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요즘 한창 뜨거운 여성징병 주장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것을 넘어 환멸까지 느끼는 것은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다. 이제 곧 인구절벽과 맞닥뜨리게 되면 더이상 남성만으로 지금의 군규모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더 싼 비용으로 지금의 군규모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여성을 대상으로도 징집을 실시해야 한다. 이 무슨 소리인가? 여성 이전에 개인을 부당하게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 억압하고 강제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까놓고 말해 저딴 헛소리 지껄이는 대부분은 나보다 편하게 군생활 한 사람들이다. 당연히 내 윗세대는 나보다 더 힘들게 군생활했다. 내가 군대 있을 때 한창 신형막사를 새로 짓고 있었다. 뻬치카 때던 구형막사와 보일러 때는 신형막사가 병존하고 있었다. 전방에서 신형막사생활을 했는데 얼마나 좋았던지. 한겨울에도 빼치카 물로 겨우 얼굴만 닦다가 아예 뜨거운 물로 샤워까지 할 수 있는 걸 알았을 때는 진짜 별세계인 줄 알았다. 그게 다 무엇이겠는가? 심지어 지금 군인들은 당시 내가 받던 몇 십 배를 월급으로 받는다. 그만큼 군대가 좋아졌다는 뜻이다.


더 좋아져야 한다. 지금도 좋아졌지만 앞으로도 더 훨씬 한참 더 좋아져야 한다. 최소한 나라를 지키겠다고 끌려간 군생활이 조금이라도 덜 억울할 수 있도록. 최소한 사람답게 대우받으며 군생활도 할 수 있도록. 궁극적으로는 병영생활이 병영밖에서의 평균적인 생활보다 더 나은 수준으로 유지될 수 있어야 한다. 억지로 끌려와 많은 자유를 박탈당하고 억압당하며 군생활을 하는데 그렇게라도 보상받아야 할 것 아닌가. 먹는 것이며 입는 것이며 쓰는 것 모두 소중한 청춘들을 병영에 잡아두는 대가로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해야만 하겠는가. 돈을 더 써야만 한다. 이대로 남성만 징집되는 지금의 체제를 유지하더라도 국방예산은 지속적으로 지금보다 더 늘어나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지금껏 징집의 대상이 아니었던 여성을 징집하면서 그 이상의 추가비용조차 생각하지 않고 있다. 어차피 징집병이란 싸게 몸으로 때우는 병력에 불과하다.


그동안 국가가 나라의 소중한 젊은이들을 신성한 국방의 의무라는 이름 아래 끌고가서 아무 대가 없이 마음껏 부려먹은 논리가 바로 그것이었다. 나라에 돈이 없다. 나라의 사정이 급박하다. 당장 북한이 적화통일을 노리고 있다. 북한의 위협을 어느 정도 재래식전력으로 누를 수 있게 되자 이번에는 중국과 일본을 핑계삼는다. 그러니 너희들이 공짜로 자유를 박탈당하고 억압당하는 것도 당연하다. 이토록 열악한 환경에서 불편하게 군생활을 하는 것도 어쩔 수 없다. 같은 논리를 여성에게 그대로 적용한다. 어차피 나라에 돈이 없으니 병사들에 대한 처우나 복지를 지금보다 향상시키기보다 지금처럼 값싸게 쓸 수 있는 다른 자원을 찾자. 그들로 하여금 부족한 병력분을 대신하도록 하자. 참 애국자들 나셨다. 혐오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이 여성에 대한 복수심 때문이든, 아니면 인간에 대한 그들의 기본적인 인식의 문제이든.


인구가 줄면 병력도 따라서 주는 것이 맞다. 인구가 줄어드는데도 이전 수준의 병력을 유지하겠다고 군복무기간을 늘이거나 부적절한 자원을 병사로 징집하는 것은 막장국가들이나 하는 짓거리다. 당장 북한이 대한민국과 군비경쟁을 하겠다고 무려 7년이나 젊은이들을 군에 묶어두고 있는 중이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26개월의 군생활도 지옥같았는데 그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 심지어 보급도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7년이나 군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이. 무엇보다 군복무를 해야 하는 젊은이들은 가장 왕성하게 생산에 종사해야 할 노동력이기도 하다. 당과 로마의 사회가 오랫동안 장정들을 징집해서 전쟁에 내보내면서 농사짓던 다수 평민들의 생활이 곤란해진 결과 함께 무너지고 말았었다. 그런데도 지금의 군규모를 유지해보겠다고 복무기간을 늘리네, 여전히 싼 다른 자원을 찾네. 차라리 병사의 수가 줄어드는 만큼 그것을 대체할만한 질적인 수단을 찾는 것이 낫지 않을까. 쉽게 다른 사람을 억압하고 착취해서 지금의 수준을 유지하기보다 더 대우해주고 더 존중해주면서 다른 수단을 찾는 것이 더 건설적이고 옳은 방향인 것이다.


지금 사람들이 인구절벽을 앞두고 더욱 모병제를 주장하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실 여성징병에 대한 훌륭한 대안이기도 하다. 당장 우리보다 앞서 징병제에서 모병제전환을 시도했던 대만의 경우만 하더라도 여성이 너무 많이 지원하는 바람에 곤란을 겪고 있었다. 군복무에 대한 충분한 대가를 지불하고 군복무과정에서 상당한 수준의 복지와 처우를 약속한다면 어차피 실업률도 높고 취직도 어려운데 사람들이 몰려들 수밖에 없다. 아직 충분한 병력을 확보하지 못했다면 그만한 조건을 국가가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은 징병제 아래에서도 충분히 이루어져야 하는 병사들에 대한 처우와 복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기에 굳이 젊은이들이 군에 자원하기를 꺼려한다. 그것이 문제인 것이다. 어차피 징병제를 유지하더라도 모병제 하는 만큼 병사들을 대우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차라리 징병제를 유지하기보다 모병제로 바꾸는 쪽이 더 싸게 먹힐 수 있다. 지금 모병제를 주장하는 다수의 입장이 그렇게 다른 것이다. 그저 싸게 쓸 수 있으니 지금이라도 여성을 징병하는 것을 고려하자. 여성을 대상으로 모병하더라도 최소한 모두가 대안으로서 선택할 수 있을 만큼의 군대를 만들고 자원토록 하자.


