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송곳'에서 아주 인상깊었던 대사가 하나 있다.


"선량한 약자를 위해 악한 강자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시시한 약자를 위해 시시한 강자와 싸우는 것이다."


아마 이보다 통쾌한 한 마디는 드물 것이다. 아마 거의 모든 분야에 적용될 수 있지 않을까. 모든 갈등이 있는 곳이면 결국 인간이란 말처럼 시시한 존재일 테니까.


이를테면 벌써 꽤 된 이야기지만 이수역 사건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냥 잡년들 아닌가. 말했다. 설사 진짜 남자들이 잘못했어도 마찬가지다. 그냥 잡놈들일 뿐이다. 물론 그 가운데는 아주 심각하게 악독한 인간들도 있을 것이고, 차라리 내가 나쁜 놈인 것 같이 너무나 선량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냥 시시한, 그저 평범한 욕망과 본능과 충동에 이끌리는 뻔한 그런 인간들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게 전제하면 된다. 그리고 그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으면 된다. 여성은 이래야 한다. 남성은 이래야만 한다. 여성은 이래서 문제다. 남성은 이래서 안되는 것이다. 하지만 여성도 남성도 자기 머릿속이 아닌 현실에 존재하는 것이다. 저마다 자기만의 욕망이 있고 이해와 추구가 있으며 논리와 가치가 있다. 역사상 어떤 독재자도 그것을 하나로 획일화시키지는 못했었다. 아무리 억압적인 사회에서도 항상 일탈이 일어나고는 했었다. 일탈이야 말로 어쩌면 인간의 본질일 것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인간은 참 다양하다. 그리고 그것이 현실에서 자신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내가 여성이나 여성주의자를 비판 아닌 비난하는 남성들을 향해서도 그동안 꾸준히 해 오던 이야기다. 마찬가지로 남성을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여성주의자들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법이든 제도든 강제란 항상 최소한으로만 적용되어야 한다. 여기서부터가 아니라 여기까지다. 거리에 침을 뱉거나 쓰레기를 버리면 벌금이 얼마다. 물론 거리에 함부로 침을 뱉거나 쓰레기를 버려서는 안된다. 하지만 그 정도 벌금은 얼마든지 지불할 용의가 있다면 침을 뱉거나 쓰레기를 버리는 것도 크게 문제삼을 것이 아니다. 바로 자유라는 것이다. 책임을 전제한 자유가 아니라 자유에 따르는 책임이다. 책임을 회피하지 말라는 것이지 책임을 전제로 자신의 자유까지 억압하라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남성이나 여성에 대해서도 진짜 심각하게 문제가 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어차피 남성이나 여성이나 원래 그런 것이려니 받아들일 수 있으면 된다.


물론 아주 같지는 않다. 이를테면 헤비급과 플라이급의 복서가 서로를 노려보고 있다면 어차피 같은 복서이고 노려보는 행위도 같으니 서로에게 그 의미도 같을 것이라 말할 수 있을까? 건장한 근육질의 청년이 어깨에 손을 올리는 것과 이제 갓 초등학교나 졸업했을 아이가 어깨에 손을 올리는 것이 과연 같은 의미일 수 있을 것인가? 직장 상사가 '너 죽어볼래?' 하는 것과 이제 갓 들어온 신입이 '죽어볼래?'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의미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까지 포함해서다. 같은 행위라도 서로의 조건이 다르면 그 의미도 전혀 달라진다. 그냥 농담도 진담이 되는 상대가 있는가 하면 진지하게 말하는데 농담처럼 들리는 상대가 있다. 여성이 남성을 위력으로 어떻게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지만 그 반대는 이미 너무나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경우들일 것이다. 그러니까 솔직하게 말하면 된다.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그 말과 행동들이 자신에게는 심각한 위협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같은 말을 해도 남성들에게는 크게 대수로운 것이 아닌데 여성들에게는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여지는 이유가 그런 것이다. 같은 행동을 해도 남성들은 크게 위협으로까지 여기지 않지만 여성들에게는 매우 실제적인 위협으로 받아들여지고는 한다. 다만 거기까지다. 그런 정도를 넘어 남성의 사고까지 길들이려 한다. 성인지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남성의 여성에 대한 생각 자체를, 심지어 남성 자신에 대해서마저 정의하고 강제하려 한다. 그러니까 현장 곳곳에서 문제가 불거지는 것이다. 남성을, 때로는 여성 자신에 대해서마저 대상화하고 정형화시켜 일방적으로 강제하려 하니 현실과도 맞지 않고 불만과 반발만 불러오게 되는 것이다. 차라리 남성들도, 그리고 여성들도 자신들과 똑같은 시시한 존재라 가르치는 것이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


