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남성들이 대부분 여성들보다 더 오랜 시간을 더 집중해서 더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이유는 사실 한 가지다. 배신자 때문이다. 남성과 여성이 경쟁하는데 또다른 여성이 남성을 뒤에서 돕는다. 이를테면 2인분이다. 남성과 여성의 연합군이다. 대부분 여성들은 자기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정작 가사노동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경우가 많은 반면 특히 고위직으로 갈수록 남성들은 그런 사소한 일들에 굳이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바로 전업주부의 존재다. 많은 남성들은 말한다. 어째서 여성들은 잔업도 야근도 하지 않으려 하는가. 회식도 않고 그저 집으로 일찍 들어가려고만 하는가. 남자는 그래도 된다. 독신이면 독신이라 더 그렇고, 결혼을 했어도 어차피 집안일은 아내가 거의 도맡아 하고 있을 테니까. 굳이 자기가 더 일찍 가서 빨래나 설거지를 도울 일도, 아이를 돌볼 일도 없다. 평소 아내를 도와 집안일을 나누었더라도 회사에 급한 일이 있으면 어느 정도 양해를 구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런데 여성은 여전히 심지어 여성의 지위가 상당한 수준으로 올라간 선진국에서도 집안일에 대한 상당한 책임을 부여받는다. 


그래서 여성운동가 가운데 보면 제법 살만한 집 자식들이 많은 것이다. 아니더라도 상당한 고소득 전문직에 종사하는 경우가 상당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니면 아무리 여성해방을 외치는 여성주의자라도 완전히 가사노동으로부터 자유롭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가사분담이란 자체가 아직도 낯선 개념인 한국사회에서 가사노동에 대한 부담 없이 여성이 온전히 바깥에서 자기 일에만 충실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니까 집에 돈이 좀 있거나, 아니면 자기가 돈을 좀 많이 벌거나, 그래서 굳이 자기가 직접 집안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조건에 있기에 자유롭게 밖으로 돌며 여성운동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대부분 그다지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남성들이 여성운동을 고깝게 여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참 잘들 나셨다.


문제는 과연 다른 여성들도 그런 엘리트 여성운동가들과 같은 처지 같은 환경인가. 아니 그 전에 어째서 남성들은 전업주부인 아내가 있는데 여성은 그렇지 못한가부터 따져물어야 한다. 역시 많은 남성들이 불만을 가지는 이유다. 남성들은 여성이 자기보다 경제적으로 상당히 아쉬운 처지더라도 크게 문제삼거나 하는 경우가 드물다. 왜? 내가 먹여살리면 되니까. 내가 열심히 일해서 먹여살리면 되니까. 반면 여성들은 자기가 만나는 남성이 자신보다 경제적으로 더 우월하기를 기대한다. 그런데 과연 여성보다 경제적으로 더 우월한 남성이, 그러니까 재산이든 자기 일이든 포기할 수 없는 조건에 있는 남성이 여성을 위해 자기 일까지 포기하고 집안으로 들어와 내조만 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남성은 밖에서 일을 하며 아내와 가족들을 먹여살린다. 여성은 그런 남성에 기대어 아이를 낳고 집안을 꾸려나간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진 지금도 그 근본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더 지독해졌다. 여성도 일을 한다. 다만 남성과 달리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의 존재와 가치를 위해 일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돈 잘 버는 사회적 지위까지 높은 남성의 보호와 지원이 필요한 것이다. 여전히 일을 하면서도 여성은 타율적이고 의존적이다. 여성은 자기보다 돈 잘 버는 사회적 지위까지 높은 남성이 필요하고, 남성은 그저 자기가 사랑할 수 있는 자신의 집과 가정을 지켜줄 수 있는 여성을 필요로 한다. 과연 이같은 일방적인 비대칭구조에서 남성과 여성은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을 것인가. 여성이 자기 직업을 가지고 밖에서 열심히 일하는 현실에서도 결국 여성이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가사분담 정도고, 고위직 남성들은 전적인 내조 아래서 온전히 경쟁에만 자신의 능력을 투사할 수 있다.


문제는 뭐냐면 그런 현실에서도 여성은 그저 자기보다 나은 조건의 남성들만을 바라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묻고 싶다. 여성주의자들에게. 만일 자기가 사랑하는 남자가 자기를 위해 하던 일도 포기하고 집으로 들어와 그저 집안일만 열심히 하겠다 한다면 어떻게 대응하겠는가. 그만큼 더 열심히 밖에서 자기 일을 할 수 있을 테니 기뻐하고 좋아하겠는가. 아니면 이런 한심한 남자라며 경멸과 혐오를 내보이겠는가. 


