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테면 자기가 남자다. 자기 앞에 여자가 있다. 무심코 여자에게 자신의 바람을 이야기한다.


"눈이 더 컸으면..."

"코가 더 오똑했으면..."

"턱이 더 갸름했으면..."

"가슴이 더 컸으면..."


그러면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 못해서 사랑하지 못하고 있다. 


그냥 한 마디로 정히 그런 여자를 바란다면 지금이라도 그런 여자를 찾아 나서라 조언해주고 싶다. 스스로 원해서 하는 것이라면 모를까 마음에도 없는 성형수술까지 한 사람을 위해 해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하긴 대부분 여기에는 단서가 하나 더 따라붙기도 한다.


"그래도 성형은 그렇고 천연이었으면 좋겠어."


그러면 지금 여기서 죽었다가 다시 환생해 태어나기라도 하라는 것일까?


사실 아주 오래전부터 느끼고 있었다. 노무현이 당선되고 인터넷의 자칭진보 자칭개혁들이 모여서 한창 시끄럽게 떠들고 있을 때 문득 위화감을 느끼게 되었다. 과연 그들이 주장하는 진정한 진보란, 진정한 개혁이란 과연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 그들은 과연 진정 진보를, 개혁을 지향하고 있었던 것일까?


당장 자신부터 진보가 아니다. 그다지 개혁도 바라지 않는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대세가 진보를 따르고 개혁을 추구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맞춰가는데 아무래도 영 자기에게는 맞지 않는다. 옷이 맞지 않으면 어찌해야 하는가. 사상도 이념도 정책도 맞지 않으면 그에 맞게 수선하면 되는 것이다. 자기가 수선하면 되는데 다른 누군가에게 수선하라 요구한다.


원래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한결같이 자신들이 믿는 바를 추구해 오던 이들이었다. 그것은 그들의 신념이다. 그들의 이념이다. 그렇다면 존중하면 그만이다. 그리고 그들과 다른 자신만의 신념과 이념을 주장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남이 선 그곳에 너무나 탐난다. 그래서 요구한다. 너희들이 나에게 맞추라. 나도 진보고 개혁이다. 그러므로 진장한 진보이고 개혁이라면 내가 그 안에 들어가 있어야 한다.


원래 정의당은 그런 정당이었다. 시사인도 그런 언론이었다. 한겨레와 경향이 타겟이 된다. 오마이뉴스는 안 보기 시작한 지 벌써 10년이 넘어간다. 그냥 맞지 않으면 보지 않는다. 한겨레도 그다지 자신과 맞지 않으니 굳이 찾아보지 않는다. 정의당 역시 가끔 기회가 되면 표를 주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무언가 요구하거나 바라지 않는다. 원래 그런 정당이었다. 그런 언론들이었다. 그런데 새삼 그럴 줄 몰랐다며 배신감을 토로한다. 진정한 진보와 언론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들을 압박한다. 아니라면 그들에 대한 지지와 구독을 철회하겠다.


처음부터 서로 이념이 달랐던 것이었다. 추구하는 신념이나 가치관도 달랐던 것이었다. 하지만 인정하기 싫다. 여전히 자신은 진보여야 하고 개혁이어야 하며 페미니스트여야 한다. 그래서 바꾸려 한다. 진보정당을. 진보언론을. 여전히 자신들이 진보이고 정의이고 개혁이고 진실일 수 있도록.


시사인의 지적은 상당히 옳았다고 생각한다. 아마 시사인과 정의당을 공격하는 다수도 이미 깨닫고 있는지 모른다. 자신들은 원래 진보가 아니었다. 여성주의자도 아니었다. 진보와 여성주의에 대해 대단히 진지하게 고민한 척도 추구한 적도 없다. 다만 그럼에도 자신은 여전히 진보여야 하고 정의여야 한다. 진보정당과 언론에 대한 부정은 그것을 정당화한다. 저들이 잘못되었을 뿐이다. 내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진보가 아니라고 잘못된 것이 아니다. 보수라고 해서 잘못된 것이 아니다. 여성주의만이 정의는 아니다. 진보 가운데서도 여러 서로 다른 지향이 있고 추구가 있다. 녹색당과 정의당은 다르다. 사회당과도 다르다. 정의당 안에서도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는다. 굳이 진중권이 유시민이 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심상정이 노회찬이 되어야 할 이유도 없다. 김종대는 그냥 김종대면 된다. 그런데도 국이 하나로 끼워맞춰야 한다. 객관식 시험의 폐해다. 세상에 정답은 하나밖에 없고 나머지는 오답에 불과하다. 그냥 그대로 놔두면 된다.


