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부모님으로부터 끊임없이 세뇌당하 듯 들어야 했었다.


"집안의 소리가 집밖에 들려서는 안된다."


나름대로 뼈대있는 집안이다 보니.


원래 전통사회에서 지배층이 지키던 예법이 그러했었다.


아니 조선시대 양반들만이 아니다. 최소한 문명화가 이루어진 세계 어느 사회에서도 지배층의 예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말과 행동이 천하지 않게. 혹시라도 주변에 구설이 들리지 않게. 드라마에서도 흔히 보이는 여자노비를 건드려 얼자를 낳는 행위조차 조선시대 양반사회에서는 터부시되던 것이었다. 양반으로서 품위와 체통을 지켜야 한다. 고작 택배비 얼마 때문에 세상의 입에 오르내리는 그런 품위가 아닌 그깟 돈 몇 푼 때문에 체면을 구기지 않는 그런 체통인 것이다.


하다못해 아랫사람을 부릴 때도 큰소리를 내지 않는다. 비천한 노비라 할지라도 말과 행동에는 양반다운 예절과 기품이 있어야 한다. 설사 잘못을 저질러 혼내야 하는 상황에서도 직접 소리지르고 매를 드는 것은 역시나 비천한 아랫것들이 해야 하는 일이다. 도대체 유럽의 어느 귀족이 일개 하인이 일을 잘못한다는 이유로 직접 매를 들고 욕설을 퍼붓고 했을까. 아, 중세의 문맹영주들이야 그런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들은 정확히 귀족이라기보다는 지배자였다.


분명 귀족이란 오랜 역사와 전통의 결과물이라 할 것이다. 그래서 심지어 고대 중국에서는 대를 이어 부와 권세를 누려오던 귀족들이 지배자인 군주마저 우습게 여기던 때가 있었을 정도였다. 그만큼 귀족에게도 그에 비례한 역사와 전통이, 그에 따른 품위와 예법이 필요했을 것이다. 오로지 힘으로 권력을 쟁취했을 뿐인 지배자는 그 힘으로 세상을 지배할지라도 귀족은 자신들의 피에 녹아든 역사와 전통으로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었다.


한국전쟁으로 모든 것이 파괴되어 버린 때문이었을까. 일제강점기까지만 하더라도 여전히 유서깊은 양반가문들이 남아 있었다. 양반의 예법도 남아 전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전쟁의 폐허 위에서 폭력이 지배하는 사회가 이어지면서 짧은 시간동안 이루어진 고도성장은 그나마 남아 있던 전통마저 지난 시대의 낡은 잔재로써 철저히 무시하고 비웃기에 이르렀다. 진짜는 그런 허튼 역사와 전통보다 당장의 권력과 돈이다. 부와 권력을 가지고서도 그에 어울리는 전통과 예법을 갖추기보다 어떻게든 그것을 과시하며 휘두르기에만 급갑하다. 조금이라도 무시당하는 것은 못참는다.


한진그룹 조씨 일가의 뿌리에 대해서는 솔직히 아예 관심조차 없다. 다만 최소한 그 가정교육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짐작할 수 있을 듯하다. 가진 부에 어울리는 말과 행동을 요구하기보다 그것을 과시하는 것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무시당하지 않고 그것을 휘둘러 확인할 수 있는가 그것에만 집중하고 있었던 듯하다. 조금이라도 자기가 무시당한다 여기면 참지 못한다. 조금이라도 자기에게 소홀하다 여기면 도저히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심지어 자기가 직접 욕설도 하고 폭력도 휘두른다. 때로는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지 못하는 소리를 제 성질에 겨워 실성한 듯 질러대기도 한다. 우리 부모님 기준에서는 말 그대로 쌍놈의 집안이다. 근본없는 집안의 전형이다.


대개 갑질이라는 것이 그렇다. 워낙 근본없이, 역사도 전통도 문화도 품위도 예의도 아무것도 없이 오로지 돈과 권력만을 쫓아 온 세월이었다. 오로디 저 많은 돈과 더 큰 권력만을 바라고 살아온 지난 시절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바라던 부와 권력을 손에 넣게 되었다. 그 다음에 자신들이 해야만 하는 행동이란 어떤 것인가. 자기가 가진 부와 권력에 대한 사회적 책임부터 자각하며 행동에 옮기는 - 물론 그렇지 않은 이들이 실제 더 많기는 하지만 - 여전히 역사와 전통이 살아있는 사회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천박한 사회의 민낯을 어쩔 수 없이 비교해 보게 된다. 차라리 계급사회가 낫지 않을까. 차라리 계급이 분명히 나뉘어 있다면 계급에 따른 최소한의 도덕적 책임과 의무가 전통이라는 이름 아에 강제되기도 할 것이므로.


그냥 사회가 천박한 것이다. 사람들도 천박한 것이다. 말하자면 겨우 먹고 살게 된 졸부들이라 할 수 있다. 품위도 예절도 학식도 교양도 아무것도 없이 그저 당장 먹고 사는 것에만 급급하던 비천한 신분들이 겨우 남들의 위에 설 만큼 부와 권력을 손에 넣게 된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한국사회 전반이 그렇다. 누군가를 특정하여 비판하기보다 그런 사회전반의 인식과 경향을 어쩔 수 없이 느끼게 된다. 그 정점에 그나마 최소한의 가식조차 없이 솔직한 본모습을 적나라하게 내보인 한진그룹 조씨 일가가 있었던 것일 테고.


그래서 근본없는 것들과는 상종하면 안된다 어르신들을 말했던 것이다. 당장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곤궁한 처지일지라도 조상부터 대대로 이어져 온 전통과 예법을 엄격히 지키고 있는 그런 집안들에 뿌리와 뼈대가 있다 말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바로 그것이 명문가라 불리우는 집안들이다. 부와 권력이 아니라 모두가 부러워하는 그 깊이와 넓이가 모두의 부러움과 존경을 받게 하는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저런 행동들이 갑질이 될 수 있는가. 돈이 많아서. 권력이 있어서. 그래서 사회의 상층부를 이루고 있으니까. 지배층에 속해 있으니까. 그래서 그에 어울리는 행동들인가. 그리고 사회의 하부까지 그런 경향은 그대로 이어진다.


시대의 서글픔일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압축된 고도성장을 통해 정작 우리는 무엇을 잃고 무엇을 버리고 온 것일까. 그래서 내가 보수인 것이다. 전통과 품위, 예법과 같은 것을 무척 소중하게 여긴다. 그래서 더 지금의 상황을 용납하기 힘들다.


밥먹는 예절 하나까지도 집요하게 가르치던 부모님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진짜 이 사회의 뿌리와 뼈대가 어디에 있는가. 한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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