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국가들이 직접민주주의가 아닌 간접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이유는 대중의 편의 때문이다. 대부분의 대중들은 자신의 일상을 영위하느라 국가적 국제적 이슈에 정교하게 판단하고 대응하기에는 여유가 너무 부족하다. 각각의 이슈들에 얽힌 복잡한 사정이나 구체적인 내용들을 일일이 살펴서 적확하게 이해하고 판단해서 결정한 뒤 행동에 옮기기까지 고도로 훈련받은 전문적인 지식과 그를 위한 충분한 시간적 물적 여유가 필요하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적합한 사람을 골라 필요한 자리에 앉히고 그 역할들을 대신 시킨다.


투표란 그런 의미다. 과연 저 사람이 내가 필요로 하는 공적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사람인가. 굳이 내가 일일이 신경쓰지 않아도 바르게 옳게 판단해서 자신과 우리들에 피해가 오지 않도록, 아니 최대한 이익이 될 수 있도록 판단하고 결정해서 행동에 옮길 수 있는 사람인가. 그래서 일일이 별 것 아닌 일들에 대해서까지 여론에 묻고 여론을 핑계삼는 정치야 말로 가장 비겁한 것이다. 그런 것 신경쓰지 말고 자신의 능력과 소신에 맞게 바르게 옳게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라고 그 자리에 올린 것이다. 평가는 결국 다음 선거를 통해 결정될 것이다. 만일 대부분의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정치적 결정을 했다면 그에 대해서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도록 설득할 의무가 주어진다. 국민으로부터 공적 책임을 위임받은 전문가로서 대중에게 바른 정보를 제공하여 옳은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도 정치인의 역할이다.


지금까지는 주로 민주주의 국가에서의 국민의 권리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 영국국민들이 어리석다. 무지하고 어리석어서 잘못된 판단을 내렸다. 그것이 오만이라는 것이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럴만한 나름의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다. 그것을 전제한다. 어째서 과반에 이르는 영국인들이 EU체제에 불만을 가지고 EU탈퇴를 지지하는데 투표하게 되었는가.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그럼에도 EU탈퇴가 영국의 국익에 해가 된다면, 국가와 국민에게 손해가 된다면 그것을 적극적으로 말리고, 만에 하나 설득에 실패했다면 국민이 잘못된 판단을 내리지 않도록 자신이 그 책임까지 대신하는 것이 공인으로서 정치인이 져야 할 책임인 것이다. 노엘 갤러거의 말이 맞다. 그러라고 결코 적지 않은 세금을 급여로 지급하고 각종 예우와 사회적 권위까지 인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회피하고 단지 국민투표에 그 책임을 돌리려 했었다.


과연 브렉시트가 옳은가. EU탈퇴가 영국과 영국민들에 이익이 되는가. 그마저도 미리 생각해두지 않은 듯 벌써부터 말이 바뀌고 있다. 하기는 그런 정치인들에 낚여 지지를 보내고 심지어 투표를 통해 당선까지 시킨 것이 바로 유권자들인 것이다. 정치인의 책임은 한 편으로 유권자의 책임이다. 보다 고도의 전문적인 판단이 필요한 영역까지 국민투표에 맡긴 무책임은 분명 정치인의 잘못이지만, 그런 정치인을 선택하여 그같은 책임있는 자리에 앉힌 것은 어디까지나 유권자의 잘못이다. 정치인들은 비겁했고 국민들은 어리석었다. 그들은 주권자로서 잘못된 판단과 선택을 했다.


그래서 말끝마다 국민을 앞세우는 정치인을 신뢰하지 않는다. 여론을 들먹이는 정치인 역시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 내 책임 아래 판단하고 결정하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다시 국민들에 묻는다. 그를 위해 충분히 정보를 제공하고 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설득하며 이끈다. 그래서 리더다. 리더십이 사라졌다. 리더십이 사라진 정치는 그저 낚시에 불과하다. 정치인이 미끼를 던지면 대중이 그 미끼를 문다. 대중이 미끼를 물면 그를 기반으로 정치적인 영향력과 지위를 상승시킨다. 저질정치다. 책임이 없는 정치라는 것은.


과연 자신은 책임정치인으로서 바른 판단을 내렸는가. 국민들에게 부끄럽지도 미안하지도 않은 옳은 결정을 내렸는가. 그래서 정치인과 대중의 소통은 중요하다. 민주주의의 발달은 미디어와 교통의 발달에 비례한다. 포퓰리즘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전제다. 영국은 그것을 잊었다. 그것을 잊은 유권자와 정치인들이 정치를 왜곡시켰다. 남의 일이 아니다. 오히려 국민의 여론과 반대로 가는 것을 정치인의 책임인 양 여기는 이들마저 있다. 그러므로 자신이 희생하여 국민들을 바르게 이끈다. 민주주의도 한계에 이르러 가는 것 같다. 하필 영국에서. 난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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