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노동유연화지, 노동유연화의 핵심은 단순히 해고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 아니다. 고용도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고용은 배제한 채 해고가 쉽지 않은 현실만을 이야기하며 고용을 유연화해야 한다 주장한다. 그러니까 그렇게 연성으로 고용해서 쉽게 해고하고 나면 해고당한 노동자는 앞으로 무얼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기업 입장에서야 해고하면 끝이지만 노동자는 그동안에도 삶을 이어가야 한다.


항상 내가 지금 하는 일을 그만두면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를 고민한다. 만일 일을 그만두고 다시 취직이 안되면 어떻게 먹고살아야 하는 것일까? 그래서 수입의 거의 대부분을 노후를 대비한 자금으로 보험등에 묶어두고 있다. 급여도 쥐꼬리만한데 그 안에서 실제 내가 내 삶을 위해 쓸 수 있는 돈은 매우 적은 수준에 불과하다. 고용이 불안정하다는 것은 그만큼 지금의 일을 그만둔 만일의 상황을 항상 대비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소비인들 마음대로 할 수 있고 장래에 대한 계획인들 마음대로 세울 수 있겠는가. 그나마 나는 나이라도 많아서 몇 년만 버티면 된다는 견적이 이미 나와 있다. 앞으로 8년만 버티면 더이상 내일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더 젊은 세대들은?


비정규직 문제는 단순히 비정규직 노동자 자신들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이 사회 전반의 모든 문제와 바로 연결되어 있다. 연애도 못하고 결혼도 못하고 아이도 못낳는다. 아이를 낳더라도 안정적으로 보살필 수 없다. 부모가 불안해하면 아이들도 바로 영향을 받는다. 부모는 불안한 내일에 대한 걱정으로 전전긍긍하는데 아이들은 그저 굳은 의지와 내일에 대한 희망으로 오로지 자신의 미래만 준비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면 당신의 머리가 그래서 이미 망가진 것이라 여기면 된다. 인간은 물질세계에 살고 물적 환경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고용이 불안한 대신 다른 나라처럼 임금을 더 챙겨주던가. 당장 해고가 쉽더라도 재취업 역시 쉽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던가. 그런 점에서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은 매우 유용한 듯하다. 나이 먹고 연차 높아졌다고 더 높은 임금을 주기보다 그냥 같은 일을 하면 같은 임금을 받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이를 먹을수록 늘어나는 지출에 대해서는 사회비용으로 대신한다. 교육, 의료, 주거 기타등등등, 특히 육아와 관련해서 성인이 될 때까지 정부에서 모두 보조한다면 최소한 아이를 낳고 기를 걱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복지란 어쩌면 노동자의 임금을 최소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는 보장장치이기도 한 것이다. 그만큼 국가에서 사회에서 책임져주므로 노동자 개인이 더 많은 수입을 일부러 기대할 필요는 없다. 사회안전망이 확실하다면 노동자 역시 노동과 임금에 대한 기대를 낮출 수 있다. 내일에 대한 불안 역시 낮출 수 있다. 비정규직이 문제가 아니라 내일에 대한 희망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잊어서는 안된다. 인간은 희망으로 오늘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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