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말한다.


"모르고 그런 건데 어쩌겠느냐?"

"알면 설마 그랬겠느냐?"

"알면서도 그랬으니 더 나쁘다."


과연 그럴까?


사람은 누구나 선하고자 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인간이 가진 5가지 욕구중 3번째 인정의 욕구에 해당한다. 선하다는 것은 집단의 보편적 가치에 충실하다는 뜻이다. 아무리 흉악한 범죄자이고 지독한 악당이라 할지라도 결국에는 주위에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욕구를 갖는다. 그런데 어째서 뻔히 알면서도 그 사람은 그런 나쁜 짓을 저질렀던 것일까?


결국 필요했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와 목적을 위해 잠시 양심을 접어두어야 할 필요를 느꼈던 것이다. 그 와중에도 끊임없이 합리화한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러지 않으면 안되었다. 어차피 그리될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필요만 사라지면 어떤 범죄자도 악당도 다시 선량한 사람으로 돌아온다. 밖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살인귀가 집에서는 가족을 끔찍이 아끼는 가장이 되고 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그리고 그 말은 곧 그래야 할 필요 자체가 사라지면 알면서 나쁜짓을 저지르던 사람은 그러지 않게 될 가능성이 높다. 왜냐면 자신이 지금 하는 행동이 나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르고 나쁜 짓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다르다. 그들은 자기가 지금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가 스스로 알지 못한다. 그에 대해 스스로 판단하고 평가할 능력 자체를 갖추고 있지 못하다. 아무 생각 없이, 아무런 동기도 이유도 없이도 그들은 쉽게 같은 짓을 반복하게 된다. 필요가 사라지더라도 마찬가지다. 그래야 할 이유가 없어도 달라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들은 모르는 것이 아니라 알려 하지 않는 것이다.


사회 일반이 선하다 여기는 행위가 무엇인지는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도 모르려야 모를 수 없는 상식에 속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무엇을 싫어하고 무엇을 나쁘다 여기는가도 마찬가지다. 아주 어렸을 적에는 부모로부터 배우고, 조금 더 자라서는 학교에서 선생님들로부터 가르침을 받는다.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고 주위사람들과 소통하는 사이 자연스럽게 습득하게 되는 정보들이 있다. 바로 상식이라는 것이다. 은행은 몇 시까지 문을 여는지, 은행에서 돈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체크카드를 쓰려면 자정 무렵은 피해야 한다든가 하는 것들이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범죄가. 다른 사람을 속이거나 물건을 훔치는 것은 아주 나쁜 짓이다. 그런 나쁜 짓을 해서는 안되고 만일 했다면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모른다. 모르는 것이 아니라 알려 하지 않은 것이고 알려고 노력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불가에서는 무지를 가장 큰 죄라 여기는 것이다. 무엇이 옳은지도 모르고 무엇이 나쁜지도 모른다. 분별없이 그저 본능이 시키는대로만 행동에 옮긴다. 그러고서도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른다. 반성조차 없다. 최소한 자기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의식조차 하지 않는다. 아무리 나쁜 놈들도 자기가 나쁜짓을 저질렀다는 자각 정도는 있는데 이런 경우에는 그마저도 거의 없다 보아야 할 것이다. 반성을 하지 않으니 결국 다시 반복된다. 자각이 없으니 멈추지도 않는다. 과연 무엇이 더 나쁘다 할 것인가.


사이코패스가 달리 사이코패스가 아닌 것이다. 자기가 하는 행동이 악이라는 자각조차 없다.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되는 행동이라는 의식조차 없다. 무심하게 행동에 옮기고 그 결과에 대해서도 그저 냉정하기만 하다. 구분도 없고 분별도 없다. 제한도 없고 한계도 없다. 무지한 자가 죄를 저지르면 그래서 무섭다. 차라리 합리화할지언정 결코 사과도 반성도 후회도 하지 않는다. 절대 바로잡는 법이 없다.


알려면 얼마든지 알 수 있었던 당연한 상식이다. 알 수 있는 것을 끝내 모르고 행동으로까지 옮겼다. 무엇이 더 큰 잘못인가. 인간의 양심은 의지다. 의지는 행동을 수반한다. 거역할 얌심조차 없다. 차라리 알고 저지르던 인간들이 모르게 되어간다는 쪽이 옳을 정도다.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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