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사유재산제도란 모든 사물의 소유관계에 대해 그 경계를 명확히 하는데서부터 출발한다. 이건 누구 것이다. 저건 누구 것이다. 그것은 누구와 누구의 공동소유이다. 오로지 나의 소유에 대해서만 사용할 수 있고 권리를 주장할 수 있으며 그렇지 않은 모든 사물은 나의 권리 바깥에 존재한다. 타인의 소유를 침해하거나 교란하는 것은 중대한 범죄로 간주된다.


오래전 산이나 들, 강과 바다에는 소유주가 따로 없었다. 당연히 그런 것들은 모두의 공동소유라 여겨지고 있었다. 내 마을의 산이고 내 동네의 들이고 내가 사는 인근의 강이며 바다다. 하지만 그런 것들도 어느 순간 소유주가 특정되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인클로저란 전통적으로 농민들이 공동으로 이용하던 공유지에 대해 지주가 일방적으로 권리를 주장하면서 농민들을 내몬 것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산에도 들에도 강에도 바다에도 어느새 하나나 혹은 그 이상의 소유주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아무도 소유하고 있지 않다면 국가가 그 소유를 대신하기도 한다.


도토리와 밤은 대개 산에서 난다. 그리고 산은 또한 누군가의 소유인 사유지인 경우가 많다. 사유지가 아니라면 거의 국유지다. 다시 말해서 산에서 흔히 나는 도토리와 밤이라 할지라도 누군가 주인이 있다는 소리다. 자기 소유의 산이나 숲에서 난 도토리와 밤이라면 당연히 자기 소유가 된다. 그런데 남의 소유인 산과 숲에서 난 도토리와 밤이라면 당연히 그 산과 숲을 소유한 소유주의 것이어야 한다. 절취다. 그래서 대부분 산이나 숲에서 보면 함부로 밤과 도토리, 나물 등을 채취해가지 말라고 경고가 붙어 있다. 이 산과 숲을 소유한 권리자로서 자신의 권리를 지키고자 당연히 입산자들에게 경고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어기는 사람들이 많으니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다람쥐나 청설모의 먹이가 부족한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남의 산이다. 남의 숲이다. 당연히 남의 것이다. 그런데 깡그리 무시한다. 산이니까. 숲이니까. 모두의 것이니까. 정확히 누구의 것도 아니니까. 그러니까 채 익지도 않은 밤마저 남이 가져갈까봐 억지로 나무를 차고 두들겨가며 밤송이를 떨어뜨리고는 한다. 더구나 도토리는 여물지 않으면 떫은 맛이 강해 해먹기도 고약스러운데 그마저도 악착같이 마대까지 동원해 싸들고 간다. 만일 그것이 진짜 자신의 소유이고 자신의 권리 아래 있었다면 그런 가치도 없는 상태로 억지로 거둬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직까지도 많은 한국사람들에게 모두의 것은 아무의 것도 아니며 따라서 먼저 가져가는 사람이 임자라는 의식이 강하게 뿌리내리고 있다. 그저 산에서 숲에서 들에서 바다에서 나는 것이니 모두에게 권리가 있고 나에게도 권리가 있다. 현실이 이미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강이나 바다에서도 물고기를 잡으려면 면허가 있어야 한다. 면허 없이 함부로 바다에 들어가서 해산물을 채취했다가는 법적인 처벌도 받을 수 있다. 사실 산과 숲에서 열매를 함부로 따가는 것도 법적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신고만 하면 아마 2000만원 이하 벌금이나 7년 이하의 징역을 살게 될 것이다. 이미 법으로 처벌해야 하는 중대한 범죄로 국가가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단지 다람쥐나 청설모 때문이 아니다. 토끼나 멧돼지같은 야생짐승들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누군가의 배타적인 권리 아래 있는 그의 소유이며 그 권리를 누구도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그러므로 법적인 강제를 통해서라도 그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근대국가의 원칙과 상식을 위한 것이다.


떨어진 것 한두알 가져가는 것이야 누가 뭐라겠는가. 어차피 등산로에 떨어진 것은 다람쥐가 주워가기도 상당히 곤란한 것들이다. 하지만 굳이 등산로까지 벗어나서 아예 산짐승들이 먹을 것이 없을 정도로 금전적인 이익까지 기대하며 채취해가는 것은 분명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 엄밀히 그것은 절도행위에 해당한다. 신고만 하면 바로 처벌도 될 수 있다. 산과 숲에서 나는 것들이 진정 필요하고 그래서 반드시 얻어야 한다면 소유주와 직접 협상하면 된다. 허락이 있다면 그것은 절도가 되지 않는다. 정당한 권리가 될 수 있다. 그런데 누가 그러고 있는가.


요즘 등산에 취미를 붙였다. 가까운 산을 오르며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 역시나 등산로를 벗어나서 밤과 도토리를 줍는 사람들이 보인다. 떨어져 있는 밤송이를 보면 진짜 밤톨 하나 크기도 안되는 것들이 적지 않다. 아직 한국사람들은 가난하다. 남의 물건과 내 물건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비루하고 비천하다. 아무의 것도 아니기에 내가 먼저 가져간다. 그깟 먹지도 못할 덜 여문 밤이며 도토리까지. 반드시 필요해서가 아니다. 먼저 가져가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가져갈 테니까. 그것은 자신의 손해가 되니까. 뒤쳐지는 것은 지는 것일 테니까. 


굳이 집어가는 사람들더러는 뭐라 말하지 않는다. 설득이 되지 않는다. 그마저 자신의 권리다. 자신의 땅도, 자신의 산도 숲도 아닌데 당연한 자신의 권리로 여긴다. 조용히 산에 들어가기 전에 연락처 확인해서 신고하는 것을 추천한다. 다람쥐와 청설모를 위한 것이 아니다. 그 산과 숲을 소유한 진짜 주인의 권리를 위한 것이다. 국유지라면 나 역시 주인이다. 내 것을 훔쳐간다. 화내도 된다. 당연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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