그래서 모병제로 바꾸면 군사력이 저하되는가. 일단 복무기간을 마음대로 늘릴 수 있다. 스스로 군인이 되겠다고 찾아온 직업군인들이니까. 군가산점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징병제 아래에서 병역은 불특정다수에게 적용되는 의무였다. 따라서 군복무를 했다는 이유로 받게 되는 공무원가산제가 형평성에 어긋난다 판단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모병제는 자신이 국가를 위해 봉사하겠다고 - 혹은 그런 역할을 하겠다고 자원한 것이고 그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해 줄 의무가 국가에는 있다. 직접적인 거래관계가 되는 것이다. 모병에 응한 개인에 대해 국가는 그에 걸맞는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 지금도 직업군인들에게는 국가가 약속한 다양한 혜택들이 주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혜택들을 누리기 위해서는 군복무를 성실히 수행하지 않으면 안된다. 차라리 영창보다 무서운 것이 감봉이고 해고다. 직장생활해 보면 알 것이다. 돈 못받고 일자리 잃는 것이 밤마다 고참에게 불려나가 두들겨맞는 것보다 더 무섭다. 매일같이 새벽별보며 작업에 동원되어도 상사의 눈치를 보며 책상에 붙어 있어야 하는 것보다는 자유롭고 편하다. 자본주의 사회인 것이다.


아무튼 어이없는 것이다. 누구는 차라리 조금 더 세금을 내더라도 군인들이 지금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군복무하기를 바라는데 누군가는 전과 똑같은 환경에서 다른 사람도 자신과 같은 군생활을 경험하기를 바란다. 인간으로서, 당연히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평균적인 수준의 일상을 군에서도 누릴 수 있도록 더 많은 세금이 쓰일 수 있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돈이 드니까 더 싸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사람을 지금의 환경 아래 밀어넣자는 사람들이 있다. 여성들이 스스로 자기도 군대가겠다고 말할 수 있도록 군대를 바꾸기보다 권력의 힘을 빌어 그들을 강제로 끌어다 지금의 군대에 쳐넣어 버리겠다. 그러니 복수심이라 말하는 것이다. 마치 자기 군생활 힘들게 했다고 병영을 개선하는 것을 두고 군생활 좋아졌네 어쨌네 심통을 부리는 일부 - 아니 다수의 철없는 예비역들과 닮았다 해야 할 것이다. 나 고생한 만큼 너희도 고생해라. 나 힘들었던 만큼 너희도 힘들라. 그런 주장을 과연 진지하게 받아들일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자기들만 모른다. 지금 자기들이 하는 주장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가를.


선후가 바뀐 것이다. 남성이 군복무에 대해 부당하다 여기는 것은 그만한 충분한 대우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적절한 보상 또한 받지 못하고 있다. 군가산점을 아직까지 물고 늘어지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나마라도 군복무의 대가로 받던 알량한 것이었는데 그조차 빼앗기고 말았다. 그러니까 여자를 군대보내기 전에 남성이 당연한 의무로써 이행해야 하는 군복무에 대해 적절한 대우와 보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하는 것이다. 여성들이 보니까 군생활 할 만 하더라. 장교나 부사관처럼 취직도 어려운데 군생활도 한 번 해 볼 만 하겠다. 그때쯤 너희는 필요없으니 오지 말라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사실 실제 필요가 없기도 하다. 대부분 여성 장교나 부사관들이 받는 보직도 거의 전투병과와는 무관하다. 뭐하러 그 돈과 그 번거로운 과정들을 거쳐가며 여성들을 군대에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자신이 모멸감을 가지고 군복무를 대하는데 누가 그에 동의해주겠는가.


하여튼 가장 어이가 없었던 것이 병영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가 여러나라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고 하니 남성도 같은 일을 겪고 있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어떤 사람들이었다. 그러니까 남성이니 그 정도로 끝나는 것이다. 그 정도로 군이라는 조직 자체가 갖는 문제가 작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을 어떻게든 개선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지 남성들도 당하고 있으니 여성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여성 장교와 부사관에 대해서도 성범죄가 끊이지 않는데 하물며 징집된 사병이다. 생각이 없거나 아니면 의도적으로 노린 것이거나. 어쩌면 현실의 부당함을 바꾸기보다 타인을 그 안으로 밀어넣고자 하는 집요함이야 말로 그에 대한 억울함과 분노의 표현이 아닐까. 그만큼 힘들고 그만큼 억울했으므로 너희들도 나와 똑같이 겪어야 한다. 심정은 이해하지만 방법이 잘못되었다. 노예제가 잘못되었다고 노예주를 노예로 만드는 것은 현실의 모순을 더욱 심화하고 강화할 뿐이다.


정히 눈에 보이는 형평성을 요구한다면 국민방위세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모든 국민이 내지만 군복무자는 내지 않는다. 군복무를 하지 않는데 대한 형벌이 아니다. 군복무를 훌륭히 마친 데 대한 보상이다. 그보다 앞서 군복무 자체를 억울하게 여기지 않도록 적절한 대우와 보상이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그것이 먼저다. 여성이 먼저 가고 싶다 말하는 군대를 만드는 것. 그들이 반대하는 것이다. 인간은 비싸다. 당연한 상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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