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노무현과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나 이해를 묻는다면 나나 한경오나 그 대답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싫어했다. 몇 번이나 이야기했었다. 너무 당연했다. 내가 원하는 정치를 하지 않았으니까. 오히려 내가 반대하는 정치를 더 많이 했었으니까. 지나고 나서 그래도 이명박근혜보다는 나았다며 미안해하기에는 나는 유권자고 노무현은 정치인이다. 그것이 유권자인 나의 권리이고 정치인인 노무현이 감당해야 할 책임이다. 그래서 노무현이 자살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인간적인 연민은 느꼈어도 다른 사람들처럼 오열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지금도 마음의 빚은 전혀 없다.


다시 말해 내가 한경오를 의심하고 심지어 확신마저 가진 채 적으로 단정짓고 공격을 가하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노무현으로 인한 감정의 앙금이 남아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지금도 나는 당시 한경오가 노무현에 대해 잔인하도록 가혹한 공격을 퍼부은 것에 대해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며 이해하고 있는 편이다. 서로 서있는 곳도 가고자 하는 방향도 다르다. 보는 것, 듣는 것, 말하고 생각하는 것이 모두 다르다. 그것을 흔히 이념이라 말한다. 성향이라 말하기도 한다. 정치적으로 그 정도 차이가 벌어지면 적이라 할 수 있다. 설마 지금 전두환이 모든 언론으로부터 조리돌림을 당하며 온갖 모욕을 당하고 있다고 안타까운 감정을 가질 사람이 최소한 이 블로그를 찾는 이들 가운데 몇이나 되겠는가. 충분히 참여정부 당시 언론의 보도만 본다면 노무현은 적이었고 따라서 얼마든지 그렇게 죽여도 되는 대상이었다. 


그러니까 몇 걸음 떨어져서 그저 언론의 보도만을 받아보던 일개 독자인 나조차 바로 눈치채고 있었던 이명박의 노골적인 정치보복과 탄압에 끝까지 눈감고 입다물고 있었던 것이었을 게다. 언론보도가 쏟아지는 가운데서도 도무지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을 만한 구체적인 내용이 보이지 않아서 혼란속에 판단을 유보했던 나와는 다르게 벌써부터 확신을 가지고 노무현에 대한 공격에 심지어 앞장서고 있었다. 몰랐다면 멍청한 것이고, 아예 알려고도 않았다면 무책임한 것이며, 알면서도 외면했다면 지극히 의도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도 이해한다. 한경오에게 노무현이 전두환과 같았다면. 지금 조중동은 어쩌지 못하고 한경오부터 조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이명박은 어떻게 못해도 노무현만은 확실히 죽일 수 있다고 여겼다면. 그게 바로 적이란 것일 테니까. 적은 일단 죽일 수 있을 때 죽이고 보는 것이다. 그만큼 노무현과 한경오가 서로 가는 길이 달랐었구나. 그만큼 노무현은 보수적이었고 한경오는 지나치게 진보적이었었다. 가혹하기는 해도 어차피 정치란 그런 것이었을 터다.


