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어른들은 말한다. 자기들은 맨몸으로 단칸방에서부터 시작했다고. 거기서부터 시작해서 자식도 낳고 열심히 일해서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고.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당시 어른들이 살았다던 단칸방은 어디 위치해 있었을까? 그래서 월세는 얼마였을까?


어릴 적 우리집도 나름대로 후진 동네에 속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암담한 동네도 있었으니 낮에도 친구집에 놀러가면 어쩐지 으시시했던 언덕배기 동네였었다. 지금 거의 아파트나 빌라로 바뀌었다. 당연히 월세든 전세든 비교할 수 없이 비싸다. 한 10년 좀 전엔가 그 근처에서 방 좀 얻으려다가 그냥 돌아서 나온 적이 있었다. 당시 내 수입으로 거기 월세 내다가는 당장 굶어죽을 판이었다.


세계의 대도시 가운데 상당수가 도심 가까이에 빈민가를 두고 있다. 워낙 개발된지 오랜 동네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가난한 사람들이 쉽게 일을 구하려 해도 일자리가 많은 도심에 더 가까운 쪽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서울의 빈민가도 그렇게 발달해 왔었다. 일자리와 가까운 최대한 값싼 땅에 사람들이 모이며 다닥다닥 집들이 들어서 동네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당연히 그냥 비만 피하고 몸만 누이자고 지어진 집들이기에 허술하고 주변환경도 좋지 못했다. 교통도 불편하고, 편의시설도 부족하고, 문화시설같은 건 엄두도 낼 수 없었다. 대신 월세만은 비할 수 없이 쌌다. 그런 볕도 안 들어오는 냄새나고 어두운 좁은 방들이 다닥다닥 경계도 없이 미로처럼 서로 얽혀 있었다. 아마 어른들이 말하는 맨몸으로 시작했다던 단칸방이 그런 방들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묻고 싶다. 그런 단칸방들이 지금 어디 있는가. 올해 경제에 부담이 될 정도로 가파르게 올랐다는 최저임금으로도 한 달 내내 일해봐야 월급이 200만원을 넘지 못한다. 그런데 서울 어지간한 동네에서 한 달 월세가 40만원은 기본으로 훌쩍 넘어간다. 이것도 아주 싼 동네의 이야기다. 아마 찾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고시원마저도 한 달에 저 이상은 주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을 정도이니. 나머지는 어떻게 되었을까?


신혼부부를 위해 우선적으로 공급하겠다던 아파트들조차 그 입지가 문제가 되고 있다. 적당한 가격의 아파트를 찾다 보니 대부분 직장과는 한참 거리가 먼 서울의 주변에 위치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출퇴근에만 최소 한 시간 넘게 소모해야 한다. 심지어 왕복 3시간 이상을 출퇴근에 써야 하는 지역마저 있다. 그나마 남들보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직업은 자칫 대중교통마저 없을 가능성도 있다. 하긴 신도시 가운데는 대중교통조차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니까 딱 신혼부부 수준에서 마련할 수 있는 주거의 수준이라는 것이 이렇다는 것이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일자리에 가까운 도심으로 가자면 그때는 진짜 단칸방 하나에 한 달 월급의 1/3을 써야 할 지 모르는 상황이다. 아다시피 우리나라에서 맞벌이라는 것이 한가하게 애도 낳고 기를 수 있는 환경은 아닌 것이다.


사실 계기는 고시원 화재를 보도하던 어느 기자의 짧은 멘트였었다. 달동네가 사라지고 갈 곳을 잃은 저소득층이 고시원으로 몰려들고 있다. 일단 보증금은 없으니까. 그래도 다른 방들에 비해서는 훨씬 월세도 싸니까. 나도 잠깐 고시원에 있어 본 적 있는데 무려 밥도 준다. TV도 있고 인터넷도 된다. 조금 주변이 시끄러운 것만 참으면 아주 못 살 곳은 아니다. 창문 없는 거야 어렸을 적 살았던 집에도 창문은 없었다. 그런데 그런 고시원에서 가정도 꾸리고 아이도 낳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과연 가능해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맨몸으로 단칸방부터 시작하려 해도 그럴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도심 가까이에, 일자리와 최대한 가까운 곳에, 맨몸으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만큼 값싼 집이 많아야 한다. 그러니까 지금 그런 집이 어디 남아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내가 경기도서 산다. 집값이 싸다. 대신 서울은 어림도 없다. 그냥 여기서 뿌리내리고 살아야 한다. 나야 그래도 운이 좋아 나름대로 먹고 살 일자리를 구했다고는 하지만 - 아니 그럼에도 사실 가정까지 꾸리기에는 어림도 없는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으라? 아이를 기르라? 말이 된다 생각하는가?


주택정책을 근본에서 다시 생각해야 한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내놓았던 도시재생 공약에 흥미를 가졌던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은 한참 늦었다. 과연 서울에서 재생할만한 도심에 가까운 오랜 동네가 몇이나 남아 있는가. 주거환경도 개선하면서 도심과 가까운 보다 값싼 주거지를 소득이 낮은 시민들에게 공급한다. 임대아파트를 늘리는 것도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니다. 임대아파트라지만 정작 주변 다른 아파트의 영향으로 저소득층이 살기에는 터무니없이 비싸지는 경우가 적지 않으므로. 아예 값이 오를 가능성 자체를 차단할 수 있게 처음부터 설계한다면 모르겠지만.


사정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시절이 달라져도 한참 달라졌다는 것이다. 지금 서울 어디에도 당시처럼 맨몸으로 시작할 수 있는 단칸방따위는 남아있지 않다. 아무것도 없이도 그저 서로 의지하며 아이도 낳고 길렀던 그런 단칸방 같은 것은 최소한 그들이 필요로 하는 일자리 주변에 남아 있지 않다. 누가 그렇게 만들었는가? 내가 노인들을 혐오하는 이유다. 자기들이 그렇게 다 바꿔놓고는 여전히 자기들 방식대로 따르기만 강요한다.


그러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너무 간단한 것이다. 너무 단순한 것이다. 일하면서 아이도 낳고 기를 수 있도록. 아직 소득이 충분치 않은 젊은 부부들이 주거걱정 없이 그저 열심히 일하면서 내일만 바라보며 살 수 있도록. 그것이 바로 복지라는 것일 게다.


쉽지는 않다. 아마 당장 시작해도 아주 한참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래도 필요하다. 지금 이대로는 안된다. 암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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