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명하복의 시작은 상사를 선택하지 않는 것이다. 누가 상사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내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위치에 있고 그 명령에 따라야 할 의무가 있다는 사실만 인지하고 있으면 된다. 그래도 도저히 명령에 따를 수도 상사로 인정할 수도 없다면 그때는 간단하다. 조직을 그만두면 된다.


사기업도 그렇다. 학교나 학원에서도 마찬가지다. 하물며 군이다. 더구나 민주주의 국가에서 주권자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일 것이다. 그 대통령이 임명한 국방부장관이다. 헌법이 규정한 대통령의 군통수권에 의해 군은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야 할 의무가 있다. 물론 그 명령이 헌법과 주권자인 국민의 뜻에 반하는 것이라면 역시나 헌법과 국민의 뜻에 의해 정당하게 항명할 수는 있다. 멋대로 자신의 상관을 고르려 해서는 안된다.


이번 기무사문건 파동을 보면서 특히 군생활을 경험한 많은 남성들이 경악한 부분이었다. 일개 대령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명령권자인 국방부장관과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었다. 대령이라는 자신의 계급을 앞세워 명예를 걸었는데 그렇다면 대장으로 예편한 국방부장관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런데 하물며 대통령령에 의해 존재하는 기무사가 대통령과 국방부장관의 통화까지 감청하고 있었다. 이미 이전 정권부터도 그런 이야기가 나돌고 있었다. 참여정부 당시 기무사 소속 군인들이 공공연히 대통령을 빨갱이라며 비난하고 다니더라는 이야기까지 있었다. 그래도 전직대통령이었는데 그 죽음에 환호했더라는 이야기가 그래서 납득되고 있었다. 그리고 무려 기무사령관이 야당대표와 독대보고까지 하고 있었다.


군이 어디까지 망가져 있는가. 아니 기무사란 어디까지 망가져 있었던 것인가. 그들이 과연 군인이기는 한가. 통수권자인 대통령마저 인정하지 않고, 정권이 교체되었는데도 마치 야당인 자유한국당이 자신들의 상관인 것처럼 사령관이 직접 독대보고까지 하고 있었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당시 그토록 정부에 불경하던 기무사가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에서는 정권을 지키는 최일선에 있었다. 그들은 더이상 군인이 아니다. 정치집단이다.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위해 자신들에 명령을 내릴 대통령마저 고르고 가리는 정치집단에 지나지 않는다. 통수권자의 명령조차 듣지 않는 군조직을 남겨둘 필요가 있을까? 그런 군인을 군에 남겨둘 이유가 있을까? 하물며 대통령 뿐만 아니라 국민마저 우습게 여기고 있었다.


많은 국민들이 분노하는 지점이기도 할 것이다. 해편이라는 전에 없이 강력한 조치에도 불신과 불안을 드러내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민병삼 대령은 아주 큰 일을 해 주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기무사라는 조직이 어디까지 망가져 있는가. 어디까지 근본없이 타락해 있었는가. 자기가 하는 행동이 군인으로서 얼마나 잘못된 것이었는지 스스로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자각은 커녕 심지어 군인으로서 자신의 명예까지 내걸고 있었다. 통수권자는 대통령인데 야당과 손을 잡고 통수권자와 그가 임명한 국방장관과 맞서고 있었다. 현실을 인식한 최소한의 지각마저 마비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자신들을 어떻게 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국민들 앞에 적나라하게 내보이고 있었다. 그런데 과연 이런 조직을, 그런 조직에 물든 이들에게 다시금 기무사의 중요한 업무를 맡긴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아마 오래전에 썼을 것이다. 군이 권력을 가질 경우의 위험성에 대해서였다. 무엇보다 군이 사유화된다. 군이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만다. 군이 더이상 군이 아니게 된다. 과거 무신정권 당시에도 최씨정권은 거란과 몽골이 쳐들어와 백성들을 죽이고 약탈하는 와중에도 정예병력을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주위에 붙잡아두고 있었다. 더 많은 돈과 권력과 사치를 위해서 군을 도구로 사용한다. 국방비리란 그런 점에서 필연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결과 더이상 군이라 할 수도 없는 조직까지 만들어진다. 혹시라도 권력자의 편에서 전횡을 일삼던 자신들에게 처벌이 돌아올까 두려워서 반란을 일으키고 여전히 고려를 전란속에 몰아넣었던 삼별초같이. 왕도 자신들이 직접 옹립하겠다. 대통령도 자신들이 직접 선택하겠다.


해체만이 답이었다. 선별해서 복귀시키더라도 그 수는 전문성만을 고려한 아주 최소한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오랜동안 군을 도구화 수단화해 온 군사정권의 잔재가 이렇게 뿌리깊었던 것이다. 군사정권의 도구였던 그들이 여전히 자신들의 존재목적에 충실하려 한다. 출발부터 잘못되었다면 근본부터 도려내는 것이 옳다. 괜히 나서서 짹짹거리는 야당은 무시해도 된다. 원래 기무사의 설치는 국회가 정한 법률이 아닌 대통령에 의한 대통령령이었다.


그런 줄은 알고 있었다. 군이란 얼마나 썩어있는가 아마 모르는 사람이 오히려 드물었을 것이다. 그래도 설마 이렇게까지인가. 주제도 모르고 분수도 모르고 상황파악도 안되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는가. 누가 편들어주든 운명은 결정되었다. 세상이 바뀌었다. 그것을 몰랐던 대가다. 참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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