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했지만 지금 야당들이 앞세울 수 있는 아젠다라는 것이 다른 것 없다. 지지율차이가 어지간해야 정책으로 정부와 여당에 차별성을 둘 수 있다. 정부와 여당이 선점하지 못한 곳에서 진지를 구축하고 정면승부도 노려 볼 수 있다. 정부와 여당의 지지가 과반이 넘어가는데 그걸 어떻게든 꺾어야 자기들에게도 몫이 돌아올 것이 아닌가. 그래서 야 3당이 하는 일이라는 것이 특히 여당의 지지율까지 견인하고 있는 문재인 발목잡기다. 어떻게든 문재인만 잡아 거꾸러뜨리면 자기들에게도 기회가 돌아올 수 있다. 문재인만 어떻게든 집중공격하다 보면 자신들에게도 다시 기회가 돌아올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지금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을 끌어내리기 위해 노려 볼 수 있는 가장 크고 확실한 대상이 바로 안보일 것이다. 원래부터 민주당은 상대적으로 자유한국당에 비해 안보의 의지나 역량에 있어 크게 신임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냥 자유한국당(새누리당이든 한나라당이든 민정당이든 이름은 상관없이)만 아니면 빨갱이 소리를 들어야 했다. 하물며 김대중이라면 30년 빨갱이에 북한에 돈을 퍼줘서 핵무기를 만들게 한 장본인이다. 사실여부와 상관없이 그렇게 믿고 있는 전통적 보수당 지지자의 수가 최소 과반에 육박했었다는 것이다. 다시 안보의 이슈만 가져오면 자유한국당의 입장에서도 원래의 지지율을 회복하면서 정부와 여당과도 한 번 제대로 힘겨루기를 해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


아주 영리하게도 문재인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높은 지지율을 바탕으로 상당한 무리를 감수해가면서까지 미국과의 관계개선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지난번 사드의 임시배치 역시 국내여론의 반발에도 이미 전정부에서 결정한 사안을 취소하여 미국의 심기를 거스를 수 없는 고육지책이었다 볼 수 있다. 북한에 대화를 제안하면서도 북한이 미사일 쏠 때마다 마주 미사일을 쏘고 폭격훈련을 하는 등 오히려 이전 정부보다도 더 강경한 모습도 보여주고 있었다. 아무리 야당이 문재인 정부의 안보의지나 역량에 대해 비판을 해도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지 고작 6분만에 마주 미사일을 발사하며 효과적인 무력시위를 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가릴 수는 없다. 이명박도 박근혜도 이렇게 확실하게 단호하게 북한의 핵실험이나 미사일발사에 대응했던 적이 없었다. 이전 정부보다 더 강도높게 북한을 비난하며 주변국들과의 협력을 이끌어내려는 시도 역시 아무리 일방적으로 쏠려 있는 언론환경이지만 모두 감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면 무엇으로 문재인 정부와 안보를 가지고 정책경쟁이란 것을 해 볼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나온 것이 전술핵무기였다. 딱 북한의 핵실험에 따른 국민적 불안과 분노를 자극하기에 적절한 이슈였다. 북한이 핵무기를 가졌으니 우리도 핵무기를 가져야 한다. 만에 하나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할 경우를 대비해서 우리도 보복수단으로써 핵무기를 가져야 한다. 핵무기만이 핵무기를 견제할 수 있다. 핵무기만이 핵무기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가 남는다. 핵무기는 전략적 무기라기보다 정치외교적인 무기다. 북한이 저토록 필사적으로 핵무기를 가지려 하는 것도 국제사회에서 핵무기를 보유했다는 사실이 가지게 될 정치외교적 효과와 가치에 기대를 걸고 있기 때문이다. 핵무기만 가지고 있으면 저 대단한 미국도 자신들과의 협상테이블에 나설 수밖에 없다. 하긴 그런 점에서 벌써부터 미국 정부가 직접 나서서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를 주도하며 전방위적 압박을 가하고 있는 현실을 보면 아주 틀린 판단은 아닐 것이다. 최소한 미국이 직접 신경써야만 하는 의미있는 존재가 되었다. 그런데 과연 우리가 핵무기를 가지겠다고 하면 우리를 둘러싼 주변 강대국들이 그냥 손놓고 보고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당장 중국을 자극하게 된다. 우리나라와 사이가 좋지 않은 일본 역시 바로 반발하고 나설 것이다. 아니면 그것을 기회로 자기들도 핵무기 개발을 시도할지도 모른다. 러시아 또한 자신들과 인접한 나라가 핵무기를 보유한다는 사실이 그다지 달가울 리 없다. 중국이 북한의 핵무기개발을 방치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뒤에서 돕고 있는 것도 더욱 아니다. 단지 지금 미쳐 돌아가는 북한 수뇌부에 대해 중국 자신도 직접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방법이 그다지 마땅치 않다는 사실을 자존심 때문에 인정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중국마저 북한에 대한 강도높은 제재에 동참하면 북한에 대해 직접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는 사실만 인정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북한은 중국의 영향력 아래 있어야 한다. 북한이야 어차피 가진 것이 없으니 잃을 것도 없다고 저런 식으로 무작정 버티고 있다 하겠지만 과연 대한민국이라면 어떻겠는가 하는 것이다. 당장 사드배치만으로도 중국과 갈등이 빚어져 상당한 경제적 피해를 감수해야 했는데 핵무기는 사드와 차원이 다른 문제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 부담을 한국에 재배치할 전술핵무기를 가진 미국도 함께 나눠져야만 한다. 전술핵무기의 재배치를 결정하고 실행하는 것은 한국정부가 아닌 미국정부여야만 하는 것이다.


