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에게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한 가지 이유 때문이다. 그만큼 큰 권한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더 많은 것들이 쉬워지고 가능해지는 힘이 주어지기에 얼마나 자신의 욕망과 충동을 절제할 수 있는가 살피는 것이다. 혹시라도 자기에게 주어진 권한을 자신의 사적인 욕망과 이익을 위해 사용한다면 정작 그 힘이 쓰여져야 할 곳에 제대로 쓰여질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권력자에게 주어지는 것인 권한이 아닌 권력 그 자체다. 권한은 수동적이지만 권력은 능동적이다. 권력자의 손가락 하나에 수만의 목숨이 사라질 수도 있다. 권력자의 판단 하나에 죽어야 할 사람이 살고 살아야 할 사람이 죽을 수 있다. 그러니까 고작 도지사지만 유력 차기대선주자라는 이름 앞에 수행비서는 거부의 말조차 조심스럽게 소극적으로 내뱉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바로 이 사람에게 나의 운명을 결정할 힘이 주어져 있다. 그래서 마지막에도 혹시 모를 만에 하나의 상황을 대비해서 지켜달라 간절히 부탁했던 것이기도 하다.


물론 사람인 이상 욕망이 없을 수 없고 충동이 없을 수 없다. 자기가 아니더라도 주위에서 얼마든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그래서 더욱 살피는 것이 그럼에도 자신의 더 큰 야망을 위해 어디까지 자신을 다스릴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자신의 주위를 관리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 또한 능력이다. 바로 권력의지라는 것이다. 자신의 야망을 위해 어디까지 희생하고 어디까지 인내할 수 있을 것인가.


내가 안희정이라는 정치인에게 실망한 것은 바로 이런 부분이다. 그저 성폭행을 저질렀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인간 안희정에 대한 환멸과 혐오의 이유는 될 수 있을지언정 정치인으로서 실망할 이유까지는 되지 못한다. 진짜 실망한 것은 대선후보경선에서 떨어지고, 그럼에도 정권을 되찾고 여당의 유력대선주자로 손꼽히던 상황에서 그와 같은 일들을 저질렀다는 사실이다. 그에게 권력이란 어떤 의미인가. 대통령이란 자리란 어떤 가치인가. 대통령이 되어 보겠다는 사람이 고작 잠시의 욕심을 참지 못해서 그런 일들을 저지르는가. 자신을 바라보는 수많은 지지자와 자신과 손잡은 적지 않은 정치적 동지들이 있다. 그들에 대한 책임을 느꼈어야 했다.


그릇의 문제인 것이다. 설사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순간적 욕망을 이기지 못해 실수를 저질렀다 해도 그것은 유력대선후보로 손꼽히고 있는 지금이어서는 안되었다는 것이다. 더구나 그 상대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신의 명령과 지시를 거부할 수 없는 수행비서였다는 것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상대가 거불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용해서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 주장한다면 최소한의 염치조차 잊은 버러지라 해도 좋을 것이다. 더 심한 표현도 생각났는데 차마 그런 말까지는 쓰고 싶지 않았다.


거짓이기를 바란다. 지지하지는 않았어도 기대하는 바는 있었다. 적잖이 실수는 했어도 아직 기대할 부분이 많다 여겼었다. 하지만 최선의 경우조차 결국 배우자를 배신한 불륜이 되고 마는 것이다. 범죄는 아닐지라도 그런 경우까지 가정해서 지금까지 떠들고 있었던 것이다. 고작 그런 자제력과 인내심으로 대통령을 꿈꾸었는가. 대한민국 대통령 자리가 이렇게 하찮았던 것일까. 충격이었다. 참 한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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