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하는 말이지만 더 말할 필요 없이 간단하다. 그들에게 국민의 가치란 그 정도밖에 안되기 때문이다. 외교란 국가적인 중요한 일이다. 다른 나라와 우호적인 관계를 만들고 유지하는 것은 상당한 대가와 희상을 치르더라도 반드시 이루어야 하는 중대한 과제다. 그를 위해서는 국민 한두사람의 희생 정도는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의 안보와 번영을 위해서 몇 사람 쯤 억울하게 죽었어도 상관없다는 다수 국민의 주장과 통하는 바가 잇다.


바로 얼마전까지 불의한 독재권력에 의해 강요된 국가주의의 잔재인 것이다. 명분없는 군사독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권력자들은 국가주의를 국민과 특히 자신의 손발이 되어야 하는 공무원들에 강요하고 있었다. 국가를 위해서 이 정도는 얼마든지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 개인의 자유와 인권, 심지어 목숨까지도 국가를 위해서는 얼마든지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기지촌 여성들을 미군을 위한 성노예로 기꺼이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기지촌여성들이 미군에 의해 어떤 수모를 겪고 어떻게 참혹하게 죽임을 당하든 그런 비천한 창녀 몇 명의 인권이나 목숨보다 미국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하물며 엘리트들이다. 민주당이 외무고시 행정고시 폐지하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어렵사리 고시라는 관문을 통과해 엘리트의 길을 걸었던 고위공무원들에게 다른 국민들이 자신과 동등한 존재로 여겨질 리 없다. 어느 공무원이 했던 '개돼지'라는 말 그대로 실력으로 남들보다 위에 설 수 있었기에 자기보다 낮은 곳에 있는 모두는 자기 이하의 존재여야 하는 것이다. 자기는 국가의 중요한 일을 하고 있고 따라사 자기 이하의 국민들은 그런 자신을 이해하고 따라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더구나 그런 공무원들이 처음 일을 시작하며 보고 듣고 배운 모든 것들이 불의한 독재권력에 부역하던 자신의 선배이고 상사들이 하는 말이고 행동이었다. 그렇게 마치 유전처럼 공무원들의 사고와 가치는 시간을 넘어 이어진다.


더 어이없는 것은 그같은 사고와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 고위공무원들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군이나 검찰, 경찰만이 아니다. 이미 수도없이 불의한 독재권력에 의해 무고하게 희생된 사람들에 대한 사실과 진실들이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몰라서가 아니다. 알면서도 나라의 번영을 위해서 그 정도 희생은 어쩔 수 없다. 알면서도 나라의 안정과 번영을 위해서 그 정도 희생은 당연한 것 아닌가. 다수 국민들 역시 마찬가지다. 차라리 국민들이라도 강하게 반발하면 뭐라도 바뀌는 게 있을 텐데 국민들부터 그런 공무원들의 사고에 동의해버리고 만다. 위안부 협상에 대해서도 피해할머니들의 사정이야 딱하고 안타깝지만 그러나 일본과 미국과의 관계가 중요한데 어쩌겠는가. 그분들이 양보해야 한다. 그런 주장을 하는 국민이 또 한참 다수라는 것이다. 국민이 먼저 국민 자신을 개돼지로 여긴다. 역시 불의한 독재권력이 국민을 길들이기 위해 주입한 국가주의에 세뇌된 탓일 것이다.


국가를 위한 희생을 정당화한다. 국가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 부패와 무능 역시 인내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에 와서도 국가를 위해서는 다소간의 부정과 비리까지도 참아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과거 공직자 출신이 선출직으로 중요한 자리에 올라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차라리 그냥 손발로 남아있으면 모르겠는데 머리가 되는 순간 그들이 보고 듣고 배워온 과거의 모순들이 모두 현실이 되어 버린다. 안타깝게도 반기문이 스스로 그것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과거 너무나 당연하고 그래서 정의롭기까지 하던 상식들이 반기문이라는 공직의 전설을 통해 낱낱이 세상에 까발려진다.


보다 근본적인 이유들을 살펴야 한다. 외교부 공무원들의 인성이 좋지 않아서? 설마 외무고시로 인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만 가려서 뽑는 것은 아닐 것이지 않은가. 똑같이 시험을 통해 걸러냈는데 결과가 그렇게 갈린다. 이유는 결국 한 가지다. 그들이 근무하는 환경이다. 그들이 보고 듣고 배우는 사람들이다. 무엇보다 국가와 사회다. 국민들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내가 행정고시 외무고시를 폐지해야 한다 주장하는 이유다. 시험은 자칫 사람들 사이에 서열을 매기고 층을 나누게 된다. 단지 시험성적만으로 전혀 다른 인격이 될 수 있다. 시험은 필요하지만 시험이 전부여서는 안된다.


하여튼 대만에서 성폭행을 신고한 자국민을 방치하지 않나, 필리핀에서 심지어 경찰까지 가담하여 자국민을 살해했는데 침묵하고 있지 않나. 위안부협상마저 국가를 위해 어쩔 수 없었다. 국가외교를 위해 필요한 잘한 선택이었다. 모두가 하나라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겠다 나서고 있다. 귀국하고 보인 모든 행보들이 그런 일관성을 보인다. 그리고 그것을 잘한다 지지하는 국민도 있다. 다행히 다수는 아니다.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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