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테면 아버지 차를 몰고 나왔다가 사고가 날 위기에 몰린 중딩 아들의 상황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당장 차를 세우지 않으면 분명 사고가 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급하게 차를 세우거나 방향을 틀면 차에 흠집이 생기거나 고장날지도 모른다. 당연히 차를 세우는 쪽이 차는 물론 자신과 사고가 날지 모르는 상대 모두를 구하는 유일한 길이다. 그러나 자칫 그렇게 했다가 차에 이상이 생기면 자기가 아버지에게 혼나게 될 것이다. 어떻게 하겠는가?


자기 권력이 아니다. 자기가 실력으로 쟁취한 것이 아닌 단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후광으로 주어졌을 뿐인 권력이다. 아직도 김정은은 할아버지 김일성과 아버지 김정일의 그늘 아래 겨우 권력을 얻고 그것을 유지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미 그에게는 북한 최고의 권력이 주어져 있다. 인정받아야 한다. 증명해야 한다. 자기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진정한 후계자라는 사실을.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권력기반인 군부의 지지를 확보해야만 한다. 더 강하게, 더 잔혹하게, 더 강인한 북한의 지도자로서의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


김정일은 달랐다. 당연히 김일성은 김정일보다도 더 자유로웠었다. 자기 권력이었으니까.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마음대로 해도 누구 하나 뭐라 할 사람이 없었다. 아버지 김일성으로부터 무려 수십년에 걸친 체계적인 계획과 과정을 통해 후계자 자리를 물려받았던 김정일 역시 다른 누구를 의식할 필요 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마음대로 북한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군부의 반발에도 대한민국과 정상회담도 하고 경제협력도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둘 다 결국 북한의 최고 권좌란 자기의 실력으로 차지한 자기의 차였으니까. 정당하게 물려받은 자기 소유의 차였을 테니까. 그에 비하면 김정은은 어떤가. 말이 북한 최고권력자이지 아직 그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제한되어 있다.


문재인 정부의 대화노력이 쉽게 현실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낮다 여기는 이유다. 김대중, 노무현 때와는 다르다. 그때는 됐고 지금은 안되는 이유는 바로 김정일이 아닌 김정은이 그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애송이다. 자기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비해 한참 미숙한 종자다. 위험하고 그래서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을 알면서도 그럴 수 없는 어수룩함과 나약함이 있다. 그것이 더 문제다. 차라리 철권을 휘두르는 독재자가 어설픈 민주주의 지도자보다 나을 수 있는 이유다. 최소한 예상이 가능하다. 유불리를 판단할 수 있고 이익과 손해를 구분할 수도 있다. 하물며 미숙하고 어설픈 독재자다.


북한의 체제가 흔들리는 것이 마냥 대한민국 정부에 좋지만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차라리 김정일이었다면 뭐라도 기대해 볼 수 있을 텐데. 오히려 중국이 김정은을 제거하고 다른 괴뢰정권을 세우면 지금보다는 더 나아지지 않을까.


멍청해서 그런다. 멍청하지 않아도 문제다. 아마 정부도 판단이 섰을 것이다. 괜히 정부마저 강경한 것이 아니다. 답답하다.

+ Recent posts