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에서 인권이란 가장 우선해서 지켜야 하는 보편적 가치의 하나다. 인간이기에 가지는 권리다. 인간으로 태어난 순간 주어지는 권리다. 그것은 누구도 자의로 침범해서는 안되며 외적인 이유로 침해되어서도 안된다. 심지어 자신조차 자신의 인권을 마음대로 포기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그런 인권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생명이라고 하는 당위다. 누구도 함부로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아서는 안되며, 쉽게 생명을 포기해서도 안된다. 그러니까 다른 정치외교적 이유로 인해 자신의 생존을 위협당하는 상황을 방치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몇 차례 핵실험까지 감행한 것은 오로지 김정은과 그를 둘러싼 지배층의 결정이었다.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 하긴 민주주의 국가라면 동기야 어쨌든 핵무기개발로 인해 국제사회의 제재가 시작되어 살기가 어려워지면 탄핵이든 선거를 통한 심판이든 벌써 오래전에 집권자를 끌어내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경제적으로 낙후된 북한인데 오랜 경제제재로 더 어려운 처지로 내몰린 상황에서도 김정은과 그를 둘러싼 지배층은 여전히 절대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그런데 소수 지배층의 핵개발 의지를 좌절시키겠다고 북한주민들의 삶까지 궁지로 내모는 것은 정당한 판단인가.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민간인까지 수단으로 삼아 폭격하고 학살하는 것이 과연 현대사회에서 용인되는가 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처음이 아니었다. 그동안 북한에 대해 강경일변도였던 - 강경이라기보다는 그냥 포기나 방치에 가까웠지만 -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에서도 북한과 대화와 교류가 단절된 상황에서도 인도적인 지원은 계속 이뤄져 오고 있었다. 그냥 북한 정부에 쌀이며 의약품 및 생필품을 가져다 던져주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국제기구의 감시 아래 그것들이 주민들에게 직접 전달될 수 있도록 관리, 감독된다. 그러니까 아무리 북한 지배층의 헛된 야망에 대해 국제사회가 단죄하는 와중이라도 그로 인해 북한 주민들의 고유한 인권, 그 가운데서도 생명권까지 침해당하는 상황이 벌어져서는 안된다. 어떤 경우에도 인간이, 생명이 살아갈 수 있도록 국제사회가 지키고 도와줘야 한다.


하긴 한국사회에서 인권이라는 개념은 민주주의와 마찬가지로 아주 최근에서야 대중에게 허락된 것이었다. 그나마 항상 제한적이었고 단서가 붙어 있었다. 인권은 보호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만 주어져야 한다. 지켜질 자격이 없는 사람의 인권은 얼마든지 무시되고 침해되어도 상관없다. 당장 인터넷이 그렇다. 오로지 자신들의 정의를 위해 아무렇지 않게 타인의 인권을 유린하고 그것을 심지어 자랑으로 여긴다. 인간이기에 당연히 지켜져야 하는 천부의 권리가 아닌 자신들이 자의로 판단해서 자격을 부여하는 시혜에 가까운 것이다. 그러므로 북한 주민들은 과연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아니 생명으로서 마땅히 지켜져야 할 생존권을 보장받을 자격이 있는 존재인가. 자신들 개인이 아닌 자신들이 속한 국가의 이름이 그 자격마저 결정한다. 북한주민은 살 자격이 없다. 그들은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을 자격이 없다. 이런 걸 흔히 맹목적 증오라 부른다.


국제사회가 그렇게 허술하지 않다. 지원한다고 그냥 달랑 돈과 물건을 주고 북한정부더러 알아서 하라고 맡기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지난 보수정권에서도 북한에 대한 인도적인 지원은 국제사회의 이름으로 계속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었다. 아무리 북한 정부가 밉더라도 북한주민들까지 그 희생양이 되어서는 안된다. 당연히 합의된 현대사회의 보편적 정의가 같은 민족이라서가 아닌 인간에 대한 연민으로써 북한주민들에 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겨우 문재인 정부에서 검토중이라는 이유로 다시 색깔론이라니. 역시나 대한민국에 인권은 먼 이야기라고나 할까?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는 경제제재대로 따로다. 그건 전혀 별개다. 북한의 지배층을 타겟으로 그들의 해외자산을 동결하고 더이상 그들이 경제적으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차단한다. 결국 고통받는 것은 북한주민도 마찬가지지만 부와 권력의 일방적인 편중이 북한의 지배층을 더 고통스럽게 만든다. 항암제가 결국 정상세포도 죽이지만 더 탐욕스러운 암세포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하는 것과 같다. 그렇다고 정상세포까지 암세포와 함께 죽도록 방치해야만 하는가. 굳이 통일을 않더라도 바로 국경을 마주한 이웃나라 국민들이다. 당연한 말을 참 어렵게 받아들인다. 어려운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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