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모든 술을 새로운 술통, 새로운 술항아리에 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더 오래묵은 술통과 항아리에서 더 깊은 맛이 나는 술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단, 전제가 있다. 일단 기존에 쓰던 술통과 술항아리는 깨끗이 씻고 소독한 다음에 비로소 다시 쓸 수 있다는 것이다.


근대 이전 술빚는 일은 그다지 수지가 맞는 장사가 아니었다. 워낙 실패할 확률이 높았다. 조금만 실수해도 술이 되지 못하고 아예 썩어서 버려야 하는 경우게 심심찮게 일어나고는 했었다. 지금처럼 안정적으로 술을 빚을 수 있게 된 것은 다름아닌 세균학의 발달 때문이었다. 술이 썩는 이유를 알고 아예 술이 발효하는 과정에서 다른 세균이 자라지 못하도록, 술이 다 익고 난 뒤에는 더이상 발효되지 않도록 소독하는 기술이 발달했다. 


그래서 새 술은 새 부대라는 말이 나온 것이었다. 고대 중근동지방에서는 술을 가죽주머니에 담아 마셨는데 원래 술을 담아 마시던 주머니에 나시 새 술을 넣으면 주머니 안에 남아있던 술에서 세균이 다시 증식해서 술을 쉽게 상하게 만들기 때문이었다. 술을 빚을 때 뿐만 아니라 장을 담글 때도 마찬가지였다. 먼저 항아리를 깨끗하게 씻고 볏짚을 태워 소독하지 않으면 잡균이 번식해서 장이 상하게 된다. 하물며 장담그던 항아리로 장차 술까지 빚으려는데 항아리를 소독하지 않고 그냥 쓴다면 과연 술은 어떻게 될까?


자동차를 운전할 때도 교대로 운전해서 부산에 가야 하는데 중간에 운전하는 사람이 실수로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있었다면 바로 중간에 빠져나와 원래의 경부고속도로로 방향을 틀어야 하는 것이다. 미래란 자체가 정상상태를 전제하는 것이다. 정상이 아닌 채로 그저 무작정 달려가는 미래란 역시 비정상일 수밖에 없다. 그것이 진정 공동체가 추구해야 하는 미래인가.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는 과정은 미래로 나가기 위한 준비라 할 수 있다.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아 정상으로 되돌리고 비로소 내일을 향해 전심전력으로 달릴 수 있는 것이다. 술통을 씻고 술항아리를 소독하고 장차 새롭게 빚을 술이 맛있게 익을 수 있기를 마음으로 빈다.


원래 게으른 놈들은 그릇도 설거지않고 바로 먹던 위에 밥이며 반찬이며 담아 먹기도 한다. 사실 그래도 당장은 큰 문제가 없다. 그런다고 그런 것이 정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운이 좋은 것이다. 아니면 워낙 더럽게 사느라 면역이 되었거나. 세상 편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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