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삼국지만이 아니다. 중국은 물론 일본, 그리고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이른바 난세라 불리우는 시대를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했다. 첫째는 너무 가까워도 안되고, 둘째 너무 멀어서도 안되며, 셋째 미친 척 해서도 안되고, 넷째 결국 남는 것은 명분이라는 것이다. 한 마디로 너무 가까우면 초반부터 집중공격을 받을 테고, 너무 멀면 다가가느라 지칠 테고, 미치면 주위로부터 외면당하며, 결국 정통성을 확인하는 것은 명분이라는 것이다.


당연히 처음부터 중심에서 자리잡고 시작하면야 인적으로나 물적으로나 더구나 명분에 있어서도 매우 유리한 조건에서 출발할 수 있다. 동탁이 그랬다. 처음 낙양으로 들어갔을 때 동탁이 거느린 사병이라고 해봐야 고작 3천 정도가 전부였다. 하지만 가장 먼저 낙양에 입성해서 황제까지 확보함으로써 낙양에 주둔하고 있던 한왕조의 중앙군을 그대로 흡수할 수 있었다. 원래는 집금오인 정원이 대장군 하진의 명을 받아 장악하고 있던 중앙군이 여포의 배신으로 인해 동탁에게 넘어갔고 이후 호로관에서 17로 제후군과 대등하게 싸우는 밑천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너무 초반에 치고 나간 탓에 바로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었으니, 무엇보다 아직 한왕실의 권위가 완전히 추락하지 않았고 각지의 제후들 역시 완전히 독립하기 전이었다는 것이 원인이 되었다. 당장 동탁을 몰아내면 누구라도 황제를 옆에 끼고 동탁이 그랬던 것처럼 천하를 호령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너도나도 동탁을 적대하게끔 만든 것이었다. 결국 17로 제후군이 와해되고 다수의 제후들 역시 동탁의 우위를 인정하게 되기는 했지만 그 대가는 낙양을 버리고 장안으로 천도하는 스스로 가진 명분을 크게 훼손하는 것이었다. 스스로 명분을 잃었으니 그 빈틈을 노리고 동탁을 제거하려 시도하는 이가 나타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런 수순이었던 것이다. 정상은 비정상을 배제함으로써 바로선다.


동탁이 너무 가까워서 문제였다면 원소는 너무 멀어서 문제였다. 차라리 처음 원소가 계획한대로 유우를 황제로 옹립했다면 하북에도 장안과 별개의 또다른 황제가 있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허도의 조조를 통하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황제의 이름으로 천하를 호령하며 주도권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황제는 조조의 수중에 있었고 명분 역시 최소한 겉으로는 황제를 떠받들고 있는 조조에게 있었다. 세력에서 압도하고 있었음에도 관도대전에서 원소가 가지고 있던 거의 유일하다시피한 약점이었다. 물론 역사에 만일은 없다. 형주의 유표나 양주의 손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나마 손권의 휘하에서 한을 대신하는 새로운 왕조를 꿈꾼 이는 노숙 정도가 유일했을 정도로 그들은 이미 천하를 둔 쟁패에서 훨씬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러면 조조는 어땠을까. 첫째 조조가 황제를 맞아들였을 때는 이미 천하에 제후들의 할거기 시작된 이후였다. 한왕실의 권위가 떨어지며 제후들도 자기일 챙기기에 더 바빴고, 어느 정도 제후들의 세력도 정리되면서 위협이 될만한 세력들과도 거리를 두게 되었다. 동탁과 달리 굳이 자신의 손에 들어온 명분을 해치는 행위를 직접적으로 하지 않은 탓도 컸다. 최소한 황제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이며 황제의 이름으로 제후들을 상대한 것은 조조를 인정하지 않는 세력들조차 그를 함부로 여기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되었다. 조조를 적대하는 것은 바로 한의 황제를 적대하는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조조가 저지른 사소한 명분상의 잘못들마저 놓치지 않고 그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삼으려는 이도 존재했다. 바로 유비였다. 바로 이 유비로 인해 조조는 생전에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황제즉위마저 아들인 조비대에서야 이루어지고 만다. 아무것도 없는 유비가 조조의 천하통일을 좌절시킨 것이었다.


바로 미쳐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로 돌아가는 것이다. 동탁이 끝내 부하인 여포에게 살해당한 것은 스스로 천하의 중심을 차지하고서 명분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전제왕조에서 충이라는 명분을 지키지 못하고, 위정자로서 백성을 위한다는 명분을 지키지 못했으며, 심지어 주변부에 속하는 인물로써 주류지배층과도 크게 반목하고 있었다. 동탁의 편이라고 해봐야 자신의 근거지인 서량출신의 인사들이 전부였는데 아무리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있어도 그 힘만으로 누르고 지배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무엇보다 동탁의 무력은 이들 서량출신들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틈을 보이면 그 틈을 비집고 자신을 죽이려 하는 사람들을 스스로 계속해서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던 셈이다.


조조가 끝내 천하통일에 실패하고 만 것도 결국 명분을 잃어서였다. 서주에서의 학살은 연주에서 자신을 지지하던 장막과 진궁 등의 이반을 불러왔다. 고작 한 줌도 안되는 유비의 세력이 조조와 겨룰 만큼 커질 수 있었던 것도 조조에 반발하는 지식인과 백성들이 조조와 적대하는 유비에게로 모여든 것이 가장 컸었다. 그저 조조와 반대로 행동하는 것만으로도 조조가 한 가지 명분을 잃을 때마다 유비에게는 한 가지씩 명분이 쌓였고 그 결과가 적벽과 한중에서의 패배이고 촉한의 성립이었다. 물론 유비 역시 관우가 죽고 황제의 폐위와 조비의 즉위에도 불구하고 관우의 복수를 하겠다며 군사를 일으키며 스스로 명분을 잃었던 탓에 백제성에서 회한어린 삶을 마쳐야만 했었다. 