바로 많은 남성들이 여성주의에 대해 가지는 근본적인 불만이자 문제제기인 것이다. 여전히 많은 남성들은 단지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강요당하고 있다. 능력이 되든 안되든 적성에 맞든 안 맞든 일단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일을 가져야 하고, 가족이 더 풍족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높은 지위까지 올라가야 한다. 그런 압박감 속에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 그렇다면 그만한 대우는 해주어야 하지 않는가. 여전히 가장으로서의 책임만 강요하면서 정작 그런 노력들에 대한 아무런 존경도 존중도 없이 그나마 누리던 알량한 사회적 지위까지 모조리 빼앗아가려 한다. 여성들에게 그것은 단지 자기실현의 기회일지 몰라도 남성들에게는 장차 자기가 책임져야 할 가족의 생계이기까지 한 것이다.


그래서 결혼도 않는다. 물론 여성도 비슷한 이유로 결혼하지 않으려는 것일 게다. 결혼하는 순간 다시 가정에 얽매이고 말 테니까. 가정에 얽매인 채 지금의 일에마저 충실할 수 없을 테니까. 경력단절이란 여전히 많은 여성에게 두려운 현실이다. 마찬가지로 남성들 역시 지금 수준에서 결혼한다는 것이 너무나 큰 부담이고 두려움이다. 결혼만 하면 아이를 둘이든 셋이든 낳는다. 그런데 결혼 자체를 하지 않는다. 어째서? 여전히 결혼이 남성과 여성에게 요구하는 책임과 압박감이 그만큼 상당하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은 여성주의가 주장하는 양성평등으로 돌아간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겠는가?


먼저 여성이 남성과 대등하게 경쟁하고 싶으면 여성의 남성에 대한 요구와 기대부터 바꿔야 한다. 남성이 그저 집안일 열심히 할 조신한 여성을 구하듯 자기 일로 성공하고 싶은 여성이라면 그런 남성을 찾으면 된다. 사실 쉽지 않다. 여전히 많은 남성들은 가장이 되기를 요구받으며 그를 위해 교육받고 길러지고 있다. 과연 가장이 아닌 내조하는 위치를 받아들일 남성이 얼마나 될 것인가. 그래도 찾아야 한다. 여성과 경쟁하는 남성들이 그러고 있으니까. 그래서 굳이 일찍 퇴근해서 어린이집으로 아이를 데리러 가지도 않고, 집에서 아내와 저녁준비를 돕지 않아도 된다. 그렇기 때문에 밤늦게까지 남아서 여성들보다 더 많은 일을 더 헌신적으로 할 수 있다. 다른 전문직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만큼 독하지 않으면 남들보다 위에 오를 수 없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조스의 이혼기사를 보며 문득 떠오른 생각이다. 물론 제프 베조스의 아내는 사실상 아마존의 공동창업자였다. 그런데도 사업이 일정궤도에 이르자 집으로 돌아가 내조에 힘쓰고 있었다. 많은 여성들이 그러고 있다. 많은 남성들이 그런 조건에서 일하고 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어디에 있는가. 그러므로 고위직에 여성을 늘리고자 한다면 무엇부터 어떻게 바꿔야 하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남성의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덜고 남성이 가사를 전담하는데 대한 사회적 편견을 줄이는 일일 것이다. 무엇보다 여성 자신의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 남성은 여성을 위한 지갑도 울타리도 아니다. 여성이 오히려 남성을 위한 울타리가 되어 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남녀평등이다. 여전히 지갑이고 울타리인 채 그저 더 많은 배려와 양보만을 베푸는 호구가 아니라. 오히려 그런 기사도나 신사도같은 것은 지독한 남성우월주의의 산물이었을 것이다.


하여튼 그래서 묻고 싶은 것이다. 과연 여성주의자들이 기대하는 남성상이란 어떤 것인가. 자신과 대등한, 혹은 자신이 배려하며 지켜야 할 대상으로서의 남성도 상관없는 것인가. 물론 현실에 그런 여성들이 아주 없지는 않다. 다만 그것을 남성에 대한 헌신과 사랑이 아닌 가장으로서의 사회적인 책임에 의한 것이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근본이 바뀌지 않으면 달라지는 것은 없다. 사회하부구조가 사회상부구조를 결정한다. 마르크스는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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