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이전 모든 생산자는 생산수단을 직접 소유해야만 했다. 아니 그마저도 어느날 갑자기 외적인 요인에 의해 어떻게 될지 몰았다. 그러다가 사유재산이 인정되고 신용이라는 것이 생겨나게 되었다. 단지 증서 한 장만으로 실물과 똑같은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직접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않아도 신용관계에 의해 자신이 투자한 만큼의 대가를 보장받을 수 있었다. 바로 자본주의의 시작이다.


화폐 역시 최초의 화폐는 실물화폐였다. 1달란트의 금화는 1달란트의 무게를 가졌다. 은 1냥은 실제 은 1냥의 무게였다. 은 1냥에 해당하는 구리를 녹여 동전을 만들었다. 실제 구리의 가치가 동전의 가치였다. 화폐단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의 동전이 가지는 가치가 화폐의 단위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 고작 종이 한 장이 그 몇 배의 가치가 있는 실물가치를 대신한다. 5만원권 한 장의 실제 원가는 과연 얼마나 될까?


자본주의가 근대와 더불어 나타나게 된 이유였다. 고도로 정비된 사회구조와 체계가 필요했다. 엄격한 개인의 관계가 요구되었다. 약속이 약속으로서 인정된다. 단지 말 한 마디 글자 한 줄이 실제와 같이 인정되고 존중된다. 신용의 출현이다. 그것을 담보할 수 있는 고도화된 구조가 비로소 자본주의를 가능케 했다. 그런데 만일 누군가 그같은 신용을 흐트리려 한다면? 말과 글로서 사람들을 속이고 서로 믿지 못하게 만든다면?


당장 내가 주식을 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주식시장을 믿지 못한다. 거래주체들을 믿지 못한다. 특히 걸핏하면 내부정보를 이용해서 장난치는 큰손들을 믿지 못한다. 주식매매의 근거가 되어야 할 신용자료들마저 누군가에 의해 조작되거나 왜곡되기 일쑤다. 그마저 꿰뚫을 수 있는 확실한 정보력을 가지지 못하는 한 개미는 그냥 개미에 지나지 않는다. 주식으로는 돈을 벌 수 없다. 무엇때문이겠는가?


정작 신용의 범죄에 대해서는 관대하다. 실물에 대한 범죄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 돈을 훔치거나 빼앗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범죄인데 전근대사회의 상식을 적용한다. 그렇다면 그로 인해 돈을 잃고 심지어 목숨마저 끊은 수많은 희생자들은 무엇인가. 그들로 하여금 그같은 투자를 하도록 결심하게 만든 근거들이 의도적으로 왜곡되거나 조작되었다면 투자의 실패가 온전히 그들의 잘못이라고만 말할 수 있는가.


도대체 개인과 개인이 집단과 집단이 서로 믿지 못함으로써 인해 발생하는 사회비용이 또한 얼마이던가. 서로 믿지 못하고, 그래서 서로 의심하고 경계하고, 그래서 화합하지 못하고, 그래서 정상적으로 거래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그래서 자본주의 선진국에서는 오히려 이와 같은 신용에 대한 범죄를 더 무겁게 처벌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전근대사회에서 말하는 반역죄와 같은 것이다. 자본주의의 질서를 해치는 범죄다.


내부정보를 이용해서 주식거래를 해서 단기간에 막대한 차익을 얻었다. 불과 4억을 투자해서 몇주일만에 2억이라는 돈을 간단히 벌 수 있었다. 반대로 내부거래를 몰랐던 다른 투자자들은 그들을 위해 2억이라는 돈을 부당하게 상납하는 처지가 되었다. 비대칭적이다. 불공정한 경쟁읻. 같은 링 위에 서서는 안된다. 그런데도 용서한다. 간단한 처벌만으로 끝낸다. 유혹받지 않을 수 없다. 아예 이것이 죄라는 자각마저 없다.


어떻게 하면 이미지가 생명인 연예인이 저처럼 뻔뻔하게 허술한 방법으로 내부거래를 시도할 수 있었던 것인가. 아예 금감원이나 수사기관의 추적을 회피하려는 최소한의 노력조차 보이지 않고 있었다. 잘못이라는 생각 자체가 없었다. 돈이 될 수 있으면 무엇이든 한다. 천작한 한국 자본주의의 자화상이다. 신용도 없고 오로지 탐욕만이 있다. 서로의 탐욕이 서로를 물고뜯으며 겨우 지탱한다.


너무 허술해서 오히려 어이가 없다. 이것이 한국 자본주의의 현실인가. 아무 죄의식도 없이 대중을 상대로 신용의 범죄를 저지른다. 그러고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 기대한다. 실제 그래왔었다. 분식회계를 하고, 허위자료를 내고, 내부거래를 이용해서 부당한 이익을 취하고. 그래도 용서된다. 처벌받지 않는다. 차라리 주식은 하지 않는 것이 낫다. 무엇이 문제인가. 한심할 따름이다. 우습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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