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히 퀴어는 사회로부터 배척당하고 부정당하는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존재를 인정해달라며 벌이는 투쟁이다. 그것도 사회의 일반이 요구하는 선량하고 단정하고 순종적인 성소수자가 아닌 불순하고 불손한 때로 사람들을 불편케 만드는 그저 평범한 인간으로서 자신들을 인정해달라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법없이 살 사람이란 사회의 주류에서도 그다지 흔하지는 않다. 대부분 적잖이 일탈도 저지르면서 사고도 치면서 주위를 불편하게 눈쌀을 찌푸리게 하면서 살아간다. 하지만 그럼에도 정도를 넘어서지 않으면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아니 문제가 되더라도 말 그대로 눈쌀 한 번 찌푸리고 험한 소리 몇 번 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원래 사람이란 그런 것이겠거니 대충 납득하고 인정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물론 차이는 있다. 퀴어축제가 시작된 선진국들에 비해 한국사회는 성소수자가 아닌 주류인 다수자들에 대해서도 매우 엄격한 도덕률을 강요하고 있다. 자신들이 보기에 틀린 말이나 행동은 절대 해서는 안된다. 특히 어느새 권력이 되어 버린 인터넷의 대중들은 엄격한 관찰자이자 심판자로서 매사를 재단하려는 속성을 보이고 있다. 말 한 마디 행동 하나에도 낙인을 찍고 폭력을 가하는 것을 그들은 정의라 생각한다. 설사 성소수자가 아닌 주류의 대중이 그같은 행동을 했어도 거부감을 있는대로 드러내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란 뜻이다. 그래도 그렇게 이해할 수 있다. 성소수자들의 퀴어축제란 단지 인간이 허용할 수 있는 일탈의 경계에서 자신들의 존재를 인정해달라는 인정의 투쟁이다.


반면 워마드나 메갈은 다르다. 그들의 투쟁방식은 반사회적인 것이다. 아예 기존의 남성중심 사회의 가치와 질서를 부정하는 것이다. 오히려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으며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사회가 금지하는 것, 사회가 금기시하는 것, 그래서 자신을 억압하고 있는 모든 것을 부정하고 궁극적으로 파괴하려 한다. 당연히 기존의 사회적 가치와 질서를 지키려는 이들과의 충돌은 불가피하다. 퀴어축제가 관용의 대상이라면 이들의 반사회투쟁은 기존의 가치와 질서를 지키기 위한 투쟁의 대상이다. 그것이 더욱 그들이 투쟁하는 당위를 강화시킨다. 저들을 이기고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겠다.


그래서 그동안도 워마드와 메갈의 투쟁방식에 대해 비판해왔던 것이었다. 굳이 그래야 한다면 그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어차피 세상의 질서라는 것이 자신을 불편케 할 뿐이라면 - 심지어 자신을 고통스럽게 할 뿐이라면 거부하고 투쟁하는 것 역시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기 위한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절실하고 절박하다면 주류사회의 인정따위 기대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주류사회의 관용과 인정에 기대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 역시 그래서 일본제국주의의 관용과 인정을 기대하지도 않았고, 따라서 그렇기 때문에 일본제국주의가 만든 규범과 질서도 얼마든지 무시하고 부술 수 있었다. 민주화투쟁 당시도 군사독재는 극복과 타도의 대상이었지 타협의 대상은 아니었다. 그런데 어째서 남성중심 사회의 규범과 질서에 도전하면서 남성중심 사회로부터 배려와 양보를 기대하고 있는 것일까.


차라리 감옥에 가라. 차라리 감옥에 가서 처벌받고 범죄자가 되라. 자신이 주류사회에 속하지 않는다는 선언인 것이다. 감옥이야 말로 그러한 현실의 억압의 상징인 것이다. 그 정도 용기와 각오가 있어야 한다. 인정투쟁도 아닌 반사회 반역의 투쟁이라면 그런 정도 각오는 있어야 한다. 아마 여성주의자 가운데 상당수가 최근 워마드와 메갈에서 시작된 반사회적 도발에 대해 당황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반역도 혁명도 아니다. 오히려 퀴어와 같은 주류사회의 인정이고 타협이었다. 여성주의를 반사회적인 무엇으로 만들고 있다. 절대 그들이 바라던 것이 아니다.


아무튼 목적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사회적 대응도 분명해져야 한다. 관용의 대상에게는 관용으로, 인정의 대상에게는 인정으로, 투쟁해야 한다면 투쟁으로. 참고로 관용과 인정은 반드시 내가 동의해야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말 그대로 그 존재 자체를 인정하는 것이다. 눈쌀을 찌푸리고 때로 쌍욕이 나오더라도 그런 자체까지 인정하는 것이다. 차별없이 정면으로 눈을 마주하고 솔직하게 서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성소수자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가까운 사람이 그러고 다니면 나로서는 조금 짜증이 날 것 같다.


관용과 인정을 위한 투쟁이 아니다. 타협과 조화를 위한 투쟁도 아니다. 그냥 반역이다. 물론 나는 그런 것까지도 근본적으로 부정하지는 않는다. 현실인식이 그러하다면 그래야 한다. 그런 절박함과 간절함이 있다면 그럴 수 있어야 한다. 대가는 치러야 한다. 그만큼 당당해져야 한다. 당당히 세상 앞에 나서서 내가 왜 그랬다. 무엇 때문에 그랬다. 어떤 목적으로 그랬다.


여성주의를 길들이려는 의도도 분명 존재한다. 여성주의자들이 위기로 여겨야 할 부분이다. 워마드와 메갈을 여성주의와 동일시한다. 여성주의 자체를 반사회적, 반윤리적 가치로 규정한다. 여성주의는 기존사회를 부수려는 불순하고 불온한 움직임이다. 원래 여성주의에 거부감있던 이들이 아예 워마드와 메갈을 앞세워 여성주의만이 아닌 성소수자 등 사회 전반의 문제에 대한 보수성을 강화하려 한다. 


같은 사회 기존의 가치와 질서를 거스르더라도 목적과 정도의 차이는 분명 존재한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차라리 서툴러서 그런 것이라 여기고 싶기도 하다. 표현하는 방식을 모른다. 싸우는 방법을 모른다. 애들이 그래서 어른보다 더 난폭하고 잔인할 때가 있다. 최대한 선의로 해석했을 경우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