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국민의당 내부에서도 부정적이었다. 심지어 안철수계로 분류되는 인사들마저 뜯어말렸다 전해지고 있을 정도다. 그런데도 안철수는 단행했다. 대선이 끝나고 이제 겨우 석 달도 채 안됐는데, 더구나 제보조작이라는 큰 짐까지 떠안은 채 당대표가 되겠다 선언하고 있었다. 왜?


간단하다. 지금 안철수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전직 당대표이고, 지난 대선에서 20%를 넘는 세 번 째로 많은 표를 얻은 유력대선후보였지만, 그러나 대선이 끝나고 안철수는 국회의원도 무엇도 아닌, 당직조차 없는 일개 야인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하다못해 이언주따위가 내뱉는 헛소리조차 기사거리가 되는 세상이다. 아무래도 국회의원이고 당직까지 있으니 이언주의 허틀 소리조차 현실정치에서 그만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과거 대단한 정치인이었어도 제보조작에 대한 사과문을 발표하기까지 안철수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가 관심을 가진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당장 눈에 보이고 귀에 들려야 거물이다. 당장 자신의 일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 같아야 거물로 여기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대단한 정치인이라도 정작 대중들 앞에 그 모습이 보이지 않고 그 소식이 들리지 않으면 결국 잊혀질 수밖에 없다. 대중의 인기란 흐르는 강물과 같아서 한 번 흘러가기 시작하면 돌이킬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과거의 인물이 되어서는 안된다. 벌써 지나간 이름으로 기억돼서는 안된다. 아직 현실에서 거물정치인으로써 대중들에 자신의 이름을 끊임없이 각인시켜야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당장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차기 대선을 염두에 두고 있으니 당장 내년 지방선거에 출마하기도 무리일 것이다. 그렇다고 자기가 박차고 나온 국회인데 지역구까지 바꿔가며 재보궐선거에 도전하는 것도 체면이 빠지는 일이다. 다음 총선은 무려 3년이나 남았고 총선이 끝나면 2년 뒤 대선이다. 그러니까 그 동안 어떻게 하면 대중들에 여전히 유력대선후보였던 거물정치인으로 자신의 모습과 이름을 알릴 수 있을 것인가.


문재인 대통령이 2012년 대선에서 패배하고 상당히 오랫동안 칩거하고서도 다시 유력대선후보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아직 원내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박근혜 정부가 참 멍청하게도 많이 도와줬는데, 굳이 대선패배의 책임을 지고 자숙중인 문재인의 이름을 자꾸 자신의 이름과 엮어 대중에게 노출시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문재인의 주위를 공격함으로써 오히려 문재인의 존재만 부각시켜주었고, 문재인과 친노에 대한 공격은 결국 박근혜의 대항마로써 문재인의 존재감만 강화시켜주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역시 원내에 있었다는 사실이 가장 컸다. 과연 국회의원의 신분이 아닌 채 김영오씨의 단식을 막겠다고 동반단식을 시작했다면 그렇게 크게 세상의 관심을 끌 수 있었겠는가 하는 것이다. 유력대선후보면서 현직 국회의원이면서 고노무현 전대통령의 유산을 물려받은 친노의 수장이었다. 무시하고 싶어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이름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홍준표도 안철수와 처지가 같다 할 수 있다. 대선에서는 선전했어도 정작 의원직도 당직도 없는 지금 상태로는 그저 조용히 묻히고 잊힐 뿐이다.


나름대로 필사적인 선택인 것이다. 아마 안철수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당장 내년이 지방선거다. 여당의 지지가 50%를 넘나드는 상황에 4%남짓한 지지율로는 어지간키 큰 이슈가 없는 이상은 선거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 눈에 보이듯 뻔하다. 문재인이 당대표에 도전하겠다 했을 때 주위에서 말린 이유도 그것이었다. 당대표가 되고 바로 다음해 총선을 치러야 하는데 그 결과에 따라 유력대선후보로서 치명적인 내상을 입을 수 있다. 분당 직전까지 상황만 보면 그 예상이 아주 틀리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잊혀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대중의 관심과 인기를 먹고 사는 정치인에게 있어 호환 마마보다 더 무서운 것이다. 이대로 아무일없이 잊혀질 수는 없다. 조용히 대중의 앞에서 사라질 수는 없다. 무엇때문인가? 결국 문재인 당시 후보를 공격하겠다고 대책없이 의원직을 박차고 나온 대가인 것이다. 누구에게 탓을 돌릴까?


대선후보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대통령이 되고자 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될 수 있다 믿고 있기 때문이다. 잊혀지지만 않는다면. 대중이 자신을 기억해주기만 한다면. 대선 이후 안철수가 보여준 행보들이 그것을 증명해준다. 안철수에게 대선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직 안철수 자신만. 재미있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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