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블랙호크 다운'으로 유명한 모가디슈 전투에서 미국에 씻을 수 없는 치욕을 안겼던 마하메드 파라 아이디드는 그러나 소말리아 내전에서 주도권을 쥔 유력군벌로서 미국에 초대를 받아 회담을 하기도 했었다. 하긴 아라파트라면 피엘오의 수장으로써 이스라엘과는 불구대천의 원수라 할 수 있었을 테지만 중동에 평화를 정착시키고자 하는 의지가 라빈과의 회담을 가능케 했었다.


외교라는 것이다. 삼국지에서도 제갈량은 유비를 죽게 만든 원수였음에도 더 큰 원수인 위를 견제하기 위해 오와의 관계를 복원하고 있었다. 형주를 빼앗기고 그 과정에서 관우와 장비가 죽고, 끝내 그 원수를 갚고자 나섰다가 유비 이하 수많은 인재가 죽어나갔음에도 국가적인 필요는 그런 원한조차 사소한 감정으로 치부케 하고 있었다. 선조는 어째서 조선을 침략한 적국이었음에도 일본과의 관계회복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것일까. 


천안함 희생자의 유족들이야 당연히 반발할 수밖에 없다. 가족을 죽인 원수다. 함께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사이인 것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그같은 개인의 감정보다 더 중요한 국가적 목적과 필요가 있다. 북한 핵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 전쟁이 아닌 방법으로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하도록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 어쩌면 천안함과 같은 중요한 사건을 진두지휘할 정도라면 북한에서도 책임있는 자리에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실무적으로 외교적 현안을 해결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면 과거의 원한 따위는 잠시 뒤로 미루는 것도 상식적인 판단이다. 국가는 오로지 개인의 감정이 아닌 집단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 지금 대화로 핵문제를 풀지 못하면 극단의 선택을 해야 할 지도 모른다.


한 번도 정권이라고는 잡아보지 못한 정의당이 반발한다면 이해하겠다. 국정이 어떻게 돌아가는가 그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 수십년간 고작 10년을 제외하고 정권을 잡고 국정을 주도하던 정당이었다. 그 정당의 나름 중진이라는 정치인들이었다. 그러니까 천안함 폭침을 진두지휘했다는 사실과 당장 북한과의 대화를 위한 실무대표로써 방남한다는 사실 사이에 어떤 직접적인 연관관계가 있다는 것인가. 어차피 우리 입장에서 북한의 지도부는 만에 하나 통일이 되면 죄다 재판정에 세워야 하는 반인륜 반국가 반민족의 죄인들이다. 그러나 그 전에 아직 그들은 실재하는 권력집단으로서 협상의 대상으로 존재하고 있다.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 것인가.


저런 놈들을 잘한다고 지지하는 인간들이 머릿속이 궁금해지는 이유다. 능력은 보수정당이라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표를 주는 이들이 여전히 적지 않다. 원한은 원한이고 필요는 필요다. 과거는 과거고 국가적인 이해와 목적은 별개로 따지는 것이다. 당장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천안함의 분풀이인가. 아니면 대화를 통한 북한 핵문제의 원만한 해결인가. 주제도 모르고 떠든다. 어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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