사실 역사상 난세를 통일한 당사자들이 정작 치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바로 몰락하고 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난세를 통일하는 과정에서 무리수를 두다 보니 명분을 잃기 쉽다. 그리고 그렇게 잃은 명분은 약점이 되어 누군가 비집고 들어올 수 있는 틈이 되어 버린다. 끝까지 명분을 잃지 않으면서 자기 자리를 지키고 천하를 아우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것을 이뤄낸 두 사람이 바로 송을 건국한 조광윤이고 명을 건국한 주원장이다. 난세를 통일했으면서도 바로 안정적인 치세로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명분상에 약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2012년 대선이 끝나고 문재인이 바로 대선패배의 책임을 지고 뒤로 물러나 칩거하다시피 침묵하며 지냈던 것은 그런 점에서 매우 훌륭한 선택이었다. 정작 야권의 유력대선주자로서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하며 야권의 중심으로 떠오른 안철수가 여러 실책들을 보이며 상처입고 있을 때 문재인은 떠밀리듯 주변으로 밀려나 세상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었다. 그리고 딱 적당한 2015년 안철수가 물러나고 새정치민주연합의 당대표로 출마하면서 적절한 때 다시 중원으로 돌아오게 된다. 물론 이때도 문재인을 정면으로 조준한 수많은 정치적 공세들이 이어지고 있었지만 그것을 모두 버텨낸 것이 지금의 문재인을 만드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새정연이라는 제 1야당의 정통 위에 당의 혁신과 인재의 수혈이라는 명분을 더함으로써 민주당이라는 중원은 확실히 문재인의 영역이 되었다. 더구나 박근혜로 인해 야권마저 지리멸렬함으로써 사실상 관도대전에서 승리한 조조와 같은 위치가 되었다.


다만 불안요인이라면 그 과정에서 문재인이 저지른 실책이나 명분의 문제를 비집고 그를 공격할 소수세력일 텐데, 그런 점에서 또 문재인에게 다행인 것은 그런 소수세력들 치고 당을 끼고 문재인을 공격한 경우가 드물다는 것이다. 문재인에게 민주당이 명분이라면 그들 역시 민주당을 명분삼아 문재인을 공격했어야 하는데 - 그런 점에서 안희정은 무척 영리하다. 민주당이라는 당과 문재인이라는 정치인 사이의 괴리를 비집고 치명적이지는 않지만 상당히 효율적으로 공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경쟁자들은 오히려 당과 문재인을 싸잡아 공격함으로써, 아니 나아가 당원과 지지자들마저 안중에 두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임으로써 스스로 지지자들로부터 유리시키는 어리석은 행보를 보이고 있었다. 유비를 본받으라는 말이다. 노무현이 2002년 경선에서 후보가 되고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차근차근 명분을 잃지 않으면서 중심에 다가가는 정석적인 행보 때문이었다. 경선을 하자면서 당을 배제하고, 당원을 배제하고, 지지자를 배제한다. 지지자를 폭도 테러리스트로 폄하한다. 문재인의 명분은 더 강해진다.


아무튼 확실히 지금 시점에서 야권의 대선주자 가운데 가장 전략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은 그런 점에서 안희정 한 사람 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너무 멀지도 않게, 그렇다고 너무 가깝지도 않게. 문재인의 아류가 되어서도 안되지만 너무 척을 지는 것도 곤란하다. 민주당이라는 명분을 지키면서도 자기만의 자리를 확고히 지킨다. 문재인 다음은 나다. 문재인이 아니면 나다. 내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성급한 마음에 문재인 지지자들과 척을 지며 미친 짓을 하는 다른 경쟁자들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어차피 문재인 지지자들도 경선에서 승리하면 자기에게 표를 주어야 할 유권자들이다.


덧붙여 반기문을 이야기하라면 딱 사세삼공의 명문을 배경삼아 황제노릇하던 원술을 떠올리게 한다. 원소처럼 스스로의 힘으로 이룬 것이 아무것도 없다. 타고난 혈통 탓에 모두가 떠받들어 조상의 유산으로 혼자서 황제인 양 떠들 뿐이다. 아직 보여준 것이 아무것도 없다. 아직 실제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냥 이미지 뿐이다. 그나마도 겉껍데기다. 난세는 그런 어설픔 껍질따위 한순간에 갈기갈기 찢어 버린다. 결국 알몸의 자신만으로 승부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럴 준비가 되어있을까. 그나마 원술은 원래 자기 세력부터 상당했었다. 아직 그정도도 되지 않는다.


지금 당장만 본다. 바로 앞에 이익만을 본다. 내가 잃은 손해만을 생각한다. 어떻게든 바로 만회하려 무리수를 둔다. 정작 지켜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불리할 때 사람의 바닥이 드러난다. 그릇의 한계를 내보이게 된다. 이제 남은 것은 문재인이 얼마나 실수할 것인가. 치명적인 잘못을 저지를 것인가. 그나마 받아먹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삼국지도 후반에 가면 참 재미없어진다. 제갈량이라도 나와야 하려는지. 어쨌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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