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낚시란 잡을 물고기를 특정하여 미끼를 던지는 것이 아니다. 일단 미끼를 던지고 물고기가 그것을 물면 그제서야 낚아 올리는 것이다. 물고기를 잡고 나면 당연히 미끼야 상관할 바 없다. 당연히 미끼는 배고픈 놈이 먼저 문다. 아니면 욕심이 많거나.


정치란 그와 같다. 대중의 지지가 필요한 정치인들은 일단 아무것이나 대중이 좋아할만한 미끼부터 던지고 본다. 대중이 흥미를 가지고 지지를 보낼만한 이슈를 꺼내서 던지고 반응을 기다린다. 때로 재촉하기도 하지만 역효과가 날 수 있으므로 유능한 정치인은 신중하고 인내심이 강하다. 그렇게 대중이 일단 미끼를 물고 자신이 의도한대로 움직여주면 그 다음에는 어차피 미끼는 그냥 미끼에 지나지 않는다.


어차피 처음부터 정치인과 대중은 추구하는 목표 자체가 다르다. 정치인은 항상 저 위를 본다. 더 높은 지위와 더 강한 권력을 가지기 위해 그들은 정치라는 것을 한다. 대중이 바라는 것은 소박하다. 당장 자신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아주 사소한 것들이다. 그래서 대중은 쉽게 정치를 불신하게 된다. 자신이 바라는 것과 정치인이 추구하는 것이 실제 다르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정치란 그런 것이 아니다.


그래서 물고기는 미끼를 문다. 대중은 정치인이 던진 미끼를 문다. 소박하다. 순진하다. 그래서 순수하게 믿어 버린다. 이것이 진실이라고. 이것이야 말로 진심일 것이라고. 성급하게 달려들어 미끼를 물고는 바로 후회하고 만다. 배신당한다. 그렇다고 정치인만의 책임인가. 하지만 한 편으로 그렇다면 반대편에 있는 또다른 정치인들은 어째서 그와 같은 먹음직한 미끼를 던지지 않았던 것일까.


낚일 수밖에 없다. 항상 물고기들은 굶주려 있다. 대중 역시 굶주려 있다. 불만족한 상태에 있다. 그래서 미끼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놓치지 않으려. 더이상 굶주리지 않으려. 불만족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그런데 미끼는 항상 복수로 던져진다. 그래야 한다. 그 가운데 훨씬 자신에게 이익이 될 것 같은 미끼를 선택하여 문다. 그 정도 이성은 남아 있다. 그렇다면 어째서 반대편에서는 그만큼 매력적인 미끼를 준비하지 못한 것일까.


브렉시트를 단순히 선동한 정치인이나 그에 부화뇌동한 대중의 일방적인 잘못으로 몰아가기 어려운 이유다. 그러면 EU는 그동안 영국의 대중들을 위해 무엇을 해주었는가. 브렉시트에 반대하는 이들은 그런 영국의 다수 대중들을 위해 어떤 납득할 수 있는 대답을 들려주었는가. 그래서 그나마 팽팽한 균형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었다. 단지 브렉시트에 찬성하는 쪽이 더 우세했을 뿐이다.


정치의 근본이다. 정치와 대중의 관계의 기본이다. 정치인은 낚시하는 사람이다. 대중은 그에 낚이는 물고기다. 한 편으로 낚시꾼들은 낚시를 통해 물고기들에게 본능을 충족시킬 먹이를 제공한다. 정치인 역시 대중의 욕망에 봉사하게 된다. 낚이고 난 다음에도 여전히 낚시꾼이 물고기에게 먹이를 주기 위해서는 그만한 가치가 있어야 한다. 자칫 물고기가 죽거나 도망치면 자신에게 손해가 된다.


그래서 항상 정치인과 대중은 긴장관계에 있어야 한다. 자칫 미끼만 떼이고 허탕칠 수 있다. 기껏 잡아놓고도 물고기를 놓칠 수 있다. 물고기가 죽어서는 안된다. 살아있어서 더 가치있는 물고기여야 한다. 쉽게 지지를 내주어서는 안된다. 너무 쉽게 보았다. 자신들의 선동에 넘어간 영국의 유권자들을 오히려 바보취급하고 있다. 정작 영국인을 바보취급하는 것은 영국독립파들 자신들이 아니었을까.


정치인과 대중의 관계설정이 실패한 대표적 사례를 보고 있다. 그리 낯설지는 않다. 어디선가는 항상 보이는 모습이기도 하다. 굳이 자기 말에 책임을 지지 않아도 정작 유권자 자신이 책임을 물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마음대로 떠들고 마음대로 선동하며 마음대로 낚시한 뒤 마음대로 미끼까지 거둬간다. 나는 이미 내가 목적한 모든 것을 이루었으므로 더이상 대중의 반발따위 아랑곳하지 않는다.


어찌보면 소박하고. 그다지 야심이랄 것도 없다. 더 높은 곳을 바라본다면 여기서 이렇게 속내를 드러내서는 안된다. 영국의 대중이 우습게 보였거나, 아니면 자신들이 그것으로 충분하거나. 그래도 상관없다. 여기서는 그래도 된다.


우스운 것이다. 그래도 역시 가장 책임을 묻게 되는 것은 어째서 반대편에서는 그만한 근거와 논리들을 대중에 들려주지 못했는가 하는 것이다. 투표하고 후회한다. 결과를 보며 반성한다. 처음부터 그랬다면. 역시 정치의 책임이다. 반대편 역시 충분히 자기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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