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도 그렇고, 몇 달 전 유류고 화재도 그렇고, 이번 KTX탈선사고도 결국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면 하나로 귀결된다. 안전을 비용으로 생각한다. 안전에 대한 대비를 단순한 지출로 생각한다. 그래서 그 비용을 아껴보겠다고 더 큰 참사를 불러온다. 사실 영국에서도, 아니 당장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만 해도 원인은 같았다. 안전에 대한 지출을 줄여서 기업의 이익을 늘려야 한다. 공공부문의 민영화에 반대하는 이유다.


사고를 줄이려면 방법은 간단하다.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장비와 메뉴얼을 도입하고, 그를 운영할 인력을 확충하면 된다. 단순히 머릿수만 늘리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숙련된 인력이어야 한다. 그러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정작 현장에서 평소 안전과 보안을 책임져야 할 경비인력들이 대부분 최저임금만 받고 일하고 있다. 아무때고 그만둬도 전혀 아쉽지 않다. 물론 그런 만큼 항상 비숙련 인력이 그 자리를 메꾸고 그만큼 허점이 드러난다. 이번 KTX사고도 마찬가지다. 무려 정비인력의 70%가 비숙련자였다고 한다. 그나마도 전체 정비인력이 계속해서 줄고 있었다고 하니 원인은 한 가지다. 인건비를 줄이려 했다.


최저임금 오른다니 언론들은 당연하다는 듯 말한다. 최저임금 올랐으니 사람을 줄여야 한다. 그런데 사람을 줄여도 되는 분야가 있고 안되는 분야가 있다. 그런데 오로지 최저임금만을 명분으로 사람을 줄이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기사를 쏟아낸다. 사람의 가치가 그렇다. 그 사람이 하는 일이 무어고 얼마나 중요하고 가치있는가는 외면한 채 그저 비용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한다. 그러니 사람에게 쓰는 비용을 줄이는 것은 당연하다. 사람에게 써야 하는 비용을 줄여서 더 높은 이익을 누리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 그래서 노동자의 임금을 깎아서 자영업자의 소득을 높이고, 자영업자의 소득에서 카드수수료를 높여 받고, 그 수수료로 카드회사의 고용을 안정시키고 고객의 이익을 증대한다. 그러니까 승객의 안전과 직결되는 철도에서마저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어쩌면 승객들이 치러야 할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 사람을 줄이고 인건비를 줄여 비용을 아끼려 한다. 그래서 결과가 어떠한가.


안전을 누리려 하면 그만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편해지고 안전해지려면 그만한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면 안된다. 자기 돈은 쓰기 싫고 그래서 사람을 싸게 쓰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여긴다. 그마저 비싸다 여기면 사람을 줄여 당장의 이익만 늘리려 한다. 더 비싸고 안전한 KTX와 더 싼 대신 덜 안전한 KTX 가운데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물론 대부분 더 싸고 안전한 KTX를 선택할 것이다. 그래서 문제인 것이다. 더 적은 인력으로 그나마 비숙련노동자들로 채워진 더 싼 정비인력들이 얼마나 승객의 안전을 책임질 수 있을 것인가.


그냥 싼 것만 좋다. 아무렇게든 그저 싸기만 하면 좋다. 그러고보니 중국무역관계자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다. 일본인들은 중국에 가서 더 좋은 것을 찾는데 한국인들은 중국에서 더 싼 것만 찾는다. 한국에서 중국상품이 가지는 이미지란 그렇게 만들어진다. 그래서 그렇게 싸게 들여온 중국의 상품들을 마음놓고 일상에서 소비해도 좋은 것인가. 중국산은 그리 비웃으면서 정작 싸게 후려친 한국인 자신들의 서비스에 대해서는 어째서 그리 무심하고 관대한가.


필요하고 중요한 것은 비싼 것이 당연하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사람을 쓰려면 비싸게 써야 한다. 필요한 곳에 사람을 쓰려면 더 비싸야만 한다. 어차피 내가 해도 되는 일 굳이 사람을 불러 쓰는 것은 그만큼 내가 편익을 누리기 위한 것이다. 그 편익에 대한 가치다. 자신의 가치가 그렇게 값싼 것인가. 기술의 가치이고 경험의 가치다. 사람의 가치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단지 얼마간의 이익을 위해서 수많은 승객의 안전마저 도외시하기도 한다. 그렇게 아껴서 늘린 코레일의 이익이 곧 이번 사고로 다치고 자신의 기회를 낭비한 승객들의 비용인 것이다.


그런데도 말하겠지. 인건비를 아껴야 한다. 사람을 더 싸게 쓸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사회전체의 이익을 늘릴 수 있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이익인가? 코레일 같은 곳에서는 더 비싸게 더 숙련된 전문인력을 그만큼 충분히 고용해 쓸 수 있어야 한다. 그러고보면 그런 식으로 사람을 쥐어짜며 고용의 여지를 줄인 결과가 실업난과도 관계가 있지 않을까. 8시간 일할 걸 10시간 일 시키면 5명 쓸 것도 4명만 쓰면 된다. 52시간 근무제를 반대하는 논리이기도 하다. 사실 탄력근로제보다는 비정규직을 단기간 쓰고 해고할 수 있는 고용유연화가 더 필요할 것 같기는 하다. 대신 단기간 쓰는 노동자들은 동일임금보다 더 지급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떻게든 더 많은 인력이 소모되지 않고 일할 수 있게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아무튼 결국 사람의 가치가 딱 그만하기에 일어나는 사고인 것이다.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써야 하는 인력에 대한 비용도, 사고가 일어날 경우 발생할 희생자들에 대한 비용도 딱 그 만큼이다. 지난 정부에서 세월호 희생자들에게 했던 - 아니 정부에 놀아나 세월호 희생자들과 그 유가족들에 사회구성원들이 퍼붓던 말이나 태도들을 보면 딱 그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으로 끝일까?


그냥 아직 한국사회가 후진국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다. 전체 경제규모만 커졌다고 선진국이 아니다. 사람의 가치가 올라가야 비로소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경제가 성장한 만큼 사회적 가치도 개인의 가치도 그만큼 따라 성장해야 선진국다운 시스템이 갖춰진다. 그냥 사람을 소비하려고만 한다. 소모하려고만 한다. 사람은 단지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새삼 깨닫는다. 한국사회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과연 갈 수나 있을 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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