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 누군가 그런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보수는 구호도 정책도 모두 단순명확하고 누구나 한 번에 알아들을 수 있도록 되어 있는 반면 진보는 그것이 어렵다. 도대체 왜일까? 탈원전과 관련한 논란을 보면서 새삼 그 이유를 생각해 보게 된다. 이미 지나온 길과 앞으로 가야 할 길의 차이다.


원래 이웃마을과 왕래하는 길이 있었다. 하지만 만족스럽지 않다. 어디는 벼랑이라 위험하다. 조심하면 된다. 길이 구불구불해서 한참을 돌아가야 한다. 일찍 출발해서 걸음을 재촉하면 된다. 호랑이가 나온다. 여러 사람이 함께 몰려다니면 호랑이도 습격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 말한다. 차라리 보다 안전하고 빠른 새로운 길을 찾으면 어떻겠는가? 그러니까 어디의 어떤 길을 찾으려는 것인가?


같은 것이다. 지금껏 해 온 일들이 있다. 여러 문제들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동안 쌓아온 경험과 지식이라는 것이 있다. 그러니까 그 안에서 더 낫게 만들면 된다. 그것이 보수다. 반대로 진보는 그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아직 아무도 해보지 않은 일을 시도해 보자는 것이다. 그러니까 무엇을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모두가 일단 공유하고 있는 경함과 지식 안에서 끄집어내는 이야기와 전혀 새롭게 시작하는 이야기는 이렇게 그 난이도부터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나마 찾는 대안이 이미 성공한 다른 나라의 사례들이다. 그럼에도 그것은 남의 이야기일 뿐 우리 자신은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 보수의 반론인 것이고.


원자력발전은 위험하다. 아주 위험하지는 않지만 그러나 만에 하나의 가능성이 현실이 될 경우 그 피해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이기 쉽다. 당장 몇 년 전 기준에 미달되는 부품을 사람들 사이의 문제로 사용하다가 적발된 적이 있었다. 사람이 사는 곳에 부정이나 비리가 아주 없을 수는 없다. 언젠가는 실수도 하고 어디선가는 잘못된 판단을 내리기도 한다.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천재지변이라는 것도 있다. 하지만 그 대안은 무엇인가? 바로 여기서 원전에 찬성하는 이들은 원천차단을 시도한다. 원전은 그동안의 경험도 있고 실적도 있다. 더 나아질 것이라는 확실한 기대와 증거도 있다. 그에 비해 원전에 반대한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그것들은 아직 원전에 비해 검증이 충분치 못한 것들이다. 기왕에 가 본 길이 있는데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길을 선택할 것인가. 탈원전 논쟁의 어려움이다. 그걸 언제 어떻게 어느 정도 분량으로 설명해야, 아니 그 전에 먼저 대중은 지치고 만다.


'썰전'을 보면서 유시민이 그렇게 몰리는 것은 처음 보았다. 처음부터 불리한 주제였다. 원자력발전이라는 그동안 검증된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박형준에 비해 유시민은 대체에너지라는 이제 겨우 첫걸음을 떼었을 뿐인 대안을 가지고 논리를 전개해야마나 했다. 더 깊이 들어가면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원래 '썰전'은 그런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당장 원전을 바로 아예 폐지하자는 식으로 몰아가는 것만으로도 유시민의 논리는 막힐 수밖에 없다. 상당히 비열한 방식의 토론이다. 하지만 가장 확실하게 이기는 전략이기도 하다.


지금부터 차근히 논의해나가야 할 문제인 것이다. 어떤 대안이 있고, 그 대안들에는 어떤 문제들이 있고, 그것을 결국 어떻게 개선해나가면 좋은가. 원자력발전을 계속 유지하려면 또 우리 사회는 무엇을 각오하고 감수해야만 하는 것인가. 합의다. 그러니까 앞으로 우리 사회는 원자력 발전을 지금 수준으로 유지하겠다. 아니면 더 많은 비용을 들이더라도 더 안전한 다른 에너지를 찾겠다. 


혀가 매끄러운 사람들을 싫어한다. 그들의 주장에는 분노가 없다. 분노가 없다는 것은 슬픔도 없다는 뜻이다. 기계적으로 단지 자신의 주장과 논리를 도구로 수단으로만 사용한다. 차라리 전원책이 더 나았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제 '썰전'에 대한 인상이다. 인간적으로 그다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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