문제는 그로부터 한참 지나 문재인이 새정치민주연합의 대표로 취임했을 때부터였다. 그래도 그때까지는 믿고 있었다. 진보적 가치를 추구하는 한겨레와 경향 등 진보언론들의 선의를. 그러니까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 정도로 엄밀하고 선명하던 그들의 신념과 가치에 대해서. 설사 일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도, 그래서 때로 동의할 수 없는 기사들을 보면서도, 하지만 어차피 진보언론이란 그런 곳이니까. 그들이 지키고 추구하려 하는 것이 바로 그런 것들일 테니까. 역시 몇 번이나 썼었다. 친문패권주의는 그렇다 치더라도 노골적으로 호남홀대론을 주장하며 지역주의를 부추기는 당시 새정연 비주류들의 모습에 어째서 한경오 등 진보언론들은 침묵하고 있었던 것인가? 당을 주인인 당원들에게 돌려주기 위한 개혁안을 지키려 필사적인 문재인의 뒤에서 그를 흔드는 비주류의 편을 들고 있었다. 어찌되었거나 당을 분열시켰으니 문재인이 나쁜 것이다. 당에 분란을 만들었으니 문재인이 잘못한 것이다. 양보하고 타협하라. 누구를?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문재인이 양보해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이어진 총선에서도 아예 대놓고 지역주의를 조장하고 아예 국민의당을 안철수 개인의 사당으로 만들려는 시도들에도 눈감고 있었다. 어떤 식으로 안철수와 국민의당이 호남을 석권했었는지 철저히 입다물고 있었다. 그때부터였다. 원인과 과정을 불문하고 결과만을 따져서 안철수를 띄우기 시작했던 것이. 이 블로그에서 가장 추천수가 많은 그 글을 쓰게 된 계기였다. 이 새끼들이 노무현과 문재인에 반대했던 것은 단순히 이념적으로 서로 맞지 않아서가 아니었구나. 최소한 지역주의와 공당으로서의 당의 구조를 개혁한다는 점에서 문재인과 안철수 누구에게 더 명분이 있고 더 진보적인 가치와도 부합했었는가.


그러고보니 그제 유시민이 재미있는 말을 했었다. MBC의 예능프로그램 '마이리틀텔레비전'에 출연해서 취향을 말할 때는 괜히 토잘지 말고 순순히 인정하고 넘어가라. 그것은 감정의 영역이지 논리의 영역이 아니다. 최소한 한겨레와 경향이 노무현에 이어 문재인을 공격하는데 있어 어떤 일관된 논리나 주장을 찾아보기 어렵다. 몰라서 친문패권주의를 받아썼을리는 없었을 테고, 진정 지역주의가 진보적인 가치와 부합한다 여겨 그에 침묵했던 것도 아니었을 게다. 그저 3당으로서 입지를 확보하는데 성공한 안철수에 대한 인상만을 보도하고 있었다. 지난 대선에서도 철저히 안철수의 치부는 감춘 채 그를 빌미로 문재인을 공격하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어쩌면 많은 언론인과 지식인들의 지적이 옳을 지 모른다. 한경오는 한 번도 안철수의 편에 섰던 적이 없다. 안철수를 노골적으로 지지했던 적도 없다. 처음에는 안철수였고, 그 다음에는 이재명과 안희정이었다가 다시 사람이 없어지니 안철수에게로 돌아갔었다. 그마저도 안철수의 지지율이 지지부진했을 때는 심상정이 그 대신이 되고 있었다. 문재인이 싫다. 문재인이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싫다.


한겨레의 기자 안수찬이 트위터로 문빠를 거론하며 도발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한겨레의 기자 하나가 팟캐스트에서 안철수의 지지하락을 전하며 눈물을 보인 것도 사실은 문재인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러니까 차라라 조선일보처럼 일관성이라도 보이게 한결같은 행보를 보였다면 그나마 이해는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진보언론이니까 보수정치인을 싫어한다. 진보언론이기에 진보의 파이를 뺐어가려는 보수정치인에게 적대적이다. 그런데 과연 그래서 한겨레가 노골적으로 지지하고 지원했던 과거 새정연 비주류, 현재는 국민의당과 정치인 안철수가 얼마나 그들이 주장하는 진보적 가치에 근접해 있었는가. 마치 소수성애자에 대한 혐오를 노골적으로 내뱉는 홍준표를 버려둔 채 그나마 우호적이던 문재인을 찾아가 패악을 부리던 동성애자인권단체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드는 상황이다. 그들이 진짜 목적하고 지향하는 바는 무엇인가. 최소한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처럼 진보적인 무엇은 아닐 것이다. 문재인이 싫다. 노무현이 싫다. 그들을 지지하는 지지자들도 싫다. 지금껏 단 한 번이라도 그들이 규정한 문빠들이 무슨 이유로 자신들을 그토록 집요하게 공격하는가 찾아보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인 적이 있었는가. 그런데도 마치 자기들이 공정하게 객관적인 사실만을 보도했는데 문빠들이 감정적으로 무리하게 강요하며 공격하고 있는 것처럼. 도대체 무엇이 객관이고 무엇이 진실인가?