아마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는 인생의 진리가 아닐까 한다. 어차피 세상 모든 사람들은 잡놈에 잡년들이다. 그냥 시시한 별 대수로울 것 없는 평범한 사람들에 지나지 않다. 나 또한 그리 도덕적이지도 정의롭지도 않은 선량하지 못한 그저 흔한 수많은 사람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여성주의자들이라 해서 다르지 않다. 아니 스스로 무슨무슨 주의자라며 대단히 똑똑한 척 많이 아는 척 하는 지식인들도 결국 같은 것이다. 단지 그 사실을 자신들만 모르고 있다. 이상적인 여성과 이상적인 남성, 그래서 자신들은 그만큼 완벽하고 무결한가.


그냥 평범하게. 그저 대수롭지 않게. 다만 그런 가운데서도 배려할 부분들이 있고, 양보할 부분들도 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조금 옆집에서 아이들이 시끄러워도 원래 아이들은 시끄러운 것이다. 누군가 음악을 한다고 쿵쾅거려도 너무 크지만 않으면 열심히 해서 부디 성공했으면. 고양이가 발정이 나서 울어도 그럴 때가 되었겠거니. 그저 시시한 농담이나 잡스런 장난들은 그냥 인간이 시시하고 잡스러워 그런 것이겠거니. 여성도 원래 시시하고, 남성도 원래 잡스럽고, 원래 인간이란 그런 뻔하고 볼 것 없는 존재인 탓이다.


하긴 사실 남성들에게 더 필요한 사고일 것이다. 내 욕망을 위한 대상이 아니다. 자신의 본능과 충동을 일방적으로 투사할 수 있는, 그마저도 그대로 받아들이고 따라야만 하는 수단적 존재가 아니다. 스스로 자신의 욕망과 이해와 충동과 논리와 가치가 있는 서로 독립된 인격이다. 때로 시시하고 때로 한심하며 때로 웃기기도 하는. 그러니까 착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혼동하지 말라는 것이다. 자신을 드러내고 싶다는 욕망이 자신을 수단으로 삼겠다는 의도로 이해되어서는 안된다.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여성이 남성을 위한 수단이 아니듯 남성 역시 여성을 위한 수단이 아니다. 굳이 남성과 여성이 아닌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는 가치일 것이다. 인간은 모두 독립적인 존재이며 그 존엄을 함부로 침해하려 해서는 안된다. 바로 근대가 발견한 개인이며 인권이다. 성인지감수성보다 더 중요하고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인간에 대한 존중이며 배려가 아닐까. 인권감수성일 것이다.


내가 특히 여성주의자들에게 분노하는 것이 바로 이런 부분들이다. 여성을 대상으로 여기지 말라면서 스스로는 남성들을 대상으로 여긴다. 남성을 대상으로 여기는 과정에서 여성마저 정형화하며 대상으로 만들고는 한다. 그들에게는 여성과 남성이라는 성별만 있을 뿐 인간이란 존재는 없다. 스스로 욕망을 가지고 사고하고 행동하는 독립적인 인격으로서의 인간이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 내가 자칭진보들을 진보라 여기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간에 대한 애정도 이해도 존중도 없는 진보란 과연 진보일 수 있는가.


다시 말하는 것이다. 원래 남성이든 여성이든 인간이란 시시한 존재다. 남성이라고 모두 악하지 않고 여성이라고 모두 선하지 않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잡놈이고 잡년이다. 장삼이사, 갑남을녀, 필부필부 모두 가능하다. 인간이 인간이면 문제는 더이상 커지지 않는다. 과연 자신이 지금 인간을 보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자기 머릿속에서 정형화된 대상을 대하고 있는 것인가. 아마 자기는 그것을 알기 어려울 테지만. 


시시한 약자를 위해서. 시시한 남성과 시시한 여성을 위해서. 잡스런 남성과 잡스런 여성들을 위해서. 그러니까 모든 인간들을 위해서. 어떻게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하며 서로 함께 어울릴 수 있는가. 의외로 답은 가까운 곳에 있는지 모른다. 저들만 모른다. 배움만으로는 부족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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