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펜스룰이라는 것이 남성들 사이에 유행하는 모양이다. 여성과 단둘이 있지도 않고, 대화도 나누지 않고, 심지어 여성과의 접촉 자체를 차단함으로써 혹시 모를 불미스런 상황을 예방한다. 이게 뭔 소리냐면,


"여자가 없으면 성폭력도 없다."


성폭력이란 결국 남성의 성기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남성의 너무나 당연한 본능으로부터 비롯된 것이기에 인력으로 그것을 통제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여성이 남성을 배려해야 한다. 이를테면 밤늦게 혼자 다니지 않는다던가, 남자들과 함께 어울려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던가, 옷차림에 더 주의를 기울인다던가 하는 것이다. 빌미를 주지 말고 틈을 보이지 말고 만일의 상황에서는 있는 힘껏 저항하라. 


그동안 상식이었다. 그래서 정작 성범죄가 일어나면 가해자의 가족들은 피해자부터 탓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피해자가 문제다. 피해자가 빌미를 준 탓이다. 피해자가 원인을 제공했기에 가해자는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피해자의 가족들도 마찬가지다. 성범죄의 피해를 입은 것은 피해자 자신인데 도리어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 움츠리고 숨어 지내야 한다. 지금 들불처럼 번지는 미투운동의 진짜 이유였다. 차마 어디 가서 마음놓고 하소연조차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남성들은 여전히 그에 대한 어떤 고민도 반성도 보여주지 않고 있다.


한 마디로 억울하다. 일방적으로 억울하게 당하고 있는 것이다. 다수 남성들이 미투를 보는 시각이다. 그들의 솔직한 속내다. 남성이 여성과 함께 있는데 성희롱 한 번 안 할 수 있겠는가. 성추행 없이 지나칠 수 있겠는가. 그럴 수 있는 상황이라면 성폭행도 얼마든지 저지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안희정 전지사의 성폭행 의혹이 불거지자 더불어민주당 당원 하나는 피해자와 함께 싸잡아 비난하는 발언도 하고 했었다. 그런 상황 자체가, 그런 상황을 만든 여성의 잘못이지 그래서 그렇게 했을 뿐인 남성에게 무슨 큰 잘못이 있는가. 미투가 남성을 옭죄고 있다. 정확히 부당하게 여성을 상대로 성폭력을 저지른 남성들만을 옭죄고 있다.


그냥 상대에게 실례가 될 수 있는 말과 행동은 하지 않으면 된다. 당장 직장에서 자신의 상사와 함께 있는 자리에서 말하고 행동할 때 대부분 조심하며 상당한 주의를 기울이고는 한다. 혹시라도 내 말이 상대의 기분을 거스르지는 않을까.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상대가 기분나빠하지는 않을까. 그러니까 지금 상황에 자신은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상대를 기분좋게 할 수 있을까. 나이가 어리다고 함부로 말하지 말고, 직급이 낮다고 생각없이 행동하지 않는다. 상식이다. 그것이 예의인 것이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하는 그것처럼 윗사람도 아랫사람에게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과 행동거지가 바로 예의라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혹시라도 실수를 하게 된다면 상대에게 물어 그 자리에서 바로잡으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싫으니까.


여성을 얼마나 하찮게 여기는가. 여성을 배려한다는 것을 얼마나 가치없이 성가시게만 여기고 있는가. 여성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다는 것을 그저 귀찮게 번거롭게만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다 필요없고 그냥 여자들과 만나지 않겠다. 함께하지 않겠다. 대화도 나누지 않겠다. 덧붙여 여성이란 별 것 아닌 말과 행동에도 자기 멋대로 의미를 부여하고 확대해석하여 문제를 키우는 불합리하고 비이성적인 존재다. 당장 미투 운동에 대해 다수 남성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이 여성의 무고로 인해 자신이 피해입는 것이다. 정작 실제 피해를 입은 여성들이 수도 없이 눈앞에 나타나고 있음에도 아직 확정되지 않은 만에 하나의 가능성만을 가장 우선해서 걱정하고 있다. 무슨 의미이겠는가.


어째서 미투인가. 어째서 그동안 사회 각계에서 이토록 광범위하게 아무런 죄책감없이 성폭력이 저질러져 왔는가. 가해자는 오히려 당당하고 피해자가 죄인이 되어 그 긴 세월을 혼자서 아파하며 숨어지내야 했던 이유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 그러니까 여자만 없으면. 여자들만 아니면. 그러니까 남자들만으로서는 성범죄는 일어나지 않는다. 남자들에게는 아무런 잘못도 책임도 없다.


물론 성범죄란 남성과 여성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사실은 권력의 문제다. 그래서 가장 폐쇄적인 위계사회인 군대에서 태연히 남성에 의해 남성을 상대로 한 성폭력들이 저질러지고는 한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를 왕따할 때 쓰이는 가장 흔한 수단 가운데 하나가 상대를 성적으로 모욕하고 수치심을 주는 것이다. 남성이 따로 없고 여성이 따로 없다. 여성이 여성에게, 혹은 여성이 남성에게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이용하여 성폭력을 저지르는 경우도 현실에서는 얼마든지 많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그같은 성폭력에 있어 피해자가 있기에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식으로 자신을 변명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는 것이다. 원래 인류사회가 그래왔으니까. 대부분 그런 현실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왔을 테니까. 남성과 여성의 사회적 우열관계는 최소한 아직까지는 상당부분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로써 다수 남성들의 솔직한 속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되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작 가해자인 남성들과 공감해 버린다. 같은 남성이라는 이유로 동질감을 느끼고 만다. 그러니까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여자들이 문제다. 여자들만 없으면 아무 문제도 없다. 그러니까 여자들부터 남자들 주위에서 먼저 치우도록 하자. 더불어 아직 남성들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우위를 이용해서 협박한다. 그러면 여성들에게도 재미가 없다. 범죄자들에게 자신을 이입해 버리는 저열한 다수 남성들의 본성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여성이란 과연 어떤 의미였는가. 어떤 존재로 여겨지고 있었는가.


인간대 인간으로 존중하면 된다. 같은 인간으로서 혹시 모를 자신의 실수나 잘못을 대비해 조심하고 또 주의하면 되는 것이다. 사과는 빠를수록 좋다. 당장 눈빛의 변화만 봐도 알 수 있다. 굳이 알 필요 없다 무시했기에 모르고 지나치는 것 뿐이다. 아직 여성은 그들에게 인간이 아니다. 단지 성적인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가해자들에 다수 남성들은 자신을 이입해 버리고 만다.


그냥 이 자체가 현실인 것이다. 오히려 가해자의 편에서 여성들을 탓하며 여성들을 밀어내려는 그들의 시도 자체가 대한민국 다수 남성들의 성의식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의 시작이자 끝이다. 정말 한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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