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SNS에 특정 여성을 대상으로 납치해서 강간할 계획을 구체적으로 올렸다 가정해 보자. 아니 실제 있었던 일이다. 법정에서 실형선고까지 받은 바 있었다. 의도와 상관없이 실제 그럴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 그같은 계획을 내비친 것만으로도 당사자에게는 위협이 될 수 있다. 그게 문제다. 실제 실현가능한 힘이 있고 위치에 있었는가.

정치인의 말은 그냥 말 한 마디로 끝나지 않는다. 그래서 공인이다. 권력을 가진 사람의 말 한 마디는 그 자체로 위력을 가지고 현실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장관의 말 한 마디에 주가가 미친 듯 널뛰고 하는 것이 바로 그 예다. 다른 곳도 아닌 군이다. 존재하는 가장 강력한 물리력을 보유한 집단이 바로 군인 것이다. 그렇게 그동안도 몇몇 군인들에 의해 체제가 바뀌고 세상이 뒤집힌 바 있었다. 그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군이 움직이는 순간 적지 않은 사람이 다치게 될 것이다. 단순한 우려가 아닌 실행가능한 현실이다. 그것을 단순히 만일을 위한 계획이라 어물쩡 넘어갈 수 있을 것인가.

하물며 문건을 작성한 기무사의 일개 대령이 상관인 장관마저 공개적인 자리에서 무시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니 장관만이 아니다. 장관을 무시하는 자체도 장관을 임명한 대통령을 무시한 것이나 다름없는데 이제는 아예 엄중한 사안이라 정의한 대통령의 판단까지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명령권자인 국방부장관도 통수권자인 대통령도 무시할 수 있는 기무사란 대체 어떤 집단인가. 그동안 누려왔던 특권에 취해 전혀 오판한 것이다. 그동안 그래왔던 것처럼 장관도 대통령도 무시하며 맞섰던 것인데 그 정체만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말았다. 현 헌정체제 자체를 부정하는 기무사를 과연 믿을 수 있을 것인가.

아니 설사 기무사의 주장이 옳다고 하더라도 이미 국회무력화와 언론장악이라는 헌법 그 자체를 부정하는 내용이 담긴 이상 더이상 변명할 거리조차 없는 것이다. 헌법이 규정한 민주주의의 가치를 부정하고 법으로 정한 민주주의의 질서마저 파괴하려 한다. 그렇게까지 해가며 지켜야 하는 국가란 정의란 무엇이며 누구의 것인가. 군도 엄연히 헌법 아래 있고 법률의 지배를 받는다. 그마저 부정한 문건을 만일을 대비한 것이라 그냥 넘길 수 있는가. 그런 기무사를 과연 이대로 유지하는 것이 옳은가.

상황은 너무 명백하다. 그래서 엉뚱한 송영무 장관을 붙잡고 주의를 돌리려 발악한 것이었다. 그 결과 정치군인으로서 기무사의 실체만 더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말았다. 이놈들은 이대로 내버려두어서는 안되는 놈들이다. 아무리 구차한 논리를 동원해서 변호하려 애써도 그 본질 자체는 바꿀 수 없다. 오히려 기무사처럼 그들을 옹호하려는 집단의 실체만 드러내 보일 뿐. 모 정당이라는가 언론이라든가 기타등등등... 언론을 장악하겠다 해도 편들어주는 언론이 과연 언론인가. 하긴 사법부의 독립을 멋대로 팔아넘겼어도 열과 성으로 그 당사자들을 지키려는 법원도 있다. 그것이 어쩌면 이 사회 보수의 민낯이라는 것이 슬프기조차 하다.

어린아이가 나라를 뒤집고 자기가 왕이 되겠다 하면 그만 웃고 만다. 일용직을 전전하면서 나라 경제가 절딴나면 그때를 기회삼아 일어서겠다 평소 주장해도 그냥 허황된 소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중소기업 임원이라도 자기 책임 아래 있는 사안에 대해 사소한 말실수라도 하면 그 여파는 엄청나다. 하물며 실수도 아니다. 의도를 가지고 정교하게 구체적으로 세운 계획이다. 그냥 한 번 만일을 대비해 본 것이라고 넘기기에는 너무 위중하다. 모르거나 아니면 알고도 무시하거나. 답은 하나다. 책임은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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