작 그런 정도라면 더이상 북한의 존재를 걱정할 이유가 없다. 아니 당장 북한이 붕괴할 상황을 대비한 준비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결국 북한이 문재인을 초청하며 친서를 보낸 이면에는 북한의 다른 속내가 숨어있다 보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의도란 무엇일까? 당연하지 않은가. 지금 미국의 주도로 국제사회가 자신들에게 가하고 있는 강력한 제재를 - 심지어 중국마저 동참하며 갈수록 심해지는 고립상태를 어떤 식으로든 타개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를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대통령이 아닌 미국이어야 한다. 미국을 설득하고 납득시킬 수 있을 때 미국이 주도한 강력한 제재와 고립은 어떻게든 해결될 수 있다. 그렇다면 문재인 대통령을 초청하고 친서까지 전달한 진짜 의도란 무엇이겠는가.


그래서 관례상 정상간의 친서는 바로 공개하지 않는 것이다. 굳이 공식적인 경로가 아닌 친서의 형태를 빌었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그런 것까지 모두 감안하고 김정은이 문재인에게 초청과 함께 어떤 메시지를 보낸 것이 아닐까. 더 정확히는 문재인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초청한 자체가 누군가를 향한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다시 말해 북한이 통미봉남에 이은 강대강 대치국면을 끝내고 문재인 대통령을 초청하려 한다는 것은 북한 자신이 대한민국 정부와 대화를 시작할 의지가 있음을 밝히는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와 대화하겠다는 것은 그 뒤에 있는 미국과도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만 국내적으로 북한이 먼저 미국에 대화를 제의하는 것은 굴복하는 것처럼 비쳐질 수 있으므로 여전히 미국에 강경한 입장을 유지하면서 미국에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의사를 보낸다. 즉 미국도 설사 대화를 원하더라도 대화를 먼저 제안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그 중간에서 북한과 미국 양쪽에 정중하게 자신을 양보하며 대화를 제안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북한과의 대화에 응하고, 대한민국 정부를 통해서 미국 역시 북한과의 대화에 응한다. 어쩌면 북한이 바라는 그림은 그런 것이 아닐까?


아무튼 이해할 수 없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다. 김정은이 문재인 대통령을 평양으로 초청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정상회담을 제안할 것이다. 하지만 역시 그럼에도 그같은 제안은 문재인이 아닌 그 뒤에 버티고 있는 미국과 트럼프 대통령을 향한 것일 터다. 굳이 자신의 친동생까지 보내가면서. 북한 최고권력자의 친동생이 자신을 공개적으로 특사라 밝히면서까지. 일련의 상황들이 이어진다. 북한의 핵개발은 끝났다. 모든 핵개발계획은 완료되었다. 유시민의 분석이 옳은 것 같다. 하지만 북한 정권의 특성상 지금 미국에 먼저 굽히고 대화를 제안하는 것은 모양새가 빠진다. 필요하면 얼마든지 이용당해주는 것도 외교의 기술이기는 하다. 과연 어떨까? 친서의 내용에 대한 별다른 브리핑이 없다면 추측은 사실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대답은 대한민국 국민과 미국과 북한 모두를 만족시키는 만점짜리였다 할 수 있다. 먼저 여건을 만들고 남북의 정상이 만나자. 그를 위해서 북미가 먼저 대화에 나서야 한다. 굳이 싫다고 사양하는데 손을 잡고 상대의 앞에 끌어다 앉혀준다. 나는 괜찮다는데 일단 먼저 만나나 보라고 자리까지 만들어준다. 남북관계는 먼저 북미관계가 먼저 어느 정도 해결된 다음에나 다시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이 먼저고,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의 핵무기 포기가 우선이어야 한다. 실제로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물밑접촉을 하며 의견을 조율한 가운데 문재인이 북한을 방문해서 북미대화를 성사시키면 그림은 완성될 수 있을 터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그냥 바람일지 모르겠지만. 아직 기회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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