자신들이 느끼는 거부감 그대로 인정하면 그만인 것이다. 그래서 나 역시 평소 한겨레도 오마이도 시사인도 즐겨 읽지 않는다. 그나마 유일하게 챙겨보는 것이 경향신문이다. 나 자신이 보수주의자인 것을 안다. 그리고 여성주의와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것을 안다. 그래서 굳이 상관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대로. 나는 나대로. 어차피 이 사회에 한 줌 영향력도 가지지 못한 정당이고 매체들인 것이다. 새누리가 그랬다면 상당히 신경도 썼을 테지만 고작 자기들끼리 떠드는 소리에 내가 귀를 기울일 필요는 없다. 그들은 그들대로 나는 나대로 존재한다.


그런데 그것이 안되는 이유는 그마저 알량한 권력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내가 하자는대로 된다. 내가 바라는대로 된다. 아니면 응징한다. 아니면 아예 망하게 한다. 그러므로 나는 대단하다. 우리는 대단하다. 대중이라는 이름 아래 자신들에 대한 어떤 비판도 거부하려 하는 이유다. 어찌 감히 대중에게. 자신을 비판해서는 안된다. 무오류는 권력의 속성이다. 틀린 것도 옳게 맞게 만든다. 집단의 힘이 그렇게 만든다.


그냥 상관없이 살아도 되는 것을 굳이 관여하고 간섭하고 그래서 자기 입맛에 맞게 바꾸려 한다. 오지랖이라는 자체가 상대보다 자신이 우위에 있음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내가 하자는대로, 내가 하라는대로 모든 것을 바꾸고 바로잡는다. 하여튼 시시콜콜한 것까지 내 손이 닿아야 하고 내 요구가 미쳐야 한다. 그래서 파쇼라 하는 것이다. 대중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 모든 것을 통제한다. 대중만이 남는다.


내가 인터넷에서 진보입네 개혁입네 떠드는 인사들을 그리 신뢰하지 않는 이유다. 벌써 오래전에 이미 몸으로 겪어 봤었다. 그들의 오만과 폭력성을. 내가 틀렸어도 맞아야 한다. 내가 잘못했어도 옳아야 한다. 진보가 아니어도 진보여야 하고, 페미니스트가 아니어도 페미니트스여야 한다. 네가 바꿔야 한다. 네가 틀렸으니 네가 바꿔야 내가 옳게 된다. 부끄러움조차 없다는 것이 진짜 권력을 보는 듯하다.


그냥 상관없이 사는 것이다. 정의당은 저렇겠거니. 시사인은 그렇겠거니. 한경오도 또 그렇지 않겠는가. 그러다 망하면 망하는 것이고, 그래서 살아남으면 살아남는 것이다. 대세가 되면 그것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자신과 주위의 세계를 분리한다는 것.


예쁜 여자가 좋으면 예쁜 여자를 찾아가 사랑한다 고백한다. 눈이 큰 여자가 좋으면 그런 여자를 찾아가서 일단 작업부터 걸어본다. 반드시 눈앞의 여자여야 한다면 그에 자신을 맞춰야 한다. 인형이 아닌 이상 내 입맛대로 상대를 바꿀 수는 없다. 당연한 사실일 텐데.


세상에는 정의당도 있고 새누리당도 있다. 시사인도 있고 조선일보도 있다. 무엇이 살고 무엇이 죽는가는 시장이 결정한다. 개인의 선택이 결정한다. 누가 인위로 강요할 것이 아니다. 세상은 자신들만 사는 것이 아니다. 웃게 되는 이유다. 자신들의 정의가 너무 유치하고 한심스럽다. 토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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