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만화에서 찌질한 단역들이 단골로 쓰는 대사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그래서 뭐? 어쩌라고?


남이 어떻게 생각하든 네 생각이 무어냐 하는 것이다. 누가 무어라 말하는 내가 그리 판단했다는 것이다.


행동의 주체는 자신이다. 사고의 주체도, 판단의 주체도 자신이다. 그런데 왜 남의 생각을 끌어다 자기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삼는가. 정확히 남의 생각을 자기가 그렇게 생각한 근거로서 설명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주장에 권위를 더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할 뿐이다. 그러니까 이만큼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생각에 동의하고 있으니 너도 자기 생각에 동의하라. 그러니까 내가 왜 그래야 한다는 것인가.


정작 자기들끼리 싸우면서 서로 편들어달라고 사방에 떠드는 사람들이 있다. 걔가 그랬대. 쟤가 저랬대. 하지만 결국 자기의 입장적인 주장이지 않은가. 그래서 더 많은 지지자를 모으면 그 주장은 옳은 것이 되는가. 그래서 자기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더 많다면 자기의 주장이 더 옳은 것이 되는 것인가. 결국은 이겨먹겠다는 것이다. 더 많은 자기편을 끌어들여 누가 옳든 그르든 일단 지금은 이겨먹어야겠다. 그런데 왜 내가 남의 싸움에 휘말려야 하는가.


가끔 인터넷에서 누구 욕해달라고 올리는 글을 보면 가뿐하게 뒤로가기를 눌러 버리는 이유다. 갑자기 게시판이 시끄러워지며 누가 옳네 그르네 시비가 붙으면 잠시 인터넷을 내리고 다른 일을 한다. 어차피 주장 뿐이다. 단지 주변의 정황에 지나지 않는다. 대개는 최초게시자의 주관이 개입되어 있을 것이다. 그나마 주관이면 좋은데 일방적인 의도가 담겨 있을 가능성이 더 높다. 그런 게시물을 근거로 어떤 사실을 정확하게 판단한다는 것은 과연 가능한가. 무엇보다 그래야 하는 당위에 대한 것이다. 그러니까 결국 남의 싸움인데 누가 이기고 지는 문제에 왜 내가 개입해야 하는가. 김구라가 말했다.


"그런 건 경찰서 가서 해결하라 그래!"


아마 시간들이 남아도는 탓일 것이다. 내 일만으로도 대부분 일상들이 버거운 입장에서 남의 일에 그렇게 적극적으로 나서기란 대개는 쉽지 않다. 일일이 자기 일처럼 화내며 앞장서 나서기란 너무 피곤한 일이다. 그래서 논쟁이 있으면 한 발 물러서서 결론이 나오기만 기다린다. 재미있는 건 대부분 끝까지 주장만 있을 뿐 결론같은 건 없다는 것이다. 싸움이란 그런 것이다. 어느 한 쪽이 완전히 포기하기 전까지 싸움은 끝나지 않는다. 하물며 고작 텍스트에 지나지 않는 인터넷 세계의 공격이란 치명적인 상처로 이어지는 경우가 거의 없기에 어지간하면 끝까지 가려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 가운데는 일찌감치 사실관계가 분명히 드러나며 바로 결론이 나오는 경우도 없지는 않다.


아무튼 재미있는 것이다. 하루만 지나면 또 하나씩 싸움거리가 생긴다. 누가 편을 드네, 누가 누구의 편을 드네, 그러니 누가 더 잘났네, 누가 더 못났네. 어려서도 그러고 전쟁놀이하며 참 잘도 놀았었지만. 언제부터인가는 깡패들 흉내내며 주먹질로 전쟁놀이를 대신하고 있었다. 유희라 생각한다. 인터넷은 그런 점에서 아주 훌륭한 놀이터다.


자칫 남의 싸움에 휘말려 글 하나 쓸 뻔하다가 게임 잠시 하는 사이 완전히 식어 버리고 말았다. 자기들 일은 자기가 알아서. 남의 일은 각자가 알아서.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도 아니고 기껏 개인의 다툼 쯤이야. 그것을 사회문제로 키우려는 것이 오히려 우스울 뿐.


너무 정의로워서 문제다. 항상 느끼는 것이다. 너무 정의롭고 너무 똑똑한 사람들이 문제다. 자기만 그리 생각할 뿐이지만 어쨌든.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