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진의 명장이었던 조사는 자신과 병법을 토론해서 이기기까지 한 아들 조괄에 대해 이런 평가를 내리고 있었다.


"장차 지휘관이 되면 군병을 망칠 놈이다."


원래 책임이 무거우면 그만큼 생각도 행동도 신중해지는 법이다. 자기에게 지워진 책임에 비례해서 더 신중하게 무겁게 조심해서 판단하고 행동에 옮긴다. 그래서 매순간 고민하고 모든 것에 갈등한다. 과연 그래도 좋은가 의심하며 끊임없이 숙고한다. 반면 책임이 없다면 그만큼 더 자유롭고 가벼워진다. 이를테면 삼국지에서 제갈량의 명령을 어기고 자기 재주를 과신해서 산으로 올랐던 마속처럼. 정작 사마의의 대군에 패했을 때 군을 버리고 가장 먼저 가장 멀리 도망쳤던 것이 바로 마속이었다.


진정 자신이 대통령이라는 자각이 있었다면. 국민의 대표로써 국제사회에서 국민의 자존과 이익을 지키는 중대한 책무를 지고 있음을 깨닫고 있었더라면. 그래서 자신의 판단과 결정이 국민에 미칠 영향을 무겁게 깨닫고 있었더라면. 자신의 행동에 대해 국민이 분노하고 반발하는 것에 최소한 꺼리는 마음이라도 가지고 있었더라면. 그러니까 국민이 무서워서라도 이렇게는 해서 안된다. 국민이 반대할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는 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그런 것 없이 그저 언론과 공권력을 이용해 찍어누르고 밀어붙이면 된다. 모르게 숨기고 있으면 된다. 그러면 단지 일본과 위안부협상을 타결하고 관계를 정상화한 결과만 남게 된다. 대통령은 없고 박근혜라는 자기만 있었다.


하긴 누구에게 정치를 배웠겠는가. 벌써 시대는 40년이나 훌쩍 지났는데 여전히 자기 아버지가 정치하던 시절에 머물러 있었다. 말 안들으면 잡아가두고, 무고한 사람 잡아들여 고문하고 죽여서 겁주고, 언론을 장악해서 나팔수로 삼고, 당연히 나라는 대통령인 자신의 것이므로 돈 좀 받아 챙기는 것이야 당연한 것이다. 국정원 예산도 내 돈이고, 재벌의 돈도 내 돈이고, 국가기관 역시 자신의 손발이어야 하고. 무엇보다 국민은 그런 자신을 일방적으로 따라야 한다. 자기가 결정한대로 무조건 쫓아야 한다. 얼마나 억울할까. 자기가 배운 그대로 충실히 해왔을 뿐인데 이제 이렇게 죄인의 신세가 되었으니. 그러라고 국민이 뽑아줬길래 열심히 그래놓았더니 죄인으로 만들어 가두고 있었으니.


그럴 것이라 이미 짐작하고 있었지만 내가 예상한 수준을 훌쩍 뛰어넘어 버렸다. 그 와중에도 박근혜를 변호하는 보수언론을 보고 있으면 과연 이 나라의 보수란 어떤 의미인가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이야기한 바 있다. 한국과 미국의 보수는 사유화에 있다고. 개인의 자유를 넘어서 권력과 자본의 국가와 사회에 대한 사유의 허용이 그들의 목표일 것이라고. 유승민과 바른정당이 이번에는 포지션을 잘 잡았다. 그래야 산다. 이런 말도 안되는 상황에서조차 보수랍시고 허튼 짓거리 했다간 그나마 알량한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다.


대통령이라는 것이 자신이 책임져야 할 국가와 국민에 대해 어떻게 여기고 있었는지. 그런 대통령같지 않은 대통령을 지금까지도 옹호하는 언론과 정치인, 그리고 국민들에 대해서까지. 독재가 불과 수십년 전에, 아니 그 잔재가 불과 몇 달 전까지 부활해서 활개치고 있었음을 깨닫게 한다. 그렇게 가벼운 책임과 감당할 수 없이 무거운 권력이 국민의 안일함속에 자격없는 이에게 맡겨진 것에 대해서도. 덕분에 그를 이어 들어선 정부만 피곤하다. 미국과 중국, 이제는 일본과의 외교문제까지 풀어야 한다. 멍청하면 그냥 청와대에서 TV나 보며 쳐놀던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일방적으로 파기하기도 국제사회에서의 신뢰라는 문제와 걸린다. 아무리 막장 정부라도 정부끼리 합의한 내용을 정권이 바뀌었다고 바로 뒤집는다는 것은 부담이 크다. 그렇다고 이대로 유지하기에는 바로 보수야당과 언론이 태도를 바꾸어 몰아붙이려 할 것이다. 저놈들에게 염치같은 것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재협상은 일본이 안하겠다 선언했다. 물론 그럼에도 재협상이 없다면 파기밖에는 답이 없지만.


원래 저런 인간이란 걸 알았다. 모를 수 없었다. 언론보도의 행간만 보더라도 저런 인간이라는 것을 절대 모를 수 없었다. 책임이 없는 척 하지 말자. 경솔하고 무책임했던 것은 전직대통령만이 아니다. 화도 나지 않는다. 불과 몇 달 전이었다. 차라리 현실이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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