그냥 감정의 영역인 것이다. 문재인이 싫다. 문재인을 거꾸러뜨려야겠다. 이번 인사청문회와 관련해서 무리한 오보를 아무렇지 않게 쏟아낸 이유도 결국 그렇게 생각하니 이해가 쉬워진다. 단지 진보언론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기대가. 그동안 진보언론으로서 보여온 모습들에 대한 특히 진보인사들의 신뢰와 애정이. 그러니까 한겨레와 경향도 언론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다. 언론으로서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해야 하니 사실에 대해 비판하는 것이다. 다행히 그들 누구도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그 추악한 이면을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과 감시, 견제, 비판만을 이야기한다. 그를 위해서 마치 진실따위는 얼마든지 희생해도 되는 것처럼. 그래서 그들을 아직 언론이라 여겨주어야만 하는 것인가. 최소한 문재인 앞에 서면 언론으로서의 기본조차 무너지는 것들을 언론이라고 믿고 여전히 지지해주어야 한다. 그것도 그들이 감정적으로 적대하는 문재인 지지자들이. 머리에 바람구멍 시원하게 났는 모양이다. 사람 바보취급하는 것도 어지간해야 참아줄 여지가 남는다.


오죽하면 지켜보던 내가 나서서 한경오를 욕하고 있겠는가. 문재인을 지지하지 않더라도 마찬가지다. 사실 재작년 새정연의 분당사태까지만 하더라도 문재인에 대한 지지는 그렇게 확고하지 않았었다. 김종인이 혁신안을 크게 후퇴시켰을 때는 김종인을 데리고 온 문재인을 욕하기도 했었다. 문빠는 좋지만 여전히 노빠는 싫다. 노무현의 죽음에 대해서도 최소한의 인간적인 연민밖에 없다. 위에 쓴 글들을 보면 노빠들이 이를 갈며 칼들고 쳐들어올 심하다 싶은 내용들이 적지 않다. 어쩌겠는가. 원래 달랐는데 이제와서 같은 척 하는 것도 웃기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내가 보더라도 최소한 2015년 분당사태를 전후해서 한경오의 보도는 비열하고 비겁했다. 무책임하고 야비했다. 도저히 이 새끼들을 믿지 못하겠다. 확실히 노빠들이 이것 하나만은 옳았다. 한경오는 언론이 아니다. 내가 틀렸다. 호남의 토호들 역시 관용으로 대해서는 안되는 인물들이었다.


그러니까 한경오가 그동안 얼마나 사실로써 문재인과 민주당, 그리고 지금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고 있었는가. 오로지 객관적인 사실에만 근거해서 후보 문재인과 대통령 문재인을 감시하고 비판하고 검증하고 견제해 왔었는가. 그래서 조중동만도 못한 것들이라 말하는 것이다. 최소한의 알리바이를 만들려는 노력조차 결여되어 있다. 국민을 우습게 본다. 문빠들을 우습게 본다. 자기들이 한 마디 하면 그대로 설득되어 넘어올 것이라고. 그래서 지금 한경오가 언론으로서 오로지 사실과 진실만을 근거해서 정부를 비판하는 기사를 쓰고 있는가 하는 너무나 당연한 물음이다. 그래서 한경오가 과연 언론인가. 한경오부터 죽여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다. 언론이 아닌 것들이 너무 언론인 척을 하고 있다. 차라리 솔직하기라도 하면. 어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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