그나마 미국이 가진 전술핵무기를 재배치하자는 것이니 이 정도로 끝난다. 자유한국당이 재배치를 요구하는 전술핵무기는 미국에 소유권이 있는 미국이 직접 통제할 수 있는 무기체계다. 그런데 한국이 실제로 핵무기를 독자개발한다면 미국의 통제에서 벗어난 핵무기가 또 늘어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2차세계대전 이후, 그리고 소련의 해체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재구축된 국제사회에서의 힘의 질서를 훼손하지 않기 위해서는 미국정부의 입장에서도 보다 엄격하고 단호한 태도가 필요하다. 중국과 러시아, 일본의 반발까지 고려했을 때 그것은 절대 미국 정부가 허용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행보인 것이다. 그때 과서도 과연 한국정부가 미국과 전통적인 우방이며 혈맹임을 주장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이번과 같은 사단이 벌어진 것이다. 그래도 제 1야당의 국회의원이라는 것들이 세상 돌아가는 것도 모르고 미국에 가서 전술핵무기 재배치를 구걸하고, 그것도 대놓고 거절당하고 돌아왔다. 원래 안되는 것을 알았다. 그냥 립서비스다. 중국과 러시아를 압박하기에 위한 블러핑에 가깝다. 더구나 설사 전술핵무기를 재배치하더라도 그것은 한국정부와 협상할 문제다. 일개 야당의 요구를 받아들여 결정할 사안이 아닌 것이다. 최소한 미국 국회의원들도 그런 상식 정도는 기본으로 알고 있다. 현재 원내 1야당이며 바로 얼마전까지 여당이었던 정당의 정치인이라고 믿기지 않는 한심한 현실인식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해야만 했으니까.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문재인 정부의 안보의지와 역량에 대한 의구심을 불지펴야 했으니까. 안보는 자유한국당이다. 안보는 역시 민주당보다 자유한국당이다. 그러니까 자유한국당이 전술핵무기 재배치를 이루어낸다.


전략적으로도 전술적으로도 제약된 상황이 가져온 처절한 무리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촉군의 전력으로 위군을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니 1만의 병력으로 한 번 자오곡을 노려보겠다. 고구려의 요동방어선을 뚫을 수 없으니 보급도 다 무시하고 30만의 별동대로 평양성을 직접 노려보겠다. 어차피 어떻게 해도 지는 싸움이니까 아르덴 숲에서 한 번 전력을 모아 모험을 걸어보겠다. 하지만 그곳에도 자시들이 기대하는 승리는 없었고 그나마 있던 밑천마저 탈탈 털리고 망하는 결과만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나마 자유한국당이 믿는 것은 자신들에 우호적인 - 최소한 문재인과 민주당에 적대적인 국내 언론환경일 것이다. 한겨레와 경향 등 자신들에 적대적이던 진보언론들마저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과 관련한 사안이면 무조건 먼저 정부와 여당부터 공격하는 일관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든, 더구나 안철수까지 도와주면, 광화문 앞에서 똥을 싸도 그 책임은 문재인과 민주당에게 돌아간다. 그것을 믿고 지금 저런 헛되고 한심한 짓거리를 마음놓고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이었다.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다른 살아날 방법이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똥인지 된장인지 모르고 무조건 주워 입에 넣고 본다. 어느 자유한국당 정치인도 고백했다. 보수언론이 주장하니 그래도 되는 줄 알고 따랐었다. 판단이 마비되어 있다. 국민의당과 마찬가지로, 아니 오히려 1야당이라는 지위가 더욱 그들을 궁지로 내몰고 있다. 무언가 보여주어야 한다. 자신들에 등돌린 보수유권자들을 위해서라도 무언가 확실한 것을 보여주지 않으면 안된다. 문재인은 강하다. 차라리 통곡의 벽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아직까지는. 차마 웃지 못할 코미디였다. 현실이 절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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