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당선 이전까지는 민주당 지지층보다 보수정당과의 경계에 위치한 중도층의 지분이 비할 수 없이 컸었다. 그나마 새누리당이 40% 넘는 지지를 보일 때 20%도 간당하던 민주당이 노려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기도 했었다. 안철수는 물론 안희정까지 문재인으로는 안된다며 당당히 대선후보로 나설 수 있었던 근거도 여기에 있었다. 문재인은 안되지만 자신들이라면 이곳에 있는 유권자들을 납득시킬 수 있을 것이다. 문재인과는 달리 특정 이념이나 계파에 치우치지 않은 중도적이고 온건한 성향과 지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박근혜가 아니었다면 그들의 그같은 주장이 실제 현실로 이루어졌을지도 모르겠다. 박근혜로 인해 보수가 아예 박살이 나지 않았다면 아직도 그들의 그같은 주장은 상당부분 유효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동안 보수유권자의 상당부분을 이루던 박근혜에 대한 지지가 지난 국정농단 사태를 거치며 철저히 박살나고 말았다. 그로부터 오히려 더 커진 것은 보수라 참칭하던 과거 박근혜 정부에 대한 비토 여론이다. 물론 진보는 아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박근혜 정부가 보여준 나라망신스러운 폐정들을 바로잡고 제대로 나라를 일신할 수 있는 새로운 인물이었다. 그래서 안희정이 안되었던 것이었다. 안철수가 스스로 무너지고 만 이유였다. 지난 대선에서 유일하게 박근혜 정부와 강하게 대립각을 세우고 있었던 인물은 문재인 한 사람 뿐이었다.


그리고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고 난 뒤 그같은 자신의 약속을 실천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민주당 정권이 지난 보수정권들보다 무엇이 다른가. 그동안 보수정권들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었고 제대로 했더라면 어떻게 하는 것이 옳았는가.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무엇을 어떻게 했어야 했는가의 당위의 문제다. 민주정부라면 어떻게 해야 한다. 진정 국민을 생각하는 정부라면 어떻게 했어야 한다. 아무리 언론이 외면하려 해도 정권을 가졌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다. 그리고 문재인 이후 다음 대통령은 그런 문재인 정부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물려받아야 한다. 어떻게 하면 문재인 정부가 잘한 것들을 충실히 물려받아 지지해주는 국민들을 배신하지 않고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인가.


무려 대통령 지지율이 70%다. 민주당 지지율이 50%에 육박한다. 새누리당의 전성기에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었다. 박근혜의 전성기조차 이에는 턱없이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굳이 무리하게 애써가며 민주당 너머의 지지층을 욕심낼 필요가 없다.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는 유권자의 마음을 사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다. 물론 아주 외면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것이 민주당 지지층이고 대통령 지지자들이라면 그들을 만족시키는 것이 우선이다. 어떻게 하면 문재인 이후 그들의 마음을 자기에게로 향하게 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까 지금 문재인 정부가 무엇을 잘하고 있고 그것을 자신은 어떻게 계승해야 할 것인가. 


똑똑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엘리트이기 때문이다. 자기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한때는 맞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당시의 판단이 유효한가는 조금 더 고민해봐야 한다. 다른 사람도 아닌 벌써부터 민주당의 차기 대권을 노리고 뛰기 시작한 인물이다. 차기 민주당 정권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민주당 지지자들이 바라는 차기 대통령은 과연 어떤 인물이어야 하는가. 기껏 대통령이 멀리까지 영토를 넓혀놨더니 과거 요충지라며 국경에서 웅크리고 있는 모양새다. 지켜야 할 것은 좁은 요새가 아니라 더 넓고 큰 많은 인구가 사는 평야고 도시여야 한다. 그러자면 무엇이 필요한가.


자신과 마찬가지로 중도층만을 노리던 안철수가 왜 지리멸렬해 있는가 알아야 한다. 새로운 보수를 표방하던 유승민도 바른정당과 함께 풍전등화의 처지가 되어 있다. 유일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은 홍준표 뿐이다. 중도는 없다. 사실상 중도는 소멸해 있다. 그만큼 박근혜의 국정농단이 컸다. 새롭게 변한 정치지형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은 또한 정치인이다. 정무적 판단이 중요한 자리다. 자기라면 다를 것이라 생각한다.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혀 자기라면 저들과 절대 다를 것이다. 안타까운 이유다. 차기가 이렇게 하나 스스로 무너진다. 자기 선택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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