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의는 물론 정사를 읽더라도 주유의 뒤를 이어 손오의 도독이 된 노숙은 바보같을 정도로 유비에 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조조가 대군을 이끌고 남하하여 항복을 권유하는 사신을 보냈을 때도 가장 먼저 강하의 유비를 찾아갔고, 근거 없이 떠돌던 유비가 형주를 빌려달라 할 때도 손권을 설득해서 그러도록 했었으며, 이후 유비가 촉을 차지하고도 형주를 돌려주지 않았을 때도 답답할 정도로 인내하며 말로써 설득하려 애쓰고 있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원래 노숙이 유비라는 인물을 존경하고 흠모하여 일부러 양보하고 배려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라 말하기도 하는데, 그러나 과연 그랬을까?


정사를 보더라도 노숙은 자신의 주군 손권을 새로운 중국의 황제로 만들겠다는 야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도 손권에게 한왕조의 부흥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장강유역을 차지하고 스스로 황제에 오른 뒤 조조와 맞서야 한다고 조언했고, 적벽에서 승리한 뒤에도 손권이 직접 말에서 내려 노숙을 맞는 최상의 예우로써 그를 대했을 때도 스스로 천자의 자리에 오른 뒤에 수레를 보내 예우해야 비로소 자신의 공적에 보답했다 할 수 있다 대답한 바 있었다. 다시 말해 노숙의 목표는 일개 군벌이 아닌 장차 중국을 둘로 나눈 황조의 황제로 손권을 끌어올리겠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그 과정에서 손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하북을 평정한 조조가 대군을 이끌고 남하하며 손권에게 항복을 권하는 사신을 보냈을 때 노숙이 앞장서서 유비와의 동맹을 추진했던 것도 바로 이것과 관련이 있었다. 명분상 아직까지 중국의 천하는 한의 천하였다. 한의 황제만이 유일한 황제였고 조조는 그 황제의 명령을 받드는 승상의 신분이었다. 조조가 항복을 요구했던 것도 자신이 아닌 황제에게 신하로써 순종하라 명령을 전하는 것이었다. 만일 손권이 조조의 항복권고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손권의 세력은 황제의 명령을 거역하는 반역집단이 되어 버린다. 조조의 항복권고를 받고 손오의 진영이 크게 분열했던 진짜 이유였다. 이대로 명분을 거스르면서까지 조조에 대항하며 독립을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명분을 쫓아 조조가 아닌 황제에게 항복하여 자신들의 지위를 보장받을 것인가. 결국 문제는 명분이었다. 명분상 신하인 손권이 황제의 명령을 받드는 한왕실의 승상 조조와 맞서도 괜찮은 것인가.


그래서 유비가 필요했던 것이었다. 일단 유비는 한실의 종친이었다. 촌수가 조금 멀기는 하지만 직접 황제로부터 황숙이라 불리기까지 했던 천하의 명사 가운데 하나였다. 더구나 유비에게는 오래전 동승과 함께 황제로부터 받았던 역적 조조를 토벌하라는 밀조가 있었다. 황실의 종친인 유비가 황제의 밀조를 받아 역적 조조를 토벌하려 한다. 황제라고 하는 결코 거역해서는 안되는 명분을 앞세워 압박해오는 조조에게 오히려 역공까지 가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천하에서 단 하나뿐인 수단이 바로 유비 자신이었던 것이었다. 그러므로 손오가 조조에 대항하는 것은 황제를 거스르는 것이 아니라 역적 조조에게 억류되어 있는 황제를 구하기 위한 충심의 발현이다. 장차 노숙의 구상대로 손권이 장강 일대를 장악하고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올라 조조와 자웅을 겨루려 할 때 자신들의 행도을 정당화시킬 명분 역시 한실의 종친이며 충신인 유비라고 하는 개인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것은 노숙 혼자만의 생각일 뿐이었다. 손오가 멸망하기까지 손오의 수많은 인재들 가운데 정작 장강 건너 중원에까지 야심을 품었던 이는 거의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원래 손오라는 세력 자체가 한왕조를 등지고 남하한 토착세력과 손가와의 결합으로 생겨난 것이었다. 토착세력의 입장에서는 그저 자신들의 기득권만 보장받을 수 있으면 되는 것이었다. 그저 더 많은 땅과 백성과 물자만이 그들이 바라는 것이었다. 손권 역시 다르지 않았다. 유비라는 명분 없이도 오로지 자신의 실력만으로 조조와 겨루고 자신들의 영토를 지켜내겠다. 손오가 오히려 촉보다 훨씬 많은 병력과 물자를 동원하고서도 번번히 위와의 전쟁에서 패퇴한 이유였다. 지키는 것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는 것이므로 필사적이지만, 정작 조위의 영토로 공격해 갔을 때는 별다른 명분이 없었다. 그저 남의 땅을 빼앗는 것일 뿐 반드시 그래야 하는 필연도 당위도 없었다. 동기가 부족하면 그만큼 의욕도 줄어든다.


노숙이 죽고 손권이 노숙이 유비와 유화적인 태도를 취한 것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한 이유였다. 유비가 없어도 되었다. 유비 없이도 형주와 강동을, 자신들의 영역을 지킬 수 있었다. 장강을 넘어 여러차례 군사적인 시도를 했음에도 번번히 좌절한 것은 자신의 실패이므로 철저히 묻어둔다. 그에 반해 유비라고 하는 명분을 철저히 계승했던 촉한은 제갈량을 중심으로 단결하여 오히려 더 위협적으로 조위와의 국경을 압박하고 있었다. 심지어 조정의 지원이 끊긴 상황에서도 강유는 독자적으로 군을 이끌고 여러차례 조위의 국경을 위협하고 있었다. 저들은 한을 배신한 역적이고 자신들이야 말로 진정으로 한을 계승하고 부흥시킬 충신들이다. 유비와 제갈량의 선정에 감복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그들이 싸울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한 것이 가장 컸다. 의미없지 않다. 당장 싸우다 죽더라도 가치있게 죽는 것이다. 때로 사람에게는 그런 바보같은 이유들도 필요한 것이다.


실제 기록에도 노숙은 매우 강단있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익양대치 당시 보여준 우유부단한 모습과는 배치되는 인상이었다. 당연했다. 그것이야 말로 노숙의 단호한 결단력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기 때문이다. 당장 유비가 필요하기에 양보한다. 손오와 주군 손권을 위해 유비와의 동맹이 필요하기에 불편해도 불쾌해도 과감히 인내한다. 그리고 노숙이 사망하고 인내심이 사라진 손권에 의해 손유동맹이 깨지면서 노숙의 원대한 꿈은 수포로 돌아간다. 결국 황제의 자리에 오르기는 했지만 중원은 감히 넘볼 수 없는 그저 변두리 군벌의 황제에 지나지 않았다. 꿈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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