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핵무기는 전략무기가 될 수 없다. 당연히 전술무기도 될 수 없다. 다음이 없기 때문이다. 일단 한 번 쓰고 나면 그것으로 끝이다. 핵에는 핵밖에 없다. 상대에게 핵무기가 없어도 기존의 핵보유국들이 완전한 파멸로 이를 수 있는 그같은 무모한 도박을 그대로 보아 넘기지 않는다. 누구라도 먼저 핵을 사용하는 순간 모든 핵보유국, 열강들의 제제를 받아야 한다. 그것도 가장 끔찍하고 완전한 형태의 제제을 가능성이 높다.


누구보다 북한이 그것을 더 잘 안다. 설사 남한을 상대로 핵무기를 사용해서 전쟁에서 승리했다 하더라도 그 다음은 없다. 일본에 핵미사일을 떨어뜨려 초토화시키는데 성공했다 하더라도 그 다음은 없다. 미국 본토에 대륙간탄도탄을 떨어뜨리면 뭐라도 크게 변할까? 바로 미국의 핵보복에 의해 북한체제는 물론 북한영토 전체가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옥으로 바뀌게 된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북한정권이 무력에 의해 뒤집히라는 것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 그런데도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했다고 그것을 실전에서 쓸 수 있겠는가?


그러면 북한은 어째서 별 쓸모도 없는 핵무기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을까? 사실 핵보유국이라는 타이틀도 현실적으로 그다지 메리트가 없다고 할 수 있다. 당장 열강을 제외하고 인도와 더불어 제 3세계 국가로는 드물게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은 파키스탄의 경우를 보자. 그래서 뭐가 크게 달라졌는가? 그래서 뭐라도 더 나아진 것이 있는가? 말이 핵보유국이지 국제사회에서 이렇다 할 발언권 하나 가지지 못하고 있다. 그냥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그것으로 끝이다. 그나마도 기존의 열강들이 인정해주어야 국제적으로 공인받을 수 있다. 미국과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등 열강들이 공인했을 때 핵무기보유라는 것도 국제사회에서 실제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당장 그것이 문제다. 미국은 전혀 북한의 요구를 들어줄 생각이 없다.


미국이라고 모르지 않는다. 어차피 북한이 개발하는 핵무기라고 해봐야 실전에서 사용했다가는 아예 북한이라는 나라 자체가 지도에서 사라질 위험한 선택이라는 것을. 북한이 핵보유국을 선언해도 중국과 러시아가 동의하지 않으면 국자사회에서 아무 효력도 발휘할 수 없다. 실제 효력을 발휘하려면 일단 핵무기를 실전에서 사용해야 하는데 그러면 다시 첫번째 경우로 돌아가게 된다. 핵무기를 쓰면 파국이다. 그런데 핵무기를 쓰지 않으면 결국 국제사회의 공인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여기에 딜레마가 있다. 미국이 북한의 핵보유사실을 인정하고 협상에 나오지 않는 이상 북한은 실전에서 써먹지도 못할 핵무기 개발에 모든 자원과 노력, 비용을 쏟아부어야 한다. 언제가 될 지 모르는 기약없는 인정을 위해 자기 살을 깎아 가며 버텨야 한다.


북한의 도발이 부쩍 잦아진 이유다. 인내심이 바닥난 것이다. 더이상 버틸 여력이 사라져가는 것이다. 제발 들어달라. 제발 알아달라. 중국까지 질려하고 있다. 중국의 입장마저 돌아보지 못할 만큼 북한은 막다른 상황으로 몰려 있다. 사실 그래서 더 문제다. 북한이 저리 발악하는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체제보장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북한이 살려면 개혁개방은 필수일 텐데, 자칫 그 과정에서 북한 체제가 붕괴된다면 남 좋은 일만 하는 꼴이 될 수 있다. 북한이라는 나라와 나라의 국민을 위해 스스로 희생하는 지도부란 최소한 북한 정권과는 상관없는 이야기다. 그동안 북한주민들을 끝없이 희생시켜가며 온갖 사치와 영화를 누려온 이들이다. 기득권을 내려놓기에는 그동안 그들이 누려온 것들이 너무 크고 달콤하다. 그러니 북한이 스스로 개혁개방에 나서더라도 자신들의 기득권만은 최소한 보장해달라. 바로 미국에게서. 그런데 미국이 아에 무시해 버리니 자기 혼자 달아올라 버렸다.


부시 정부와는 다르다. 클린턴 정부와도 다르다. 두 정부 모두 대외문제에 있어 적극적인 개입을 마다하지 않는 정책을 취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바마는 부시정부의 지리한 소모와 낭비를 부채처럼 짊어지고 출범한 정부였다. 지나치게 대외문제에 개입할 경우 당장 자신들이 치러야 하는 비용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한 정부였다. 한국정부의 입장도 김대중, 노무현과는 크게 다르다. 만일 체제보장을 약속받으려 했다면 노무현 때 조금 더 인내하고 굽히는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 한국정부가 괜찮다는데 미국정부가 괜히 나서서 수고와 비용을 낭비할 필요는 없다. 북한정부의 오판이다. 오히려 지금 대미관계에 있어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바로 한국정부다.


스스로 만든 함정에 갇혀 버렸다. 물론 그렇다고 한국정부에도 마냥 좋은 일인가면 그것은 아니다. 결국 만에 하나 최악의 경우 북한정부가 막다른 지경에서 상상하기도 끔찍한 최악의 선택을 하게 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그것이 바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사회가, 국민들이 감수해야 하는 안보환경의 비용이다. 북한이라는 변수를 완전히 제거하지 않는 이상 한국정부에 정장이라는 최악의 불확실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하물며 핵무기를 동반한 위협이다. 다만 정작 북한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하는 미국에게 그것은 단지 남의 일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미국이 외면하는 이상 북한의 의도와 요구는 받아들여질 리 없고, 그때까지 지금처럼 도발만 하다가는 체제를 유지하는 것조차 어려울 수 있다.


시간이 문제다. 아무것도 않고 그저 북한이 안에서부터 무너지기만 기다릴 것인가. 적절히 북한이 연착륙할 수 있도록 도움으로써 북한의 붕괴를 통제가능한 범위 안에 가둘 것인가. 현정부가 추진하는 것이 바로 전자,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것이 후자다. 북한의 체제변화도 남한에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형태로 조율하고 통제하여 피해를 최소화한다. 이익을 극대화한다. 무엇이 최선인가는 결국 조금더 시간이 흐르고 결정될 문제다.


답답할 것이다. 핵무기를 뜯어먹고 살 수는 없다. 원자폭판을 집삼아 침대삼아 매일매일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써먹을 곳이 없다. 정작 써먹을 수 있는 곳에서는 아예 관심조차 없다. 그러나 어떻게든 관심을 돌려야 한다. 이제는 핵실험 좀 했다고 동요하는 사람마저 그리 많지 않다. 쓸 수 있는 카드가 거의 남아있지 않다. 방귀가 잦으면 똥이 된다. 자칫 위험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스스로 걸어들어간 함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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