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테면 축구의 경우만 하더라도 경기 내내 선수들 사이에 끊임없이 반칙이 저질러진다. 농구경기에서도 심판의 눈을 피해 저지르는 지능적인 반칙은 경기의 일부이며 선수의 실력으로 여겨진다. 그렇다고 반칙을 당했다고 원망부터 한다면 수도없이 팀과 선수를 바꾸는 프로무대에서 견뎌낼 수 없다. 어제 멱살잡고 싸우던 상대와 오늘 같은 팀에서 한솥밥을 먹어야 한다.


삼국지에서도 그래서 손책과 조조는 각각 자신을 죽이려 했던 태사자와 가후를 용서하고 중용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유요의 신하라면 마땅히 유요를 멸망시키려는 손책 자신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죽여야 한다. 장수의 군사된 자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조조 자신을 도모하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이제 항복했고 적대관계가 사라졌으니 지금부터는 자신을 위해 그 실력을 충분히 발휘하면 된다.


선거란 원래 전쟁의 대신이었다. 열 개의 부족이 있다. 모여서 한 가지 사안에 대해 회의를 한다. 여섯이 하나를 선택했고 넷이 다른 하나를 선택했다. 만일 다수의 선택에 대해 소수가 따르지 않고 반발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래서 실제 소수가 결과를 바꿔보겠다고 실력행사에 나선다면 여섯을 이길 수 있을 것인가. 괜한 모험을 하기보다 다수가 대세인 것을 인정하면서 다음을 기약한다. 


일단 어느 하나가 선택되면 나머지는 가치를 잃게 된다. 한 사람이 선출되고 나면 나머지 후보자는 의미를 잃게 된다. 그나마 문재인이 지금 정도 영향력을 가지는 것은 그가 제 1야당의 실세이고 당선이 유력시되는 대선후보이기 때문이다. 선거가 끝나고 한동안 문재인은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 칩거해야 했고 이후로도 정치적으로 별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었다. 그에 비하면 선거에서 승리한 대통령은 어떠한가.


그래서 이기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는 것이다. 온갖 상대의 약점을 파헤치고 약한곳을 후벼 흔들려 한다. 어느 정도의 마타도어는 선거의 기술이라 할 수 있다. 정한 룰을 벗어난 부정한 수단이 아닌 룰 안에서 이루어지는 공격은 모두 정당한 것으로 간주한다. 조금 더 독하게. 조금 더 비열하게. 조금 더 악랄하게. 그러나 결국 승부가 끝나고 나면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 승복해야 한다.


2008년의 대선에서 힐러리와 오바마 역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서로를 공격하여 그 지지를 깎으려 했었다. 샌더스와 힐러리의 선거전도 무척 치열했었다. 그래서 경선이 끝나고 그 일로 앙심을 품고 보복하려는 이들이 있었는가. 심지어 트럼프마저 극한의 언어를 사용하며 공방을 주고받았던 힐러리에게 별다른 감정이 남아있지 않은 듯하다. 힐러리 역시 마찬가지다. 그것이 바로 선거라는 것이다.


초한지에서도 항우가 패망하자 유비는 항우의 신하들을 어지간하면 거의 자신의 신하로 받아들였다. 항우의 최측근이던 계포마저 이때 유방의 신하가 되었다. 싸우는 동안에는 적이지만 일단 싸움이 끝내고 승패가 정해졌다면 승복해오는 상대를 받아들이는 것도 승자의 아량이다. 승자에게 기꺼이 승복할 수 있는 것도 패자의 도량이다. 그러려고 싸우는 것이다. 그래서 초한의 쟁패는 중국의 내전이었다. 한 쪽이 죽을 때까지 싸우는 전쟁이 아니었다.


이재명이 조금 과하게 문재인을 공격한다. 그래서 문재인의 지지자들이 단단히 화가 났다. 그러나 그조차 결국 선거의 일부다. 일부러 상대를 도발하여 화나게 하고 그 빈틈을 노리는 것도 역시 싸움의 기술 가운데 하나다. 지려고 경선에 나가는 것이 아니다. 이기려고 경선에 나가는 것이다. 이기는 것은 단 한 사람 뿐이다. 이기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그리고 승부가 나면 그 결과를 철저히 인정하고 따른다.


평화로운 전쟁이란 없다. 그저 바르기만 한 싸움이란 것도 없다. 선거란 원래 비열한 것이다. 비겁하고 야비한 것이다. 더 독하고 더 교활하고 더 악랄한 후보가 이기는 것이 당연할 지 모르는 투쟁의 전장이다. 그래서 크게 저촉되는 것도 없는데 수단이 나쁘다고 무어라 하겠는가. 하지만 그것을 공격하는 것도 한 편으로 기술이니 뭐라 하지는 못하겠다. 결과만 잘 받아들이면 그 뿐. 뭔 말이냐? 그냥 그게 정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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