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그리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째서 일본에서는 같은 미국이라도 쌀 미米자를 쓰는데 한국에서는 아름다울 미美자를 쓰는가. 중국에 사대하던 버릇이 남아있는 것은 아닌가. 도대체 미국이 뭐가 그리 아름답다고.


그런데 원래 조선이 처음으로 미국이라는 나라의 존재를 안 것이 제너럴 셔먼호 사건을 통해서였다. 당시는 아메리카라는 말을 들리는 그대로 며리계弥里界라 쓰고 있었다. 그러다가 청으로부터 미국에 대한 정보를 접하게 되면서 청을 따라 미리견美利堅이라 쓰게 되었다. 그러면 어째서 일본처럼 아미리가亞米利加가 아닌 미리견인가. America의 액센트가 e에 있지 않은가. 들리는대로만 그대로 쓰면 메리카가 오히려 더 정확할 수 있다. 참고로 그래서 일본에서는 아미리가에서 줄여서 쌀 미米를 쓴 베이고쿠米國이 되었다. 그리고 조선은 중국을 따라 메이궈美國이 되었다. 메이궈는 메리카와도 비슷한 발음으로 들린다. 물론 우리말로는 전혀 상관없는 발음이다.


독일이 도이치에서 온 것은 유명한 것이고, 불란서 역시 프랑스를 한자로 음차하여 쓴 이름이었다. 그런데 모두가 우리가 직접 들은대로 옮겨적은 것이 아닌 중국과 일본이 한 번 음차한 것을 한자만 따라부르려니 이런 오류들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유럽은 구라파다. 한국의 독음으로 하면 정말 생뚱맞은 이름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 보니 미국 가지고도 사대주의네 뭐네 헛소리가 나중에 나오게 되는 것.


그런데 사실 제너럴 셔먼호나 신미양요를 감안하더라도 구한말 조선인들에게 미국의 이미지는 매우 좋은 편이었다. 일단 국내외적인 사정으로 인해 미국 자체가 아직 대외팽창에 직접 나서지 않고 있었던 데다가, 무엇보다 국민이 스스로 자신들의 대표를 뽑는 대통령제도가 뜻밖에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군사적으로도 부강하고 물질적으로도 풍요롭지만 그보다는 만국의 공법과 공도를 지키는 신의있는 나라로써 벌써부터 추앙하는 이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미국이 오히려 일본의 조선병탄을 강력히 지지했던 것과 비추어 보면 뒤통수도 제대로 맞았던 셈.


1919년 상해에서 임시정부가 처음 수립되면서 왕정복고가 아닌 대통령중심의 공화제를 채택한 것도 이와 관계가 있다. 아마 정도전이 대통령제에 대해 알았다면 조선의 건국은 대통령제로 시작되었을 것이다. 왕은 단지 사대부의 대표로써 나라를 다스릴 고귀한 책임을 위임받는 것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비판하는 예송논쟁의 핵심도 바로 이것이었다. 왕에게는 왕의 예법이 따로 있는가, 아니면 사대부의 예법을 준용해야 하는가. 왕은 특수한 존재인가 아니면 사대부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가. 결국 숙종의 즉위로 전자가 승리하기는 하지만 조선이 망할 때까지 후자도 아주 적은 수는 아니었다. 거기다 구한말 고종이 저지른 병신짓들도 한 몫 해서 새로운 조선의 임시정부는 대통령제의 공화정을 채택한 대한민국이 되었다.


해방 당시에도 일본이 그리 귀축미영이라며 반미감정을 부추겼음에도 미국에 대한 감정이 그리 나쁘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은 좋은 나라다. 강하고 앞선데다가 정의와 도리가 있다. 하루아침에 생겨난 것이 아니라는 거다. 친미란. 지금도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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