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한국의 교육이란 못하는 아이에게 벌주는 것이었다. 따라오지 못하면 벌주고 도태시킨 뒤 그를 본보기삼아 남은 아이들만을 데리고 끌고 간다. 그런 교육에 익숙해 있다. 공부 못하면 벌받아야 한다. 필요한 자격을 갖추지 못하면 그에 따른 대가를 치러야 한다. 필경 그 대가란 현실의 고통일 것이다.


최근 일고 있는 공공기관 정규직 전환과 관련한 이슈에 숨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일면일 것이다. 정규직이란 일종의 자격이다. 현대사회의 신분이다. 그렇다면 그에 어울리는 이들만이 정규직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이를테면 주방에서 반찬을 만들고, 건물청소를 하고, 혹은 온갖 허드렛일을 맡아 하고. 그런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그래서 무기계약직도 아니던 시절 원칙없는 채용도 이루어졌었다. 어차피 계약직따위 아무면 어떤가.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 부분일 것이다. 사용자가 노동자를 고용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골고루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공평하고 공정한 절차와 결과를 위해 굳이 공개적으로 사람을 고용해 쓰는 것이 아니란 것이다. 필요한 사람을 찾아 쓰려는 것이다. 업무에 필요한 사람을 고르는 과정에서 시험도 치르고 면접도 보고 하는 것이다. 굳이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도 필요한 사람을 골라 쓸 수 있다면 굳이 그럴 필요 따위는 없다. 그래서 반찬만들고, 청소하고, 혹은 잡무를 보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자격이란 무엇이겠는가.


하지만 정규직만을 본다. 정규직을 뽑기 위한 시험에만 관심을 갖는다. 정규직도 아닌 계약직따위야. 아무나 해도 좋을 허드레 잡일들 정도야. 그런데 어차피 정규직이든 계약직이든 허드레 잡일은 여전히 허드레 잡일일 뿐이다. 무기계약직으로 바뀌어도, 심지어 정규직이 되었어도 과연 그런 일을 일부러 시험까지 치러가며 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은 그런 일들이다. 그래서 그동안도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하찮은 자리들이니 아무런 원칙도 기준도 없이 아무렇게나 대충 뽑아왔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이번에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되었다.


사람들이 진짜 분노하는 지점이다. 그들이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잘 일해왔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동안 자신의 자리에서 얼마나 자신의 실력과 자격을 증명해 왔는가도 중요하지 않다. 사실 친인척이라는 사실도 어쩌면 그리 중요하지 않을지 모른다. 정규직이 될 자격이 없다. 정규직이 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정규직이 되었다. 그러니까 주방이든 목욕탕 관리인이든 모두 시험을 쳐서 뽑으라. 그러니까 어떻게 시험을 치르면 되느냐고. 주방에서 반찬 만드는데 국사시험을 칠가? 영어시험을 칠까? 정규직이 되었다고 하는 일이 바뀌는 것도, 월급이 더 오르는 것도 아니다. 단지 지금 하는 일에서 고용의 안정성만 더해질 뿐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정규직이 될 자격이 없다. 


원래부터 있었다. 처음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했을 때부터 논란은 있어 왔었다. 굳이 정규직으로 채용해야만 하는 일들인가? 과연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굳이 정규직으로 채용할만한 충분한 자격이 검증되기는 했는가? 그런데 심지어 친인척이란다. 그러니까 원래 월급도 그리 많지 않고 일도 힘든데다 고용도 불안하던 계약직이라 아무도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던 일에 가까운 사람을 소개하고 채용했을 뿐인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별 탈 없이 잘 해 왔으니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그들도 포함시켰다. 처음부터 비정규직을 채용하는 과정에서도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자 말하던가. 하긴 고작 비정규직 채용하면서 그런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도 말이 안되기는 한다. 정규직이 자격인 우리나라의 현실에서는.


정작 아직 비정규직으로 있을 때는 아무도 문제삼지 않다가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니 비로소 문제삼으려 한다. 아직 계약직으로 있을 때는 누구의 소개로 들어왔든 누구의 친인척이든 전혀 문제삼지 않고 있다가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하니 무슨 큰 부정이라도 저지른 양 떠들어댄다. 그렇게 선망하는 일자리였을까? 그렇다면 왜 이전에는 그런 일을 하려는 사람도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자격을 따져묻는 사람도 그리 없었던 것일까? 일이 중요한가? 사람이 중요한가? 아니면 정규직이란 신분이 중요한 것인가?


그래서다. 정규직은 신분이다. 신분에는 신분에 어울리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만한 자격을 갖춘 이들만이 그 신분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이 진짜 분노하는 것은 친인척이 아니라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된 그 자체다. 비정규직이어야 할 역할들이 정규직으로 바뀐 그 자체인 것이다. 비정규직에나 어울릴 사람들이 정규직이라는 선망의 대상이 되는 신분을 가지게 되었다. 아닌 것 같은가? 그래서 굳이 그럴 필요까지 없는 분야들마저 정규직이니 시험을 봐야 한다 주장하는 것이다. 더 잘하는 사람을 거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못하는 사람을 벌주고 도태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들은 원래 사회적으로 벌받아야 하는 낙오자들이었을 것이다. 그리 믿는다.


정규직만 시험을 치른다. 정규직만 자격을 묻는다. 비정규직은 아무나. 그냥 면접만으로. 때로는 서류만으로. 아무나 데려다 쓰고 아무때나 잘라버리면 그만이니까. 그래도 되는 사람들이니까. 정규직은 아니다. 그런데 정규직이 되었다. 정규직이 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비정규직으로 차별받고 고통받는 것이야 말로 사회의 정의다. 자유한국당 정치인들의 말에 동조하는 다수 대중들의 논리가 그를 뒷받침한다. 그래서 진짜 문제는 무엇이겠는가.


정규직전환이라 하고서 무기계약직으로 바꾸는 일들은 대개 모두가 하고 싶어하는 그런 일들과 거리가 멀다. 실제로 그렇다. 그래서 이직률도 높다. 그런데 또 한 편으로 필요한 일들이기도 하다. 아마 비판하는 사람도 자기가 그 일을 하고 싶어 비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친인척이라고 추천하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채용하는 것이야 분명 잘못되었다. 이건 이것, 그건 그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일만 열심히 잘했다면 또 크게 상관할 바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곳에서 필요한 제 역할을 잘 했는가일 테니까. 부질없다. 정규직이 신분화되어가는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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